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스 길리건의 신작 드라마 <플루리부스>에는 서늘하고 고통스러운 장면이 등장한다. 지구에 얼마 남지 않은 바이러스 면역자 중 하나인 페루의 산악 마을 소녀 쿠시마유가 거대한 집단지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집단, 즉 '하이브 마인드'와의 결합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결합 이전, 그녀는 어린 염소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세상 그 누구보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돌본다. 그러나 결합이 완료된 직후, 그녀는 돌변한다. 애처롭게 울며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염소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갑게 외면하고 떠나버린다.
이 장면이 공포스러운 이유는 그녀가 염소를 때리거나 학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눈에서 '대상에 대한 인식' 자체가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이브 마인드라는 거대한 전체의 효율성 속에서, 시스템에 결합되지 않은 개별적 존재(염소)는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데이터 오류' 혹은 '버그'에 불과해진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사랑의 본질인 '카리타스(Caritas)'의 상실을 상징한다. 카리타스는 막연히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 눈앞에 실존하는 타자의 고유한 가치를 알아보고, 그를 아끼는 마음이다. 하이브 마인드는 "인류를 구원한다"는 거창한 명분 아래 '추상적인 전체'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저기 울고 있는 바로 그 염소"를 사랑할 능력은 없다. '모두'를 사랑한다는 선언은 역설적으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디스토피아적 우화는 2026년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과 닮아 있다. 신의 이름을 빌려 자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국가, 시스템의 안락함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기로 '선택'한 사람들. 쿠시마유의 차가운 뒷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기독교 국가가 신의 이름으로 자국민을 처형하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독교 민족주의'의 광풍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민족주의란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이 아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특정 종교와 동일시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민자, 성소수자, 정치적 반대파—을 '비국민' 혹은 '악마'로 규정하여 배제하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다.
현재 미국은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중동의 신정국가'들과 소름 끼치는 샴쌍둥이가 되어가고 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국 여성과 청년들을 '신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 처형하는 이란의 신정 정부와 지금 미국의 풍경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이란이 '샤리아(율법)'를 내세워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반대파를 숙청한다면, 지금의 미국은 '성서적 가치'를 참칭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고 이민자들을 인간 사냥하듯 추방한다. 신의 이름이 '알라'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을 뿐, 교리를 앞세워 자국민의 생존권을 난도질하는 메커니즘은 완벽한 거울상이다.
더욱 섬뜩한 것은 이스라엘과의 평행이론이다. 베냐민 네타냐후가 가자 지구를 폭격하며 구약성경 속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구절을 인용했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지만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환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 내의 이민자, 성소수자, 그리고 리버럴 세력을 바로 그 '아말렉'—반드시 멸절시켜야 할 신의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선민사상'을 방패 삼아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죽음을 정당화하듯 미국의 극우 세력은 '백인 기독교 국가의 재건'이라는 미명 하에 내 이웃을 시스템 밖으로 내던진다.
미국의 지도자는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면서도, 동시에 그 손으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자비한 추방 명령에 서명한다. 그들에게 이웃 사랑이란 '내 편'에게만 적용되는 제한적 규범이며, 반대편에 선 자국민을 척결하는 것은 '거룩한 전쟁'으로 포장된다. 사랑과 평화의 종교가 가장 배타적인 혐오의 무기로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가장 연약한 심리적 틈새를 파고들어, 평범한 이웃들을 시스템의 차가운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과거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이라 비난하고, 자신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라 자부했다. 그러나 지금 워싱턴은 스스로가 비웃던 그 '광신적 신정국가'의 문법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학생이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란과 이스라엘은 적어도 솔직하게 종교 국가임을 표방하지만,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채 신의 이름을 도용해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더 비열한 위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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