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언론'처럼, 책임은 '광대'처럼
최근 방송인 김어준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대통령실의 해외 순방 일정과 동선은 국가 외교·안보와 직결된 1급 보안 사항으로, 통상 출입 기자단 사이에서는 대통령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비보도를 전제로 공유되는 '엠바고' 사안이다. 그러나 김어준은 이 금기를 깼다. 방송 중 구체적인 순방국과 일정을 여과 없이 송출해 버린 것이다.
이는 레거시 미디어였다면 출입 정지는 물론, 간사단 소집과 해당 언론사의 대국민 사과가 이어졌을 중대한 '외교 결례'이자 '보안 유출'이었다. 그러나 '뉴스공장'의 대응은 기이할 정도로 가벼웠다. "단순한 착각이었다." 짧은 해명에는 언론으로서의 엄중한 책임감보다는 유튜버 특유의 '실수에 대한 관대함'이 묻어났다. 심지어 그가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는 순간, 채팅창에는 비판 대신 수십만 원 단위의 슈퍼챗이 쏟아졌다. "공장장님 힘내세요", "그럴 수 있지, 사람이 하는 일인데." 팬덤에게 그 명백한 오보는 보호해 주어야 할 '인간적인 실수'로 둔갑했다.
이 기묘한 풍경을 지켜보며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시계를 뒤로 돌려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였던 2025년 6월로 돌아가면, 우리는 정반대의 결말을 목격한 적이 있다. 바로 OBS 최한성 기자의 사례다.
당시 대통령과 언론사 사장단의 만찬은 '비공개'를 전제로 마련된 자리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던 기획 의도와 달리, 최 기자는 기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겠다며 현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 '돌발 질문' 하나가 불러온 파장은 가혹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즉각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벌어진 설전은 전후 맥락이 거세된 채 '대통령에 대한 무례함', '술자리 꼬장'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되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대통령실은 그를 '출입 기자단'에서 배제하는 초강수를 뒀다. 정치부 기자에게 용산 출입처 박탈은 사실상 '기자로서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소속사인 OBS는 항의 대신 납작 엎드려 사과문을 발표했고, 최 기자는 타 부서로 좌천되듯 유배를 떠나야 했다. 질문을 던진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엠바고를 깬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책임을 져야 했다. 그를 지켜주는 슈퍼챗도, 팬덤도 없었다.
국가 기밀에 준하는 외교 일정을 누설한 대형 유튜버는 "실수"라는 말 한마디와 팬덤의 환호 속에 건재한데, 취재 현장에서 질문을 던진 제도권 기자는 왜 밥줄이 끊기는가?
나는 평소 기성 언론, 소위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주의와 폐쇄성에 누구보다 날 선 비판을 가해왔다. 하지만 바로 그 비판 의식 때문에라도, 뉴 미디어가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기성 언론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반복하는 행태를 '우리 편'이라는 이유로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판받던 괴물을 닮아가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대안 언론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
'유튜브'라는 방패 뒤에 숨어 권력은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뉴미디어, 그리고 엄격한 잣대로 기자의 입을 틀어막으면서도 뉴미디어의 폭주에는 무기력한 레거시 미디어의 현실. 이 기묘한 불균형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 미디어 생태계가 얼마나 기형적으로 비틀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자화상일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액체 근대'라고 정의했다. 과거의 '고체 근대'가 평생직장, 국가, 제도 언론처럼 무겁고 고정된 것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이 액체처럼 흐르고, 형태가 수시로 변하며, 언제 증발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 불안한 파도 위에서 가장 영리하게 서핑을 즐기는 자들은 '권력'이라는 단물은 빨아들이되,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은 액체처럼 흘려보내는 생존 기술을 본능적으로 터득했다. 바로 지금 한국의 대형 시사 유튜버들이다.
