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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 찰랑 Jun 18. 2018

델마와 루이스 (Thelma&Louise, 1991)

그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2015.09.23


        여러 영화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여자 배우들의(개인적으로 '여'배우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냥 배우라는 직업을 남성의 전유물로 보는 느낌이라 싫어한다.) 인터뷰를 근래 몇 년동안에 보고 읽을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그 여러 배우들의 이야기에서는 비슷한 맥락의 하소연아닌 하소연을 찾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여배우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성 그 자체보다는 엄마, 아내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고 요즘은 그 마저도 없으며 충무로의 많은 영화가 남성위주로 제작되고 있고 소비되고 있다.'


           이 인터뷰를 본 시점이 대략 신세계가 흥행하고 '브라더' 열풍이 불었을 즈음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때 당시 상영하던 영화를 찾아봤던 기억으로는 정말 여성이 나오는 영화는 드물었고 그마저도 그저 보조역할이나 남성을 유혹하는 역할도 나타났다. 지금의 영화들도 딱히 다르지 않다. 9월 23일 기준으로 상영하고 있는 영화들은 '사도', '메이즈 러너:스코치 트라이얼', '성난 변호사', '인턴', '서부전선', '탐정', '베테랑', '앤트맨', '마션', '뷰티풀마인드', '암살', '셀프리스' 등등... 사실 쓰면서도 놀란 것이 여성이 주연급인 영화는 굳이 꼽자면 뷰티풀마인드와 인턴, 그리고 암살의 전지현정도... 그마저도 단독 주연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그 비중도 남성의 분량에 미치지 못한다. 내 기억에 분명 '마파도'나 '권순분여사납치사건', '육혈포강도단' 처럼 중년의 여자 배우들이 주인공인 영화도 꽤나 많았고 지금의 상황보다는 확실히 여성의 영화 주연 빈도는 높았던 것 같다. 물론 액션과 애국심, 그 때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또는 더 잘 어울려서 남자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그런 영화들의 개봉시기가 맞물려 이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혐오'가 거세지고 있는 현 사회의 모습과 결부되는 부분이 없지않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서서히 사회의 모습이 영화안에서 더 크게는 제작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사회의 투영물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큰 생각없이 받아들인다면 특정 생각의 고착화를 가속화시킬 수있는 중요하고도 위험한 부분이다. 


           그러다가 별기대없이 나의 '봐야할 영화 리스트' 중 제목에서 왠지모르게 끌려 영화 한 편을 봤다. 바로 '델마와 루이스'였다. 영화를 보기 전 두 부류가 있다면, 한 쪽은 내가 볼 영화가 어떤 흐름인지 줄거리, 감독 등등의 정보를 훑어보고 보는 사람이고, 다른 쪽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 그 자체를 낯설게 보는 사람이다. 나는 완전하게 후자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델마와 루이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줄거리가 있고 감독이 어떤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이고 전혀 찾아보지 않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 중반이 지나면서 좋은 영화, 그리고 정말 지금 현 시점에 필요한 내용을 담은 영화를 오랜만에 봤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델마와 루이스의 도주기'이다. 하지만 일반 액션영화들 처럼 뭔가 액션에 치중된 '도주 영화'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눠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델마의 입체적인 캐릭터, '무엇으로부터 그녀들이 도주하는가'가 바로 그 부분들이다.

            델마, 사실 델마는 영화 시작에서 휴가를 둘이서만 가자는 루이스의 말에 굉장히 남편의 눈치를 보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부분에서 델마와 그 남편 데릴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순종적인 아내. 그러면서 자신을 데리러 온 루이스의 차에 랜턴과 총을 싣는 등 앞으로 닥칠 지도 모르는(실제로는 닥치지 않은) 일들을 나서서 걱정하고 두려워 한다. 데릴에게 말했냐는 루이스의 물음에 말은 안했고 그저 저녁에 먹을 음식과 쪽지를 놔두고 왔다며 소소하게 행복해한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소와 같아 보였지만 펍에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유혹에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끼며 감언이설로 자신을 꼬셔내는 한 남자를 따라 춤도 추고 술도 아주 넘치도록 마신다. 델마와 재미 한번 보려고(지극히 남성의 재미인) 폭력적으로 변한 그 남자에게서 루이스는 총을 이용해 델마를 구해낸다. 명백하게도 여성에게 성폭행을 행했지만 전혀 미안한 기색이나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 그 남자를 보며 루이스는 환멸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긴다. 처음에는 혼란 속에 그저 루이스의 말에 따르고 수동적으로 움직였다면, 중반부에 제이디(브래드 피트)를 통해 어쩌면 자신의 성과 자율성, 그리고 자유를 깨닫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소극적이던 그녀는 나서서 행동하고 남성(남자 경찰관, 남자 트럭운전수 등등)에 기죽지 않고 대응하게 된다. 남성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트럭운전수와 3번 만나게 되는 데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제 막 살인이라는 것을 저지르고 움직이던 때로 트럭운전수가 인사하는데에 순순히 '안녕'이라고 인사하지만 그로부터 성희롱을 당한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과도기적인 모습으로 운전수를 무시하여 지나갔고 마지막 온전히 변화한 델마는 오히려 그를 불러 세우고 사과를 요구한다. 여기서 처음 성폭행을 당해서 감정 조절이 안된 나머지 발사했던 총알과는 다르게 델마와 루이스 둘다 자의적으로 남성에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3~4일동안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델마가 여태까지 소극적이었던 모습에서 주체적으로 변했다. (이성적이고 주체적으로 보이는 루이스 또한 과거에 성폭행의 아픔이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 데에서 이러한 변화가 더욱 입체적으로 와닿았다.) 

         또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그녀들의 도주기인데 그녀들이 과연 어떤 것으로 도주하고 벗어나려했는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고민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저지른 살인, 강도, 경찰관 협박 및 감금 등등 중범죄로 인해 경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그 죄목들에서 벗어났던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에서부터 생각해보자면 그녀들은 남성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것 같다. 특히 델마는 인물들의 대사에서 계속 나타났듯이 '그에게서 벗어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녀가 휴가를 가면서도 남편의 저녁거리를 걱정하고 또 도주 중간에 남편에게 전화했을 때도 그녀는 열심히 설명하지만 남편은 그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 델마가 정말로 그 그늘 아래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고 나서는 '깨어있는 것 같다', '살아 있는 것 같다', '재미있다' 등 오히려 그 상황의 자유에서 오는 것에 더욱 행복을 느낀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본 것같은 느낌이다. 원래도 입체적인 인물을 좋아하고 흥미를 느껴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한 나로써는 조금 더 생각해볼 거리가 생겼고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다고 하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지인의 말로는 이 영화가 초기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영화였다고. 보고나니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객체에서 주체화, 여성연대를 가장 크게 그리고 있으며 요소요소, 대사 하나하나 그런 것들을 잘 담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즐길 줄만 아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생각할 거리와 우리의 선입견에 자극과 충격을 줄 영화들이 우리나라에도 이시대에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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