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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위도를 찾아서

by 조하나
‘할리 데이비슨과 피아노’에서 이어집니다






나의 위도를 찾아서


이 세계는 차갑다. 잔인하고 냉정하고 가혹하다. 그런데도 행복을 강요한다. 그런데 정작 행복을 말하는 자들이 행복이 뭔지 모른다. 다들 행복을 좇아야 한다기에 나 역시 흉내는 냈으나 사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착한 사람들 눈에만 보여요’ 하기에 안 보이는데도 보이는 척하며 허공에 헛손질만 해대는 느낌이다. 잡지사 에디터 시절, 인터뷰로 만난 박웅현 아저씨는 “행복은 순간의 합”이라고 했다. 각자 삶의 순간을 편집해 나름의 행복을 정의하는 것이다. 행복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행복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엔 행복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세상,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가 싫었다. 본질도 없이 언제나 무언가를 우르르 좇기만 하는 세상의 위선과 가식에 지쳤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끊임없는 채찍질에 제자리걸음만 하는 기분이었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서른이 넘어서야 직장인이 되었다. 나라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니 내가 마치 어른이라도 된 것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철없는 애였고, 세상은 이해 안 되는 것들과 모순 투성이었다. 주변엔 적당히 타협하는 선배와 동료들이 점차 늘었고, 모였다 하면 땅과 아파트와 주식 이야기만 늘어놨다. 그들 중 하나가 투기 사건 연루되었다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형사, 민사 사건에 휘말려 경찰서라도 가게 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경찰서에, 검찰에 아는 사람 없냐”부터 묻는다. 사기를 치는 사람도, 인맥과 로비로 빠져나가는 사람도, 우리들 중 하나다. 그러면서 마치 우리가 전부터 견고히 쌓아온 공정과 정의라는 게 있었다는 듯 군다. 우리는 애초에 가진 게 없었기에 실망할 것이 없다. 좋은 면도 있다. 앞으로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깨를 으쓱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뭐, 먹고살다 보면… 어쩔 수 없잖아, 너도 알면서… 안 그래?’ 하는 어른이 되긴 싫었다. 그러려면 우선 내 앞가림부터 잘해야 한다.


평생을 주도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실체도 없는 세상과 사회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면서 오늘도 적당히, 별 탈 없으면 ‘오케이, 땡큐’ 하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의 마음으로. 초고속 경제 성장 시대, 한껏 부푼 기대와 희망 속에서 태어나 삼성 회장이 대통령보다 추앙받는 시대를 관통한 ‘밀레니엄 세대’는 세계화와 글로벌 금융 위기, 고용시장의 유연화 등등을 거치며 ‘88만 원 세대’로 전락했다. 이제와 우리는 ‘82년생 김지영’ 정도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가까스로 청년기의 터널을 지나왔지만, 지금 이십 대를 보면 그나마 우리가 조금 더 나았나 싶기도 하다.


모두들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는 와중에도 다행히 늦게나마 좋아하는 일을 찾아 신나게 열심히 했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나에게 ‘결혼’ ‘출산’ 같은 결재 서류를 자꾸 디밀었다. 부천에서 강남까지 매일 출퇴근 왕복 3시간, 지하철 차창 밖으로 한강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중 하나의 불빛을 가질 수 있을까?’ 답은 쉬웠다. 당장 은행에 가 대출을 받고 회사에 충성을 다짐한다. 더럽고 치사해 사표를 내고 싶을 땐 담배를 많이 피우면 된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누구든 밟아야 하면 밟고, 좀 더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 튀는 짓을 골라하고, 정치도 잘하고, 상사에게 손바닥도 잘 비비면 된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대출금을 갚아나가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슈퍼맘’이 되어 또 대출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늙어 죽을 때까지 그 대출금을 갚으며 살면 된다. 내 인생은 결국, 그렇게 가기로 되어 있던 거였다.


