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기득권의 '형님 동생' 카르텔과 세대교체의 필연성
1990년대 말, 엄숙주의와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덥수룩한 머리와 구겨진 셔츠를 입고, 점잖은 엘리트들을 향해 "쫄지 마, 씨바"를 외쳤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그는 분명 그 시대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견고한 ‘꼰대 질서’에 균열을 내고, B급 감성이라는 무기로 권위를 조롱하던 그는, 억눌린 청춘들에게 해방구이자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그때의 그는 약자의 편에 서 있는 듯했고, 그의 욕설은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통쾌한 일갈처럼 들렸다.
그러나 강산이 세 번 가까이 바뀐 2026년 오늘, 나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한다. 권위를 비웃던 그 반항아는 이제 자신이 비웃던 그 ‘권위’ 그 자체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변방의 게릴라가 아니다. 거대 정당의 공천에 보이지 않는 손을 뻗고,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리며 진영의 논리를 설계하는 거대한 ‘미디어 권력’이 되었다. 아니, 권력을 넘어 일종의 ‘성역’이 되었다. 그를 비판하는 것은 곧 진영 전체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되고, 그의 말은 검증 불가능한 신탁처럼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지금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왜 우리는 그를 여전히 ‘진보’라 부르는가? 그가 매일 아침 마이크 앞에서 설파하는 것은 과연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우리 편이 하는 것은 모두 옳다"는 파란 점퍼를 입은 또 다른 형태의 독재와 전체주의 아닌가?
나는 진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부채 의식을 팔아먹는 이 거대한 ‘정치 상인’과, 그를 떠받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대해, 빚지지 않은 시민의 자격으로 정산을 요구하려 한다.
최근 김어준은 자신의 방송에서 믿기 힘든 말을 뱉었다. "나도 2017년엔 반문(反文) 소리 들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기억의 오류가 아니다. 명백한 ‘역사 세탁’이자,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겪어낸 시민들에 대한 기만이다.
나는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의 그 살벌했던 공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던 소위 ‘문빠’들이 경쟁자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가했던 무차별적인 폭력을. 그들은 이재명을 ‘찢재명’, ‘점령군’, ‘천민’이라 부르며 악마화했다.
그때 김어준은 어디에 있었나? 그는 그 광기 어린 조리돌림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을 지키기 위한 열성 당원들의 에너지"라며 방관했고, 그 화력을 자신의 방송 동력으로 삼아 즐겼다. 당시 "이재명도 우리 민주당의 자산이다"라며 유일하게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던 이동형 작가와 달리, 김어준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공범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이 반문이었다니, 이 얼마나 뻔뻔한 역사 왜곡인가.
그의 오류는 비단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윤석열 정권의 탄생에도 그는 지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검찰총장 윤석열을 향해 "문재인 정부의 충신", "천하의 헌법주의자", "낭만적인 검사"라며 치켜세운 자가 바로 김어준이다. 그는 데이터나 검증이 아닌, 자신의 ‘무속적 직관’(관상이나 냄새)에 의존해 대중을 선동했다.
자신이 키운 괴물이 대통령이 되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데도, 그는 단 한 번의 처절한 사과도 없이 태세를 전환해 다시금 "이 괴물과 싸우는 투사" 행세를 한다. 병을 주고 약을 파는 것, 아니 괴물을 키우고 그 괴물을 잡자며 입장료를 걷는 것.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무한 동력 비즈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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