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쿨'하지 않기로 했다
21세기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기이하고도 위험한 괴물, 일론 머스크를 보자. 그는 그저 빅테크 CEO나 혁신가가 아니다. 그는 최첨단 기술이라는 가죽을 쓴 봉건 영주이자, 뒤틀린 우생학의 신봉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 ‘성공한 이민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이민 선동가가 되어 혐오의 확성기를 자처한다.
이 오만한 봉건 영주는 최근 한국의 인구 문제마저 자신의 입맛대로 재단하며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인구가 소멸하고 있다”며, 급기야 “북한 사람들은 한국을 무력으로 점령할 필요도 없다. 그저 텅 빈 남쪽으로 걸어 내려오면 된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이 발언은 그의 지적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그는 북한 역시 심각한 저출생과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는 기초적인 인구학적 사실조차 모른다. 무엇보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이 단순한 인구 게임이 아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5천 년을 한 핏줄로 살아왔으나,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의 체스판 위에서 강제로 찢긴 민족이다. 여전히 북녘에 가족을 두고 눈물짓는 실향민이 살아있고,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비극의 당사자들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남북이 나뉜 휴전선의 운명조차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가 모른다는 점이다. 1953년 정전협정의 도장에 잉크를 묻힌 것은 미국(유엔군)과 북한, 그리고 중국이었다. 한국은 당사자임에도 서명에서 배제되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국제 정치의 역학 속에서 신음해 온 이 땅의 역사를, 그는 고작 “인구 줄면 먹히는 땅” 정도로 치부한다. 이는 서구의 우월감에 찌든 백인 남성 자본가가 아시아의 분단국가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 즉 ‘한심한 무지’와 ‘역사적 맥락의 거세’다. 그에게 한국인은 고유한 역사와 아픔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전기차 제국을 지탱할 노동력이자 숫자로 환원된 ‘부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기괴한 모순은 공적인 영역을 넘어 지극히 사적인, 생물학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자신의 아버지 에롤 머스크가 자신의 의붓딸과 아이를 낳았던 엽기적인 가족사를 반복하듯, 일론 머스크는 “내 우월한 DNA를 퍼뜨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알려진 것만 12명에 달하는 자녀를 기계적으로 ‘생산’한 그의 행태는, 인간을 사랑과 관계의 결실이 아닌 유전자 데이터의 복제품으로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는 나치가 그토록 집착했던 ‘우생학’이 실리콘밸리의 세련된 포장지를 입고 부활한 것이다. 그는 지구가 망가지면 화성으로 떠나면 그만이라고 믿는, 뿌리 없는 자본의 전형이다.
이러한 ‘괴물의 초상’에 대한 반응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갈린다. 유럽은 기억하고 있다. 머스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에 “나치식 경례” 이미지를 장난처럼 올리고 극우 정당을 옹호할 때, 독일과 북유럽 시민들은 본능적인 공포와 혐오를 느꼈다. 독일과 유럽 내 테슬라 판매량이 폭락하고, 대형 유통 체인들이 테슬라 불매를 선언한 것은 단순한 소비자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선을 넘은 자본은 사회적 흉기”라는 유럽 사회의 ‘사회적 면역 체계’가 작동한 결과다. 그들에게 파시즘과 혐오는 지난 세기의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언제든 틈만 나면 숙주를 찾아 부활하려는 현재진행형의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선을 아시아, 그리고 서구권의 대중문화로 돌리면 이 면역 체계는 거짓말처럼 작동을 멈춘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서구의 지성인들과 셀러브리티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앞에서는 한없이 무지하고 관대하다.
이 거대한 무지는 팝 컬처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더욱 노골화된다.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은 욱일기 디자인을 홍보 영상에 사용했다가 항의를 받자 삭제했지만, 그 과정에서 욱일기를 나치기와 같은 정치적 상징이 아닌 그저 ‘태양을 형상화한 쿨한 그래픽’ 정도로 치부했다. 필리핀계 미국인 팝스타 벨라 포치조차 팔에 욱일기 문신을 새겼다가 논란이 되었다. 필리핀이 일본 제국주의의 직접적인 피해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교육과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에게 제국의 상징은 역사가 거세된 ‘힙스터의 패션’일 뿐이었다.
또한, 한국에서 ‘국민 밴드’라 불리는 마룬5는 2022년 월드투어 포스터와 홈페이지 배경에 욱일기 형상을 보란 듯이 내걸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 아시아 투어 홍보물에는 ‘강렬한 디자인’으로 둔갑해 등장한 것이다. 최근 재결합하며 전 세계를 열광시킨 오아시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대표곡 ‘모닝 글로리’의 홍보 영상에 욱일기 문양이 버젓이 등장해 한국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콜드플레이 또한 뮤직비디오 'Princess of China'에서 중국 사원에 일본의 게이샤와 닌자를 등장시키며, 아시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국적 불문의 ‘신비한 배경’으로 뭉뚱그려버렸다. 이들에게 아시아는 실재하는 고통의 역사가 아닌, 서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이국적인 판타지’일 뿐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언어 속에 숨은 폭력이다. 서구 언론과 스포츠 중계에서는 불굴의 투지나 과감한 베팅을 묘사할 때 여전히 “Kamikaze Spirit (카미카제 정신)”이라는 표현을 칭송하듯 사용한다. 심지어 서양의 일식 레스토랑엔 '카미카제 롤'도 메뉴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살 테러라는 반인륜적 전술이 그들에게는 낭만적인 ‘용기’로 미화되는 것이다. 만약 독일 축구팀을 보며 “나치 친위대(SS) 같은 조직력”이라고 칭찬했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것이다. 이 명백한 이중잣대, 즉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인의 고통을 백인의 고통보다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격하한다.
이러한 서구의 묵인 뒤에는 더욱 어두운 공범의 역사가 숨어 있다. 바로 731 부대와 미국의 검은 거래다. 일론 머스크가 유전자를 조작해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떠들 때, 우리는 1945년의 만주와 도쿄를 떠올려야 한다. 일본군 731 부대는 최소 3,000명 이상의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을 ‘마루타(통나무)’라 부르며 산 채로 해부하고 세균을 주입했다. 그러나 전후 도쿄 재판에서 이 악마들을 심판대에서 내려오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미국은 정의 대신 ‘데이터’를 택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얻은 생체 실험 결과보고서는 고스란히 미국의 생화학 무기 연구실로 들어갔고, 그 대가로 731 부대의 의사들은 면죄부를 받아 전후 일본 의료계와 학계의 엘리트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끔찍한 거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면죄부를 받은 731부대 출신들은 '녹십자(미도리주지)'와 같은 거대 제약회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혈액 및 백신 산업을 독점했다. 마루타의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던 그 손기술은 전후 '혈액 제제 사업'이라는 노다지로 둔갑했고, 그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는 일본 보수 정권의 정치 자금이 되었다. 기술적 진보와 패권을 위해서라면 윤리 따위는 땔감으로 써도 좋다는 저 섬뜩한 실리콘밸리의 사고방식은, 80년 전 미국의 묵인 아래 인간의 존엄을 거래했던 그 ‘검은 계약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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