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속 집, 나의 작은 책상 앞에 앉는다. 창밖에는, ‘낙원’이 아닌 ‘거울’이 되어주겠다던 바로 그 땅이 고요히 펼쳐져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한 평온한 풍경.
그리고 내 앞에는, 텅 빈 화면이 있다. 주위엔 기억의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서울의 클럽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 작은 외딴섬 섬에서 주워 온, 돌이 된 산호 조각, 멕시코 세노테수중 동굴의 구불구불한 길을 기록한 낡은 수첩.
이것들이 바로 연금술사인 내가 사용할, 투박한 원석들이다. 이 고요함 속에서, 나는 이제껏 미뤄왔던 가장 소란스러운 작업, 흩어진 내 삶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일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를 ‘글쓰기’라 부르지만, 나는 이것이 ‘연금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납이나 구리를 녹여 순수한 금을 만들려는 고대의 신비로운 시도. 내 기억의 선반 위에도 그런 금속들이 즐비하다. 속도의 감옥과 비교의 지옥이었던 서울의 기억이라는 납덩어리, 완벽한 낙원에서 오히려 길을 잃었던 섬에서의 경험이라는 녹슨 구리, 그리고 심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 마주했던 경외와 공포라는 이름의 수은.
이것들은 각각의 시간 속에서는 그저 고통이거나, 혼란이거나, 혹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강렬한 감각일 뿐이었다.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흩어진 사건들의 나열. 글쓰기는 이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실을 찾아 연결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압력’이라는 실을 따라가 본다. 서울의 만원 지하철에서 타인에게 떠밀리던 불쾌한 압력은 나를 외부 세계와 불화하게 만들었다. 그 압력으로부터 도망친 심해의 거대한 수압은 역설적으로 내면으로 집중하게 했고, ‘균형’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균형 감각 덕분에 나는 ‘진정한 자유’가 주는 실존적 압박감을 견뎌낼 힘을 얻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 삶의 모든 압력이 나를 바로 이곳, 이 책상 앞으로 밀어 보냈다는 것을.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