좋은 답을 얻으려면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잡지사 기자로 일하며 배웠다. 하여, 내 질문은 애초에 틀렸다. ‘내가 저 중 하나의 불빛을 원하는가?’라고 물어보는 게 맞다. 아니, 적어도 나는 아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 한 칸에 수십억을 주고도 위, 아랫집이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 뭐하는지, 언제 씻는지, 왜 싸우는지 다 들어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 인생에 돈도, 쾌적한 주거도, 먹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소유를 함으로써 사람은 독립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끝이 없다. 소유의 욕망이 도를 넘으면 사람은 소유욕의 노예가 된다. 소유를 위해 시간을, 인생을 희생한다. 조직에 소모되고 조종당하면서도 안정적이다, 행복하다 자기 최면을 건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 자체를 아예 멈춰버렸다. 똑똑한 바보들이 되어버렸다. 세상에서 나에게 이리오라, 함께 하자 손짓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불행하고 절망적이라 해서 나까지 동참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도대체 나는 무엇을 원하나? 여태껏 다른 사람들에게 수없이 던져온 질문을 정작 나에겐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지금껏 누군가의 뮤즈로만 살아왔으니 이제는 스스로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내 진짜 삶을 사는 예술가. 내공과 경험과 시간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 내 이야기를, 내 삶을, 내 작품을 내놓을 수 없다는, 우주에 쓰레기를 내놓을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내밀어 미뤄오기만 했다. 남들은 늦었다고 하는데 나는 한창이었다. 평균 수명도 길어져 앞으로 살날도 끔찍하게 많은데 사회는 계속 모든 커트라인을 앞당기기만 했다. 끝이 어디인지, 어떻게 하면 이기는지 룰도 모르는 게임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더 이상 이 세계의 배경음악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소심한 의심과 반항과 방황을 반복하면서도 게임 자체를 그만두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두려워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판을 뒤엎어버리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관두고 떠났다. 잘 모르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이도 저도 아닌 자폭인 건지. 다행히 나에겐 딸린 식구가 없었고, 내 결정을 쿨하게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불효를 한다는 가책 없이 내 인생을 나만의 작은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 나에게서 과연 패션지 기자라는 수식어를 빼면 무엇이 남는지 알고 싶었다. 명함이라는 건 나를 이 사회에 필요한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결국 나는 누군가가 정한 월급만큼의 가치만큼으로만 평가된다. 그 이상 꿈꾸는 건 사회에서 금기다. 조직에서 그런 개인은 환영받지 못한다. 나는 매달 월급을 따박 따박 받는 대신 그만큼 순종적이고 충실하며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소모적이고 의미 없는 증명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오랜 시간 기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쓰는 건 충분히 했으니 진짜 내 삶을 살고 내 이야기로 가득한 책을 쓰고 싶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매일 다이빙하며 바다 가까이, 태양 가까이 살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삶의 순간순간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더욱 빛나고 단단한 글이 나올 것이다. 그 글이 돈이 되지 않는대도 상관없었다. 선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지는 법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 번도 내 의지대로 풍경을 바꿔본 적이 없었다. 이제 그걸 해볼 시간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아 확신이 없었지만 그래서 영영 해보지 않는 건 내 소중한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지금껏 자기 검열과 자기혐오와 합리화에 발목을 잡혀왔으나 결국 나는 열등감을 에너지 삼아 자존감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살면 되지 않냐, 비겁하게 도망치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 따져 물어도 괜찮았다. 그래, 나 도망치는 거다, 어쩔래. 도망이라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거야, 이 사람아.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방콕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아니, 그 반대다. 비행기 표를 결제한 후 회사를 그만둔 게 더 정확한 타임라인이다.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패션지 에디터 자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주변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부럽다” 그리고, “앞으로 뭐 먹고 살 건데?” “부럽다”의 경우야 자신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고, “앞으로 어쩔 건데?”는 알 바 아니다. 내 인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니고 회사를 대신 다녀줄 것도 아니고 먹여 살려줄 것도 아니지 않나. 어차피 그 오지랖 넓은 남 걱정은 자신과의 비교로 이어질 테고, 결국 나에게 물음을 던진 그 사람 자신을 좀먹을 텐데. 직업 특성상 주변에 나름 ‘오픈된’ 혹은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이 서울의 무언가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반응은 다를 게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건, 바로, 내 인생이니까. 내 인생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은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 누구에게 그걸 허락받을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다. ‘그 좋은, 안정된, 인정받는 직장’을 그만두고 당장은 신나게 논다 쳐도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대답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다. ‘그 좋은, 안정된, 그리고 인정받는 직장’에 다니는 동안 통장에 돈은 조금씩(아주 더딘 속도로) 쌓이겠지만, 그동안 내가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 더 값지다 여기는 것뿐이다. 어떤 가치의 경중도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 서울에서 내가 가장 시달렸던 것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학습되고 교육되고 관습화 된 일반화의 폭력이었다. 나이 몇 살엔 졸업을, 몇 살엔 취업을, 몇 살엔 결혼해야 한다는 일반화를 나는 경멸한다. 나이 오십이 되어도 결혼을 안 하는 이가 있을 것이고, 나이 스물에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 사람을 ‘무리’를 구성하는 부품으로 보지 않고 그저 사람 한 명 한 명을 따로 보는 것, 나는 그저 하나의 ‘객체’로 살기 원한다.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 맞다.


3년 전, 일본 이시가키 섬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 벤(Ben)과의 대화가 내 인생을 또 다른 챕터로 이끄는 열쇠가 되었다. 서른 언저리에서야 겨우 찾은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심지어 ‘여자 나이 서른이면 인생 끝’이라는 폭력적인 발언에 시달리며 사는 나이) 매거진 에디터가 되었고, 소규모의 독립 매거진에서 3년을 보내고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메이저 매거진으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다음 관문은 ‘결혼’과 ‘가정’이었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원하지 않는 그것 때문에 얼마나 더 싸우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만난 벤은 나에게 “꿈이 뭐냐”라고 물었다. ‘뭐라고?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겨우 찾아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꿈이 뭐냐고?’ 나는 10년이 훌쩍 넘도록 다이버로 사는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이빙하고 먹고사는데 불안하지 않으냐고. 너도 어딘가에 ‘정착’이란 걸 하고 ‘가족’을 꾸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세상에나.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사람들이 나에게 퍼붓는 질문을 내가 그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나도 알게 모르게 학습된 그 질문, 그리고 오지랖. 그러자 그는 나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Why Not?”


