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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Mar 31. 2024

‘뼛속까지 문과인’에게 <삼체>가 던지는 우주적 질문

우주와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왕좌의 게임> 제작진의 도전.


*이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넷플릭스


중국의 역사와 중국인의 정체성이 얼마나 복잡하고 뿌리 깊은지를 고려할 때 중국 작가 류츠신의 공상과학 소설 <삼체>를 서양 관객의 구미에 맞게 각색한다는 아이디어는 듣기만 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장대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는 이미 광활한 세계관을 대중적으로 다뤄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왕좌의 게임> 제작진,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 B. 와이스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쇼를 성공시키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죠.      


물리학을 거스르는 미스터리부터 메타버스 게임, 다른 세계의 존재와 처음으로 접촉하는 인류에 초점을 맞춘 넷플릭스의 <삼체>는 ‘뼛속까지 문과’인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 없는 분야들을 총망라한 시리즈였습니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죠. 그러다 우연히 제작진을 보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3일 만에 시리즈 정주행을 마쳤습니다. (다른 일정이 없었다면 하룻밤에 다 봤을 거예요.)   


3개의 태양이 하나의 행성에 미치는 영향부터 양성자 크기의 슈퍼컴퓨터가 지구상의 모든 입자가속기의 결과를 동시에 간섭하는 방법까지, 원작 소설 <삼체> 자체가 과학적으로 밀도가 워낙 높기에 제작자들은 이걸 어떻게 전 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오락적으로 풀어낼지, 원작 소설에서 어떤 요소를 보여주고, 또 어떤 요소를 뺄지, 오랜 시간 동안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을 겁니다. 시각 효과 팀은 현재 우리의 문명보다 앞선 첨단 과학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데 공을 들였을 테고요.                


ⓒ 넷플릭스



공개부터 심상치 않은 <삼체>에 대한 세계적인 반응      


2024년 3월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는 현재 93개의 국가에서 상위 10위 안에 랭크되며 <더 젠틀맨>에 이어 2위를 달리는 등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중국 소설의 세계관을 다룬 작품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이 있었나 싶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는 중국 작가 류츠신의 동명 소설 <삼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설 <삼체>는 2008년 중국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이후, 2014년 영어 번역본이 출판되어 서양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2015년, 휴고상을 받게 됩니다. <삼체>는 류츠신의 공상 과학 소설 3부작 <지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의 첫 번째 책인데요. 2020년 공화당 상원의원 5명이 위구르 무슬림에 대한 류츠신 작가의 발언을 문제 삼아 넷플릭스에 시리즈 제작 재고를 요청하는 등 이 소설이 TV 시리즈로 각색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같은 해 “류츠신 작가는 이 시리즈의 제작자가 아니라 책의 저자이다”라고 성명을 발표하죠.     



<삼체>를 보고 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 대한 리뷰와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대다수의 리뷰들은 이 시리즈를 그 독창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SF 요소, 원작 소설에 충실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일부는 캐릭터 묘사나 스토리 전개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삼체>의 첫 번째 시즌이 끝나고, 이 방대한 과학적 지식과 배경, 다양한 시간대, 복잡한 캐릭터를 8개의 에피소드에 깊이 있게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저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선 묵중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삼체>의 영상미와 제작 퀄리티는 서두에 잠깐 언급했듯 훌륭합니다. 복잡한 스토리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과학적 개념들이 시각적으로 잘 표현됐어요. 시각 비주얼 팀 역시 <왕좌의 게임>에서 이미 제작진과 호흡을 맞춘 스테펜 팡마이어 감독이 이끌었습니다.      


ⓒ 넷플릭스


<삼체>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임팩트 있었던 시퀀스는 에피소드 5 ‘심판일’에 나오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 씬이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와이어의 소름 끼치는 서슬 퍼런 날카로움이 피가 낭자하고 신체 부분이 날아다니는 장면보다 사실적이고 건조하게 만들어진 장면을 통해 더 현실적으로 전달됐죠.      


ⓒ 넷플릭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이 시퀀스는 애초에 실제 파나마 운하에서 촬영하려 했다고 해요. 하지만 최근 파나마 운하에서 일어난 사고로 불가능해졌죠. 그래서 비주얼 팀은 선박과 선박 파괴를 애니메이션 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런던 외곽의 올림픽 조정 시설을 기반으로 운하 자체를 CG로 재현하고 후반 작업에서 훨씬 더 열대 지방의 느낌이 나는 파나마 운하로 바꿔야 했다고 합니다.           



