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삼킨 뱀: 제국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가

땅의 상처를 꿰매는 사람들

by 조하나


신화 속 괴물 ‘우로보로스(Ouroboros)’는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인들에게 이 형상은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영원한 순환’이자,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주의 조화로운 섭리였다. 그것은 파괴 뒤에 재생이 따르고, 죽음 뒤에 삶이 오는 우주적 생명력의 완결성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풍경은 우로보로스의 가장 끔찍한 변주, 즉 조화가 아닌 허기와 광기에 사로잡혀 제 몸을 식량으로 착각하고 파먹어 들어가는 ‘자기 식인’의 현장이다. 본래 우로보로스가 상징하던 '무한한 가능성'은 사라지고, 이제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잊은 채 자신의 뿌리부터 씹어 삼키는 맹목적인 파괴만 남았다. ‘자유의 나라’이자 ‘이민자의 나라’라는 정체성으로 번영했던 제국이, 바로 그 이민자의 후손들에 의해 가장 높고 배타적인 성벽을 쌓으며 스스로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모순의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다리 걷어차기’의 카르텔이 존재한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가난한 이민자들이 꿈꾸던 ‘아메리칸드림’이 어떻게 기득권의 ‘방어 기제’로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로서, 트럼프가 그토록 혐오하며 막겠다고 공언한 ‘사슬 이민’ 제도를 통해 부모에게 시민권을 안겨준 당사자다. 부통령 JD 밴스의 아내 우샤 밴스 역시 인도계 이민자의 딸이다.


이들은 미국이라는 시스템의 가장 달콤한 수혜를 입고 권력의 이너 서클에 진입하자마자, 뒤따라오는 이들이 올라올 사다리를 냉정하게 걷어차 버렸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는 주류에 편입된 소수자가 자신의 출신 성분을 부정하기 위해 동족에게 더 가혹해지는 ‘과잉 적응’의 비극이다. 그들의 성공 신화는 이제 “미국 주류 가치에 완벽히 복종하고 백인 남성 권력에 봉사하는 이민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극우적 모순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소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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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순이 구체적인 국가 폭력으로 발현된 것이 바로 2026년 초 단행된 국토안보부의 ‘47일 훈련’ 조치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수장인 트럼프가 ‘제47대 대통령’임을 기념한다는 유치하고도 섬뜩한 명분으로, ICE(이민세관집행국) 신입 요원의 교육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단 ‘47일’로 줄여버렸다. 이는 단순한 행정 간소화가 아닌, 철학자 아킬레 엠베(Achille Mbembe)가 말한 ‘죽음의 정치’, 즉 국가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결정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인간을 사물화 하는 정치가 현실화된 것이다. 주권자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시스템을 난도질하고, 생사를 결정하는 총구를 훈련받지 못한 아마추어들에게 쥐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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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숫자 놀음의 대가는 참혹했다.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미니애폴리스 시민 르네 굿(Renee Good)과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의 죽음은 예견된 참사였다. 37세의 어머니 르네 굿은 자신의 파트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알렉스 프레티는 시민을 보호하려다 47일짜리 속성 요원들의 총탄에 쓰러졌다. 식별 능력도, 인권 감수성도 거세된 공권력에게 그들은 ‘보호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타깃’에 불과했다. 제국은 이를 ‘안보를 위한 부수적 피해’라 명명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것은 국가가 시스템의 이름으로 자국민을 사냥한 명백한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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