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은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날아가야 한다

by 조하나


세계는 지금 '주인의 자격'을 다시 묻고 있다


지금 전 지구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한 문화적 유행이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거대하고도 본질적인 싸움, 바로 '헤게모니(Hegemony)' 전쟁이다. 헤게모니란 쉽게 말해, 누가 이 세상의 '주류(메인스트림)'이며, 누가 표준을 정하는 '리모컨'을 쥐고 있느냐에 대한 주도권 싸움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구, 백인, 남성, 그리고 자본이 만든 표준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견고했던 성벽에 균열이 가고 있다. 그 가장 상징적인 균열을 나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래퍼 배드 버니에게서 발견했다. 그는 그래미 어워드라는, 백인 중심의 팝 음악계가 만든 가장 권위 있고 보수적인 성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언어인 영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된 앨범 <DeBÍ TiRAR MáS FOToS>를 들고 당당히 본상을 거머쥐었다.


과거의 문법대로라면 비주류가 주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 백인의 언어와 매너를 흉내 내는 '동화'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배드 버니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삼았고, 주류 사회가 허락한 '적당히 섹시한 라틴 팝'의 틀을 깨부수며 "우리의 방식이 곧 새로운 표준"임을 선언했다. 이것은 단순한 음악적 성취가 아니라, 문화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탄이다.


이러한 전복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시아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K-팝의 열풍 속에서 우리는 종종 기획사의 매출액이나 빌보드 순위에만 취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소비자'에서 '권력자'로 변모한 동남아시아 팬덤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한국 아이돌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한국 기획사가 인종차별적 실수를 하거나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을 때, 그들은 조직적으로 불매하고 사과를 요구하며 자본의 흐름을 끊어버린다. 과거 한국이 서구권에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동남아 시장을 '하위 시장'으로 보던 수직적 위계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변방이 중심을 타격하고, 객석에 있던 이들이 무대 위로 난입해 마이크를 잡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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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백인'의 가면을 벗고 인간의 얼굴로


그런데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작 '다양성'의 수혜를 입은 한국 사회와 청년 세대에서는 안타깝게도 기이한 분열증이 나타나고 있다. 주류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사회의 열망이 뜻밖의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한국의 청년들은 국내에서는 철저한 약자다. 기성세대가 쌓아 올린 견고한 부동산 철옹성, 꽉 막힌 노동 시장의 절벽, 그리고 '노오력'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스스로를 '헬조선'의 피해자라 자조한다. 586 세대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청년들은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질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린다.


하지만 시선을 국외로, 특히 동남아시아로 돌리는 순간 태도는 돌변한다. 국내에서는 '을(乙)'이었던 그들이, K-팝이라는 국가적 문화 자본을 마치 자신의 계급인 양 착각하며 '갑(甲)'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K-팝 아티스트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 아님에도, 그 후광에 기대어 타인종, 특히 동남아시아 팬들을 "돈이나 쓰는 2등 시민" 취급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이를 사회심리학에서는 서구 백인 주류 사회에 편입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좌절감을, 자신보다 경제력이 약한 대상을 향해 투사하는 '명예 백인' 심리로 분석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기득권 세력이 만든 함정에 완벽하게 걸려든 결과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동남아 멤버를 그룹에 포함시키지만, 그들에게 결코 주도권을 주지 않는 '토큰화' 전략을 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명분만 챙기고 실속은 한국인 경영진이 챙기는 이 기만적인 구조를, 청년들은 비판하기는커녕 내면화하고 있다. 국내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박탈감을, 만만한 외부 대상을 향한 혐오와 우월감으로 보상받으려는 이 슬픈 보상 심리가 우리 눈을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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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가는 화살들: 콜로세움의 검투사가 된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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