외계인이 지구로 오는 데 걸리는 시간, ‘400년’     


그동안 제가 접했던 대부분의 SF 영화나 시리즈는 ‘시간이 없다’는 설정에 충실합니다. 인류의 현재 문명보다 월등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날아오거나, 혹은 이미 도착한 뒤에야 인류는 이를 깨닫습니다. 그렇게 SF 시리즈는 인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을 처절하게 다루죠.      


하지만 <삼체>는 시즌 내내 외계인이 ‘오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인류는 외계 문명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과학적 진보를 멈춰야 하며, 인류의 새로운 지배자를, 인류의 멸종을 400년 동안 여지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설정 말이죠. 외계인이 오고는 있는데, 400년 후에 지구에 도착한다는 설정은 낯설고도 색다른, 느슨한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명이 다하면 죽는 유한한 존재인데도, 지금 당장 외계인이 침공해 죽는 것과 400년 후에 죽는 것을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외계인이 지구를 향해 오고 있다, 400년 후에 도착할 것이다”라는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장면이 이를 상징하죠. 끊임없이 진화해 온 인류의 전진을 멈추고, 하늘을 덮은 감시의 눈에 모든 것을 드러내며 살 바엔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작심은, 참으로 인간다운 선택입니다.           




상처받은 인간은 상처를 되풀이한다     

 

중국 문화 대혁명 시대의 희생양이 된 예원제가 겪은 극심한 고통과 배신은 지독한 트라우마가 되어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끼는 제자가,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심지어 딸까지 희생되어도 눈 하나 꿈쩍 안 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작정 손가락질을 할 수도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예원제의 손가락엔 인류의 온갖 죄악이 모두 묻어있으니까요.      


예원제는 지속될 가치가 없는 인류를 각성하기 위한 촉매제 같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저 피해망상과 복수심에 불타 비상한 두뇌와 강철 같은 심장으로 외계의 존재를 지구로 초대한 악의 근원일까요? 이 또한 <삼체>는 우리에게 질문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예원제는 이 모든 것의 시작과 근원이고, 한 사람이 아닌 인류를 상징하기에 그가 겪은 삶을 보다 심도 깊고 자세히 다뤘으면 해요. 수십 년 전 자신이 시작한 일의 진행 과정을 평생 동안 조용히 지켜봐 온 마음과 신념, 죽기 직전의 심정도. 한 시즌, 8개의 에피소드로는 물론 한계가 있을 테니, <삼체> 시리즈가 성공을 거둔다면 예원제에 대한 이야기를 프리퀄로 따로 다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넷플릭스




<삼체>가 던지는 우주적 질문     


‘삼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적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인간과 외계 문명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야기는 심오한 인간적, 철학적 탐구로 나아가죠. <삼체>는 무한하고 복잡한 우주를 점차 인식해 나아가는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 속에서 과연 인간은 그러한 우주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인간의 행동과 선택이 어떠한 우주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가치관과 도덕적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오픈 AI와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며, “인류는 결코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넘쳐나다 못해 오히려 만성이 되어 버린 지금, 이 시점에 <삼체>의 등장은 시리즈 속의 이야기와 설정이 더 이상 허무맹랑한 ‘공상’ 과학이 아닐 거란 생각마저 들게 하죠.      


또한, <삼체>는 중국의 문화 대혁명 시대에 깊은 트라우마와 상처를 받은 예원제를 통해 과연 진실은 무엇이며, 권력은 어떻게 진실을 형성하고 조작하는지, 우리 사회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습니다. 혼돈의 정치가 계속되는 현실의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죠. 현재 대한민국의 우주과학 분야는 멈춰있으니까요.      


<삼체>는 오락용 SF 시리즈를 넘어 인간의 존재 의미, 인간의 운명, 그리고 우주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관객을 깊은 사유의 장으로 초대합니다.      


