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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땅의 속삭임, 낙원의 기억

4부. 땅 위에 그리는 새로운 원, 덜어냄의 미학

by 조하나


서울에서 돌아온 밤, 숲속 집 마당에 내리자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완전한 어둠과 흙냄새였다. 도시의 인공적인 불빛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달과 별만이 희미한 길을 비추고 있었고, 온갖 화학적인 냄새가 씻겨나간 코끝으로는 비 온 뒤의 촉촉한 흙과 풀의 냄새만이 스며들었다.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심연의 바닥에서 중성부력을 찾았을 때처럼 온몸을 감쌌다.


도시의 지인들은 때로 나의 삶을 한 폭의 목가적인 풍경화처럼 상상하곤 한다. 복잡한 세상을 등지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일종의 낭만적인 도피처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들이 SNS에 올린 나의 텃밭 사진을 보며 ‘시골 가서 사는 게 진짜 부자지’라고 말할 때, 나는 그저 웃어넘길 뿐이다.


땅은 낭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땅은 오직 정직한 존재감을 요구할 뿐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밭의 한구석을 쪼그려 앉아 맨손으로 흙의 감촉을 느꼈다. 손톱 밑에는 까만 흙이 끼고, 등줄기로는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풍경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명의 존재. 지금 나의 현실은 그것이었다.


땀을 닦으며 잠시 허리를 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완벽해 보이는 풍경이 결코 내면의 평화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미 낙원에서의 값비싼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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