김어준 공장장의 태도는 이 '선택적 정체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는 공격할 때는 '거대 언론'의 칼을 휘두르고, 방어할 때는 '개인 유튜버'의 방패 뒤로 숨는다. 평소 그는 KBS, MBC, 조중동 등 레거시 미디어를 "기득권 카르텔"이라 맹비난하며, 자신이야말로 "성역 없이 진실을 파헤치는 참된 대안 언론"이라고 포장한다. 지지자들에게 그는 단순한 진행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는 가장 강력한 '저널리스트'다. 실제로 그가 방송에서 내뱉는 한마디는 여의도 정치판을 뒤흔들고, 수십만 팬덤을 움직이는 정치적 동원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막상 오보나 엠바고 파기, 명예훼손 같은 치명적 실수가 발생해 법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순간이 오면, 그는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한다. "우리는 방송국처럼 데스크가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유튜브라 제작 환경이 열악하다"라며 '약자 코스프레'를 하거나 '자연인'의 영역으로 도망친다. 언론이 누리는 막강한 권위와 정보 접근권, 그리고 슈퍼챗 수익은 '고체'처럼 단단히 쥐고 싶어 하면서, 그에 따르는 팩트 체크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은 '액체'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괴물'이 된 것이다.
또 다른 대형 유튜버, '매불쇼'의 진행자 최욱 씨의 생존 전략은 더욱 세련되고 고도화되어 있다. 그는 방송 내내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일개 유튜버야", "나는 멍청한 광대일 뿐이야", "나한테 기대하지 마. 언제든 나락 갈 수 있어". 대중은 이를 겸손이라 착각하지만, 이는 사실 치밀하게 계산된 '책임 회피용 방탄조끼'다. 스스로를 '광대'로 낮춤으로써 대중이 그에게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지적 기준치를 바닥까지 낮춰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그는 실언을 해도 "원래 저런 캐릭터니까"라는 면죄부를 얻고, 심각한 사안을 희화화해도 "예능인데 왜 다큐로 받아들이냐"며 빠져나갈 구멍을 확보한다.
특히 "나는 패널들과 사석에서 밥도 술도 안 먹는다"는 그의 철칙은 겉보기에 공정성을 위한 '거리두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견고한 '카르텔'을 은폐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그가 '거리'를 둔다면서 정작 스튜디오에 불러 앉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물의를 일으켰어도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면 고정석을 차지하고, 합리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배제된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누구인가? 학벌, 출신, 나이까지 비슷한 '586 남성들'뿐이다.
현실 정치 필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거나 도태된, 소위 '한물간 아저씨'들이 모여 동네 반상회 하듯 썰을 푼다. 그들의 대화에는 미래에 대한 대안이나 건설적인 비전은 없다. 오로지 "내가 왕년에 말이야" 식의 자기 과시와 현실 비관, 그리고 남 탓만이 가득하다. '대안 언론'을 표방한다면서, 실상은 가장 고루하고 폐쇄적인 '실패한 남성들의 쉼터'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시대착오적인 젠더 의식이다. 영화 코너를 보자. 남성 패널 4명이 둘러앉아 낄낄거리며 여성을 상품화하고 대상화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가끔 여배우가 게스트로 나오면 진행자 최욱은 마치 '신붓감 고르듯' 품평하고 들이댄다. 2026년의 미디어라고는 믿기 힘든 이 역겨운 장면들은, 그들이 비판하던 '꼰대'들의 모습 그 자체다.
결국 그들은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조차 퇴출당한 낡은 가치관과 인물들이 유튜브라는 '규제 없는 해방구'로 도망쳐 똬리를 튼 것에 불과하다. 혁신을 말하면서 가장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끼리끼리 뭉쳐 썩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형 시사 유튜브의 민낯이다.
많은 대중이 김어준, 최욱의 프로그램을 보며 이것이 기존 언론보다 더 '뉴스'답고, '공정'하며, '믿을 만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환상이다. 냉정하게 말해, 그들은 스스로 현장을 뛰며 팩트를 발굴하고 취재하는 '뉴스 생산자'가 아니다. 그들은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입맛에 맞는 반찬만 골라내는 '뉴스 편집자'이자 '논평가'에 불과하다.
저널리즘의 원칙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는 '뉴스'와 그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는 '비평'의 영역은 엄연히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프로그램은 이 경계를 교묘하게 허물어버린다. 그들의 여론 형성 과정은 치밀하게 계산된 3단계 공정을 거친다.
첫째, '편향적 선별'이다. 그들은 매일 아침, 자신들이 그토록 '기레기'라 비난하던 레거시 미디어의 기사들을 훑는다. 그리고 수만 가지 뉴스 중,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지지층의 구미에 당기는 뉴스만을 '핀셋'으로 골라낸다. 불리한 뉴스는 철저히 외면하고, 유리한 뉴스는 대서특필한다. 이 1차적인 '게이트키핑' 단계에서 이미 공정성은 실종되고, 그들의 편향된 시각이 팩트의 자리를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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