더불어 중국 작가의 시각이 담긴 원작 소설이 영미권 제작진에 의해 해석된 시리즈인 만큼 문화적 상대주의와 글로벌 시각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시청자들이 어떻게 작품을 다르게 해석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삼체’의 문제 VS 예원제의 문제

이는 <삼체>의 이야기가 시작된 근본적인 원입니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 기간 동안 온갖 배신과 고난을 경험하며 인류라는 종족에 신물이 난 예원제는 인간 사회에 대한 실망, 복수, 그리고 우주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찾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외계 문명 역시 ‘삼체’의 문제로 끊임없이 파괴되어 재건해야 하는 자신들의 행성을 대체할 곳이 필요합니다. 태양이 3개인 태양계는 매우 불안정하여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태양계에서 살기 위해 우주를 가로질러 여행하고 싶어 하죠. 태양은 하나뿐이므로 지구의 미래는 적어도 향후 수백만 년 동안은 비교적 예측 가능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행성에 살지만, 고도로 발달한 문명으로 인간처럼 살아남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짓밟고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해 거짓말을 하거나 위선을 떨지 않는, 아니, 아예 그런 개념조차 없는 외계인들은 반대로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태양계의 행성에 사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을 흥미로워했을 것 같아요.   

   

자신들이 지구로 와야 하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외계인

<삼체>에 등장하는 외계 문명은 놀랍도록 친절하게, 자신들의 행성이 겪고 있는 극단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 새로운 행성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설명합니다. 어쩌면 외계인은 자신들의 생존의 필요성과 더불어 인간과의 교류를 통해 이해와 공감을 얻고자 했던 시도가 아닐까 싶어요. 오히려 인류에 호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외계 문명은 인류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옥스퍼드 파이브’의 잭을 죽인 건 인간이었고, 그를 명령한 것도 인간이었지, 외계인이 한 건 CCTV에서 인간의 흔적을 지운 것뿐이니까요.      


인류가 종말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고 ‘노아의 방주’ 같은 ‘심판일’ 호를 짓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승산 없는 싸움에도 결기를 가지고 저항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경외감을 느껴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같은 이유로 파괴하려고 하죠. 그 와중에 어떤 인간은 암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1,950만 달러를 들여 별을 사주고, ‘계단 프로젝트’에 자원해 우주로 발사될 로켓에 자신의 뇌를 기능해 지구로 향하는 외계인의 함대를 요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극히 인문학적인 인간으로서 저는 개인적으로 윌의 태도가 가장 숭고하다 생각합니다. 누가 맞고 틀리고는 의미가 없어요. 그저 ‘희망’이라는 커다란 개념 아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대응 모습이 있을 뿐입니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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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은 오히려 인간을 두려워한다 

인간이라는 족속의 내부 갈등과 문제점, 인간 사회의 폭력성과 불안정성, 그리고 자기 파괴적인 경향을 목격한 후 인류를 위협으로 간주한 외계인은 인류를 배제하고 제거 선상에 둡니다. 외계인을 ‘My Lord’라 부르며 깍듯이 모셔온 인간과 형성된 신뢰는 얼마나 빠르게 다른 방향으로 급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너희는 모두 벌레야” 라며 인류를 하찮고 무의미한 존재로 규정하는 외계인의 모습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이 보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외계인이 오히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습득한 스킬인 위선과 거짓말, 변덕스러움 등의 삶의 방식에 대해 위협을 느낀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인간의 문명사회에 비해 수십 년이나 앞서는 고차원 외계 문명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그런 삶의 방식을 쓸 필요가 없는데, 외계인이 유일하게 인간에 비해 앞서지 못한 부분이니까요.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데 그걸 알아챌 능력이 외계인에게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공생 관계가 아닌 위협이자 제거 대상이 되니까요. <삼체>의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하는, 해충제를 쓰고, 땅에 독을 뿌려도 결코 없앨 수 없는 ‘벌레’처럼 외계인은 인간 문명의 복잡성과 잠재력을 뚜렷하게 인식하기에 인간을 통제 불가능하고 위험한 존재로 평가해 방어적 태도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우리는 벌레다

<삼체>를 보다 보니 인간의 잠재력, 변덕스러움, 그리고 인류의 과학 기술적 진보,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자원에 대한 탐욕이나 전쟁 같은 파괴적인 성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고유한 특성이자 외계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아닐까 싶더군요. 인간의 벌레 같은 악착같은 생존 본능은 외계인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니까요. 


ⓒ 넷플릭스


만약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난다면 이 인류는 어떻게 대응할까 상상해 봅니다. ‘돈, 돈, 돈’ 하며 ‘더, 더, 더’ 하며 살고 있는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가진 것을 모두 이고 지고, 화성으로 떠날까요? 아니면 지구에서 서로를 돕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걸 찾을까요?      



✓ 넷플릭스에서 ‘종말’을 다룬 시리즈 중 제가 수작으로 꼽는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 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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