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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AI는 70점을 만들고, 사람은 80점을 만든다

-AI와 평가위원이 동시에 좋아하는 문서의 비밀-

by 여철기 글쓰기

한 기업이 AI를 최대한 활용해서 계획서를 작성했습니다.

구조는 완벽했고, 문장은 매끄러웠으며, 키워드도 빠짐없이 들어갔습니다. 오탈자 하나 없었고, 표와 그래프도 깔끔했죠. 평가위원도 "잘 썼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수는 72점이었습니다. 커트라인 70점을 겨우 넘긴 아슬아슬한 합격이었죠.

같은 사업에 지원한 다른 기업은 84점을 받았습니다.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AI는 평균을 만드는 기계다]


R&D 지원사업의 점수 분포는 명확합니다. 탈락하는 계획서는 대부분 50-60점대이고, 합격 커트라인은 70점입니다. 안정적으로 합격하려면 70-80점대를 받아야 하죠.

AI가 만드는 결과물은 딱 70점 근처입니다. 왜 그럴까요? AI는 학습한 수많은 문서의 평균을 출력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AI에게 "좋은 R&D 계획서를 써줘"라고 하면, AI는 학습 데이터에 있는 수천 개 계획서의 공통 패턴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가장 빈도가 높은 표현, 가장 많이 쓰인 구조, 가장 일반적인 내용을 조합해서 내놓죠. 그게 바로 평균입니다.

50점짜리 엉망인 계획서를 AI로 다듬으면 70점이 됩니다. 구조가 잡히고, 문장이 정리되고, 기본은 갖춰지니까요. 하지만 70점짜리 계획서를 AI에게 더 다듬어달라고 해도 여전히 70점대입니다. AI는 평균 이상으로 올라갈 방법을 모르거든요.


[AI 결과물은 기준선이다]


그렇다면 AI는 쓸모없을까요? 아닙니다. AI는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기준선을 제시합니다.

AI에게 초안을 쓰게 하거나 작성한 글을 다듬게 했을 때, 그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위험 신호입니다. AI 평균보다 못하다는 뜻이거든요. 50-60점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AI 결과물을 보고 "뭔가 평범한데?"라고 느껴진다면 정상입니다. AI는 원래 평범함(70점)을 만들어내니까요. 문제없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가 당신의 일입니다.

AI 결과물을 안전장치로 활용하세요. "최소한 이 정도 수준은 유지하되, 여기에 우리만의 것을 더하자"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AI가 만든 70점 베이스라인 위에, 사람이 10점을 더 쌓아 올리는 거죠.


[평균을 넘어서는 법]


평균을 넘어서려면 평균이 아닌 것을 넣어야 합니다. 사람만 할 수 있는 것들이죠.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구체적 현장 경험입니다. AI는 "우리는 현장 테스트를 수행했습니다"라고 씁니다. 평범하죠. 하지만 사람은 다르게 씁니다. "2024년 8월, 부산 공장 2라인에서 3일간 테스트했습니다. 첫날 오후 2시에 센서 오류가 발생했고, 작업 반장 김OO 씨가 '냄새가 이상하다'고 알려줘서 즉시 중단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재가동했을 때 불량률이 12%에서 4%로 떨어졌습니다."

날짜, 장소, 이름, 감각, 숫자가 모두 들어갑니다. 평가위원은 "아, 진짜 해봤구나"라고 느낍니다. 이런 문장은 AI가 만들 수 없습니다. 데이터에 없으니까요.

그다음은 독특한 인사이트입니다. AI는 업계 일반론을 씁니다.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서 기회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뻔한 이야기죠. 하지만 사람은 남들이 못 보는 걸 봅니다. "대기업들은 대량생산에 집중하느라 소량 맞춤형 시장을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 인터뷰 결과, 연 100개 미만 소량 주문자의 62%가 '맞춤 제작을 원하지만 단가가 너무 비싸서 포기한다'고 답했습니다. 여기가 우리 기회입니다."

