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17
17. 무주구천동 part.3 - 텐트 안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하루 종일 쉬다 보니 다들 너무 게을러지고 있다.
어느새 저녁이 되고 저녁밥을 먹어야 하는데 다들 텐트 안에 누워 눈만 껌뻑이고 있다. 아무도 말을 안 하는 텐트 안에 N.EX.T 1집 신해철 노래만 며칠째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게 아니다. 낮에 좀 활발했을 때 저녁식사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로 하고 가게에 가서 쌀도 사 오고 햄도 사 오고 여러 가지 재료들을 다 사다 놨었다. 그런데 쌀을 씻으러 가기가 귀찮아서 다들 누워있는 것이다!
치화형은 누워서
"쌀만 씻어오면 내가 멋지게 볶음밥을 만들어줄게. 쌀만 씻어와."라고 했다.
아까는 재료만 사 오면 멋지게 볶음밥 만들어 준다고 했었던 사람이다.
다들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움직이지도 않고 배도 고프지 않나 보다.
텐트 속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이 aiwa 스피커를 통해 신해철 노래만 계속 흐른다.
테이프가 계속 돌다가 '아버지와 나'라는 연주곡이 나왔다.
이 곡은 노래는 없고 연주가 계속 나오며 신해철의 내레이션이 나오는 거의 10분이 되는 꽤 긴 연주곡이다.
다들 아무 말도 없이 내레이션을 들으며 누워 있다가 기타 애드립 부분이 나오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입으로 "찌지지징~~" 기타 소리를 내었다.
정말!!
동시에!!
같은 부분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웃긴 장면이다.
텐트 안에 무표정한 4명이 누워서 입으로 디스토션 걸린 기타 소리를 내다니!
근데 그때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계속]
-
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