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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V피플 Nov 07. 2017

삶의 버퍼링(buffering)


버퍼링(buffering)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일 다운로드를 하거나 페이지가 넘어갈 때 무언가 부하가 걸리는 상황으로 떠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좀 더 우린 오늘의 화두에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버퍼링이란 완충, 완화장치의 개념으로 두 개의 매개 사이에서 충돌을 완화하는 장치로 설명된다."

(매경닷컴)



이러한 사전적 정의 중, 둘의 충돌을 완화하는 장치란 부분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충돌, 사람과의 감정적 충돌, 새로운 상황에 낯설어 곤란해 하는 상황적 충돌, 내 마음의 두 가지 생각이 부딪혀서 결론을 내리기 힘든 심리적 충돌 등 많은 충돌을 완화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20대 초반부터 우리는 공부를 하다 대학과 사회생활로 뛰어 들며 많은 충돌을 경험한다. 그 충돌로부터 나 스스로 지키기 위해 우린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억지로 이해하고 넘어가거나, 나의 생각과 신념을 감정과 말로써 강하게 드러내며 부딪히는 방법이다. 어떠한 방법이든, 버퍼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와 본질적으로 다른 그 무언가를 작위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거나 평소의 평온한 아이덴티티를 깨뜨리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존재감과 나다운 완결성을 소모시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버퍼링의 사전적 의미에 추가적으로 집중해 보자.


"정보의 송수신을 원할하기 위해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여, 처리속도의 차이를 흡수하는 방법"

(IT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정보는 어쩌면 내가 오늘 만나는 심리, 생각, 상황, 대인관계의 모든 것을 말한다. 그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것은 어찌보면,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낯선 무언가에 대해 추가적인 판단을 굳이 당장 내리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냥 인지하는 것. 그대로 바라보는 것. 좋거나 싫다거나 하는 감정을 굳이 부여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는 어찌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도 꽤나 맞물려 있다. 현실감각을 유지하며 ‘킥’을 사용하는 점이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단,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들다 자칫 잘못해 ‘림보’에 빠지는 것이 아니란 점이 ‘버퍼링’과 ‘킥’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버퍼링’이 유지되어도 ‘현실’은 공존하며, 새롭게 꿈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란 심리적 완충작용에 주목해보자.



여러 에세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주제는
결국 '내가 내 답기 살기 위해선
어떠한 심리적 자세와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냐'라는 부분이다.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모든 상황을 품으려 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모든 것을 품으려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여, 나다운 그 무엇까지 손상되고 오늘을 소진해 버릴 지도 모른다.


아니, 우린 꽤나 그렇게 살고 있다.


나를 나답게 이끌어가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수반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많은 노력에는 적절히 주어진 지금을 아무 편견과 감정의 소모없이 바라보는 것도 포함된다.


살아봤자 100년 남짓한 인생을 사는 우리들, 그 짧은 인생의 찰나에 있어 버퍼링의 순간까지 굳이 결론을 내고, 나다움을 애써 녹여낼 필요는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가진 감정과 심리적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버퍼링(buffering)을 활용하면 좋을까.


첫째, 타인도 감정을 소모하느라 늘 지쳐있으며 원치 않게 자신을 소모적으로 드러내려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가끔 왜 이렇게 이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아둥바둥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 감정은 결국 타인의 감정이다. 삶의 완충장치인 버퍼링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해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뿐이다. 그냥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심리적 버퍼링의 zone'을 자연스레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내 스스로 버퍼링을 만드는 자세를 늘 유지해 보자. 상황이 힘들면,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사람이 힘들다면 나의 감정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노력을 인간관계로 고민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훈련해 보자.


버퍼링이란, 잘못 이해하면 피곤한 일을 스스로 만들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나를 나답게 만들어 가기 위한 삶에서 견지해야 할 중요한 심리 훈련인지도 모른다.



우린 결국 완벽하지 못한 인생을 살고 생을 마감할 것이다. 하지만, 나다움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는 것 못지 않게 지금까지 쌓아온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모든 운동에서 공격과 수비가 중요하듯이, '삶의 버퍼링 훈련'이란
어찌보면 수비를 통해 나의 삶을 더욱 나답게 만드려는
생활의 tip이 될 수 있다.


오늘을 잘 살면, 인생 자체를 유의미하게 할 수 있다는 심리적 확신을 가져보자. 심리적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면 인생의 어떤 순간이 찾아와도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나다움의 삶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되, 모든 공간을 나답게 100% 유지하려 하지 말자. 결국 남도 살고 나도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버퍼링의 공간을 유쾌하게 만들어가는 여유 자체가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자.


우리는 오늘도 버퍼링의 하루를 산다.


(이미지 출처: 영화 ‘INCEPTION’/ blog.livedo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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