시장을 다르게 해석하고, 경쟁을 다르게 정의하고, 기회를 다르게 발견하는 게 인사이트입니다. 평가위원은 이런 통찰에 높은 점수를 줍니다. AI가 아무리 데이터를 학습해도 당신만의 시장 해석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전략적 강조도 중요합니다. AI는 모든 내용을 균등하게 다룹니다. 어디가 중요한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전략적으로 강조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은 특허 3건이 아니라, 이 기술을 10년간 현장에서 써본 경험입니다. 경쟁사는 이론상 가능성만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이미 연간 5만 개를 생산하면서 모든 변수를 파악했습니다."

무엇을 앞에 배치하고,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반복할지 결정하는 건 전략입니다. 같은 내용도 배치에 따라 점수가 달라집니다. 평가위원의 시선을 어디로 끌어갈지는 당신이 결정하는 겁니다.

솔직한 약점 인정도 차이를 만듭니다. AI는 약점을 숨기거나 애매하게 표현합니다. "일부 한계가 존재하나 극복 가능합니다." 이런 문장은 아무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명확하게 대응합니다. "현재 야간 환경에서는 정확도가 92%로 떨어집니다. 조명이 약하면 카메라 인식률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외선 센서를 추가하고, 6개월차부터 야간 데이터 3천 건으로 재학습할 계획입니다."

평가위원은 "완벽하다"는 주장보다 "약점을 알고 대응한다"는 계획을 더 신뢰합니다. 완벽을 주장하는 순간 평가위원은 의심하거든요.

그리고 차별화된 스토리가 있습니다. AI는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목표, 내용, 방법, 효과. 하지만 사람은 스토리를 만듭니다. "3년 전, 우리 주요 고객사가 불량 때문에 계약을 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날 밤 긴급 회의를 열었고, 한 연구원이 '사람 눈 대신 AI를 쓰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6개월 만에 불량률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고객사는 오히려 물량을 두 배 늘렸습니다. 그 경험이 이번 과제의 출발점입니다."

위기-도전-해결-성장의 스토리는 평가위원의 관심을 붙잡습니다. 숫자와 논리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결국 이야기에 설득당합니다.


[12점의 차이]


72점 계획서와 84점 계획서를 비교해보겠습니다.

72점을 받은 계획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본 기술은 불량률을 감소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킵니다. 시장 조사 결과 수요가 확인되었습니다.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모든 섹션이 비슷한 길이에 비슷한 구조였고, 약점은 "극복 가능"이라는 말로만 처리했습니다.

84점을 받은 계획서는 달랐습니다. "2024년 부산 공장에서 불량률 12%를 4%로 낮췄습니다. 3일간의 실증 과정에서 모든 변수를 확인했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썼고, "소량 맞춤형 시장은 연 2,300억 규모인데 대기업이 놓치고 있습니다"라는 독특한 시장 해석을 담았습니다. "10년 현장 경험이 핵심 차별화 요소입니다. 특허는 부차적입니다"라고 전략적으로 강조했고, 중요한 강점은 2배 분량으로 구체적 사례 중심으로 풀어썼습니다. 야간 정확도 92% 한계도 숨기지 않고 인정하면서 적외선 센서로 해결하겠다는 명확한 계획을 제시했죠.

같은 기술, 같은 예산인데 12점 차이가 납니다. AI가 만든 평균(70점) 위에 사람이 더한 구체성, 통찰, 전략, 솔직함, 스토리가 차이를 만든 겁니다.


[당신이 주인이다]


AI는 50점을 70점으로 올리는 데는 탁월합니다. 구조를 잡아주고, 문장을 다듬고, 기본을 갖춰주니까요. 하지만 AI는 70점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평균을 만드는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70점을 80점으로 만드는 건 사람의 역할입니다. 구체적 경험, 독특한 인사이트, 전략적 강조, 솔직한 대응, 차별화된 스토리는 AI가 만들 수 없습니다. 당신만 쓸 수 있는 것들입니다.

AI 결과물을 기준선으로 삼으세요. "최소한 이 정도는 유지하되, 여기에 우리만의 것을 더하자"고 접근하는 겁니다. AI가 평균을 만들어주면, 당신이 그 위에 탁월함을 쌓아 올리세요.

커트라인 70점은 AI로 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정적 합격선 80점은 사람만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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