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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Jun 11. 2016

07.
첫날밤

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7

첫날밤 

서울에서 출발한지 별로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금방 충청도에 입성했다.


디카였으면 초점이 안 맞았으니 사진을 다시 찍었을텐데 필름 카메라라 그럴 수 없다. 그냥 잘 나왔으려니 믿고 가는거다. 



우리는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인 장호원이라는 곳에 도착을 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이제 슬슬 잠 잘 곳을 찾아야 했다.
TV나 영화에서 보면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있는 들판에 텐트를 치고 그 앞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렇게 잠자는걸 많이 봤는데, 실제 그렇게 해보려 하니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일단 텐트를 치고 잠잘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강가에 낚시터 표지판이 있길래 낚시터에 가서 '혹시 요 앞에 텐트 치고 자도 괜찮냐'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안된다고 했다. (뭐가 그렇게 놀랄 일인지는 모르겠음.) 

점점 하늘은 깜깜해지고 배는 점점 고파오고 몸은 피곤하고 근처 모텔들은 간판을 번쩍이며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우리 4명은 길에 서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모두들 고민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 라는 획기적인 장소를 생각해냈다. 아마 내가 생각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제일 가까운 국민학교의 위치를 물어보고 마치 장소가 해결된 양 근처 가게에 가서 저녁거리를 샀다. 그리고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특별히 과소비를 하여 삼겹살과 소주를 몇 병 샀다.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어느 국민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깜깜한 밤중에 학교에 들어가는 건 상당히 무서운 일이다. 건물 뒤쪽으로 가니 동산 언덕 아래에 산을 등지고 앞쪽엔 지하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도 있고 가로등도 있고, 텐트 치기에는 딱 좋은 배산임수의 장소가 나왔다. 내가 졸업한 학교하고 구조가 거의 비슷했다. 모든 학교들이 다 이런 건가? 

학교 건물 숙직실 같은 곳에 불이 켜져 있고 TV 소리가 나는 걸 봐서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미리 허락을 받고 텐트를 치는 게 동방 예의지국 손님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아무에게나 말을 잘하는 진수가 얘기를 하러 갔다. 

박진수는 이것을 시작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았고 우리는 그런 진수를 "안면(몰수)공격"이라는 호칭을 써서 불러줬다. 

숙직실에서 나온 사람은 우리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텐트를 쳐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텐트를 꺼냈다. 어제 출발하기 전에 치화형 네 집 앞 놀이터에서 한번 해봤기 때문에 쉽게 설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워크맨과 조그만 스피커를 꺼내어 신해철의 카세트테이프를 들어놨다. (N.EX.T 1집) 

원래 음악 담당이었던 내가 다양한 노래의 테이프를 더 많이 준비했었는데 (자전거 여행에 어울리는 노래들을 모아서 컴필레이션 카세트테이프를 여러 개 만들었었다.) 어제 치화형네 집에서 무슨 노래가 있나 들어보자길래 꺼내서 다 같이 들어보고, 잊어먹고 치화형 집에 다 놓고 오는 바람에 (역시나!) 워크맨에 껴있던 진수의 신해철 테이프 하나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갈아입은 주행용 복장. 여행을 끝냈을때 직사광선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땀이 많이 나서 그런지 며칠만에 파란 티셔츠가 하늘색으로 색이 바랬다. 비싼 거였는데... 



저녁밥을 하는 동안 수돗가에 가서 몸에 붙은 소금기를 다 씻어냈다. 그리고 낮에 입었던 옷은 물로 빨아서 텐트 위에 널어두고 잠잘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번 여행에서 옷은 딱 2개씩 가져왔다. 하나는 낮에 자전거 탈 때 입는 '주행용'이고, 다른 하나는 씻고 잠잘 때만 입는 '취침용'이다. 

날이 너무 뜨거워 '주행용'옷을 빨아서 밤에 텐트 위에 널어두면 아침에는 다 말라서 그 옷으로 갈아 입고 다시 자전거를 탔다. 만약에 옷이 다 마르지 않았어도 그냥 입었다. 어차피 30분만 지나면 땀에 다 젖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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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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