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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Jul 24. 2019

마음 숙제 해결하기

글을 통해 정리하기



 학부생 시절 휴학을 하고 스타트업에서 1년 반 동안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내가 진성 유져로 활동했었고, 직접 서비스 만드는 팀에서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뽑지도 않는 인턴 자리 이력서를 넣은 뒤였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의 구성원은 5명이었는데, 강남의 작은 오피스텔 안에서 동고동락하며 서비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1년반쯤 지나자 어느새 회사는 30명 규모로 커져있었고, 불어난 인원들이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더 큰 곳으로 이사도 했었다. 이 기간을 통해 커리어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정리할 수 있었는데, 회사를 다니며 학교를 병행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짧지 않은 기간 스타트업 생활을 하며, 그 과정에서 정말 매력적인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연락을 이어나가고 있다.) 학교라는 좁은 곳에서 아직 사회에 나가지 않은 학생으로서 알기 힘든 여러 가지 세상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함께 성장했다고 믿었고, 그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어서 기뻤다. 좀 더 넓게 생각하고 특정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서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었다.


 돌아보니 사람은 주변 환경에 정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교에 돌아간 뒤에는 다시 학점 경쟁이 시작되었고, 1년 반 동안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동안 취업준비(흔히들 말하는 스펙 따위의)를 마친 친구들은 상/하반기로 나뉘는 공채 일정에 맞추어 정신없이 구직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기업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방학 동안 만들어 둔 템플릿을 변형해서 서류를 넣고 있었고 그 수가 몇십 개에 달했다.


 사회로 나가 데이터 다루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비교하다 보니 속으로는 매우 불안하고 나만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하면 스타트업으로만 메뚜기처럼 뛰어다닐 거라던 취업지원팀 과장님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데이터 같은 전문 분야를 할 거면 왜 대학원에 안 가냐고 중간중간 던지듯이 말하며 사람들이 지나갔다. 데이터 공부가 하고 싶어서 인강을 듣던 내 옆에서 친구들이 빨간색 파란색으로 뒤덮인 인적성 책을 열심히 풀고 있었고 다들 오늘까지 마감이었던 대기업 서류 지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감기한에 맞춰서 남은 서류전형 일정에 맞춰 자소서를 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괴롭고 힘든 과정이었다. 왜 이걸 쓰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달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나를 속이는 과정이 그랬다. 1년 반 동안 경험했던 기억을 살려 '가장 힘들었던 고난을 극복한 경험을 서술하시오' 따위의 질문에 절절했던 성장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적어가면 학교에서 배정해준 소위 '취업 컨설턴트'라는 사람들은 자소서를 이런 식으로 창업회사 얘길 적었다간 회사에 로열티를 보여줄 수 없으니 다시 적어오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로열티를 가득 담아 글을 쓰고 나니, 그때만큼은 합격이 그렇게 간절한 적이 없었다.


 지나 보니, 이런 과정들이 나에게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아직까지 다른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기에는 마음이 아직 불안했던 그때의 나에게, 점점 뭐가 나에게 더 어울리고 맞는지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불안해서 따라가다 보니 몸과 마음이 안 바쳐주어 점차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자소서를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언어를 잘 다뤄야 하는지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고, 답도 없는 인적성을 잘 푸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포트폴리오 주제로 어떤 데이터를 다룰지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던 그때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주변에서 고민이 많아서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라하는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마구 글을 써보는 것을 추천하곤 하는데,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글로 끄집어내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다른 대단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지인을 바라보며 그 생각은 천천히 변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봤던 TED Talk을 통해 글을 적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그 영상을 아래에 공유한다.


https://youtu.be/aja-8sYjNaY

TED x Seoul - 예술가가 되자, 오늘 당장 (김영하)


  글이라는 것이 신기해서 일단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주욱 내려놓다 보면 어느새 많이 가벼워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영하 씨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예술까지 가기에는 너무 거창하다면 내가 가진 고민을 풀어놓는 하나의 방법 즈음으로 보아도 충분하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그때 내가 해야만 했던 숙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어디 어디 공채 출신이 아니어도 괜찮고, 토익에 그렇게 매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들이다. 이런 것들은 스스로 깨우치기 힘들었지만 좀 더 다른 길을 선택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과, 그 속에서 알게 된 것들을 글로 정리하고 실천에 옮겨보는 방법으로 조금씩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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