단 두 단어로 조합된 그 짧은 문장에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을 지금 내가 너에게 하고 있다고. 한국에서 나는 이미 너무 늙어버려(늙은 사람 취급을 받는 게 맞겠지) 무언가 새로운 걸 꿈꾼다거나 바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러자 벤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나이를 물었고(서양 문화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가 되어도 웬만하면 나이를 묻지 않는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Oh, My God! You are so fucking young!”이라며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에서 내 나이는 ‘한물간 노처녀’ 소리를 듣는데 이 친구에게는 ‘Fucking Young’인 거였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울려 살고 싶은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평균 수명으로만 따져도 나는 앞으로 50년은 더 살 터, 일찌감치 내 인생의 사형 선고를 제멋대로 내리는 사람들과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의 스쿠버 다이빙 입문 과정의 강사이자 이제는 소중한 친구가 된 벤과의 대화 이후, 나는 한국에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다.


바닷속에 들어가 너무 황홀해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며 벤은 오픈워터 이후 코스인 어드밴스드 자격을 어디서든 꼭 취득하라고 했지만 나는 또다시 절망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일 년에 한 번 일주일 휴가를 얻는 것도 굉장히 눈치 보이고 벅찬 일이라고. 일 년에 연차가 얼마나 되느냐는 그의 질문에 십 며칠 정도 되는데 그것도 한꺼번에 쓰는 건 꿈도 못 꾸고, 직장인 대부분이 그 해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한 연차가 남기 일쑤라 대답했더니 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 너는 연차가 1년에 30일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프랑스에서 살다 왔으니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


다음 해 보라카이에서 벤을 만났을 때도 그는 물었다.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을 구별하는 법을 알게 됐다며(우리가 서양인들의 국적을 구체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듯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쉬겠다고 휴가를 와서도 항상 드레스업 된 상태에 메이크업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걷는데도 힐을 신느냐고, 신혼부부들이나 이용할만한 고급 리조트에 숙소를 정하고 아침부터 온갖 관광지를 싸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클럽에서 흔들어 젖힌다고, 해변에 휴가 와서 정작 단 하루도 해변에 느긋하게 누워있질 않다고,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그가 한국인을 이해 못 하는 것도 당연했고, 한국인들이 그런 식으로 여행하는 것도 당연했다. 일주일이 채 될까 말까 한 일정으로 휴가를 오는 한국 사람들이 한 달 이상 장기 체류하며 느긋하게 여행하는 유럽인들의 스타일과 다를 수밖에. 우리는 쉬겠다고 휴가를 가서도, 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비운의 운명인 것이다. 여기서 ‘관광객(Tourist)’와 ‘여행자(Traveler)’가 구분되는 거겠지.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살면서 한 달 이상의 장기 여행은 꿈꿔본 적도 없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고, 또 먹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이를 먹을 것이 뻔했다. 앞날이 예측 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안정적이다’라고 말하지만 끝없이 권태와 싸우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불안에 잠식당하는 건 어떤 삶을 살든 벗어날 수 없다. 그저 ‘안정’이라는 착시 효과에 취해 나에게 허락될 수 없는 것을 꿈조차 못 꾸며 살아간다는 것,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도무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나는 결국, 그 상황을 내 현실로 만들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내 삶이 고작 30킬로그램 슈트케이스 하나로 정리됐다. 사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았다. 인생은 어쩌면 그리 복잡하지 않고, 또 그리 어렵지 않을 걸 지도 모르겠다.


두려웠다. 내 앞날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런데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구름 모양이 바뀔 때쯤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미소가 스윽 번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내 예측 범위를 넘어선,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흥분하고 기대해야 할 일이었다. 인생에서 맞이할 모든 순간이 예측 가능해야 안전한 건가? 아니, 예측 가능한 삶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한가? 세상으로부터 배운 거짓말을 하나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시에 사는 우리가 그렇게 끝도 없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서 어디, 다들 행복하던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삶의 곳곳에서 깊게 베인 상처도 내가 스스로 준 것이니 삶의 환희와 축복도 내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진정한 행복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비교를 멈추고 나니 진정 내가 보였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게임에서 이기는 걸 목표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도록 교육받고 훈련받았다. 나는 그렇게 살겠다 동의한 적도, 선택한 적도 없다. 나는 승리자와 실패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꼬리표를 붙이지 않겠다. 나는 아름답고 강인한 생존자다. 나는 나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맞는 위도를 찾아서 도망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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