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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Apr 05. 2024

피 묻은 슈트를 입은 모순의 남자들

넷플릭스 <젠틀맨: 더 시리즈>에서 '조국'을 발견하다. 


*이 글은 넷플릭스 <젠틀맨: 더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7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가이 리치 감독의 <젠틀맨: 더 시리즈>는 현재 글로벌 랭킹 3위와 영국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히트작입니다. 가이 리치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고, 시작되는 2개의 에피소드를 직접 감독, <피키 블라인더스>의 총괄 프로듀서였던 매튜 리드와 함께 대본을 썼죠.     


ⓒ 넷플릭스




쿨 가이,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


저는 마약과 복싱, 괴짜 갱스터라는 단골 소재를 사용해 가족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여전히 왕족과 귀족이 있는 나라 영국의) 견고한 계층 사회를 비틀고 냉소적 유머로 양념을 친 가이 리치 스타일의 영국식 블랙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가이 리치가 누군가요! <록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1998)와 <스내치>(2000)로 영국적인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키네틱 액션 영화를 제대로 선보인 (‘왕년에 잘 나가던’이라는 느낌이 좀 있긴 하지만) 바로 그 감독 아닌가요! 넷플릭스 <젠틀맨: 더 시리즈>는 가이 리치가 감독하고 매튜 맥커너히와 콜릴 파렐, 휴 그랜트가 출연한 영화 <더 젠틀맨>(2020)과 제목은 같지만, 세계관만 비슷할 뿐 영화의 스핀오프나 리메이크작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시리즈를 감상하는 데 전혀 문제없습니다.


넷플릭스 <젠틀맨: 더 시리즈>에서 가이 리치는 영국식 범죄 영화의 뿌리로 돌아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왕년의 쿨했던 동네 오빠가 돌아온 느낌이랄까요. 점프컷, 슬로모션, 레이어드 이미지, 미장센에 끼어 넣는 자막, 그리고 하나로 합쳐진 세상이 곧 무너져 내일 것이라는 시각적 암시 등 가이 리치의 전성기 스킬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유행은 20년 주기로 돌고 돈다는데, 요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로우 라이즈 핏 진이나 본더치 트래커 햇이 유행인 것처럼 가이 리치의 스타일도 엣지를 풍깁니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난 착할 수도 있고, 착하지 않을 수도 있어


개인적으로 시리즈의 스타일리시함도 좋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캐스팅의 조합이 꽤 마음에 들어요. 언제나 그렇듯 가이 리치는 기발하고 사소한 캐릭터들을 기묘한 퍼레이드처럼 소개합니다. 글라스 가문의 마리화나 수석 재배자 지미부터 목사이자 갱스터인 가스펠, 미국 억만장자이자 거대 마약 조직을 거느린 스탠리 등 모든 캐릭터들이 제 색깔을 냅니다.


‘마돈나의 전 남편’으로도 유명한 가이 리치가 남성 캐릭터로 가득한 범죄 영화에서 창조하는 여성 캐릭터는 항상 흥미롭습니다. 가이 리치의 영화에 나오는 여성은 대부분 남자 주인공의 기대나 가정에 얽매이지 않는, 강단 있고 재치 있는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조하거나 그들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고, 중심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방향키를 쥐고 있죠.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연기한 수지는 에디가 마약 사업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도록 돕고, 아버지를 보좌하거나 때론 대립합니다. 또한, 에디와 프레디의 실수를 해결하고, 골동품 시계에 대해 질문하는 존스턴에 재치 있게 맞서고, 오빠 잭을 보호하느라 바쁘죠. “난 착할 수도 있고, 착하지 않을 수도 있어”라 말하며 애교 섞인 콧소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합니다. 저뿐 아니라 그녀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지금 전 세계에 수두룩합니다. 얼굴이 너무 예뻐 그동안 연기자로 손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나 훌륭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가이 리치가 정의하는 젠틀맨

원래대로라면 아버지의 공작 작위와 모든 유산은 에디 대신 장남인 프레디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특권과 부를 가진 프레디는 정작 ‘젠틀맨’ 타이틀만은 갖지 못합니다. 억만장자인 미국인 마약상 스탠리 역시 대저택부터 예술품, 고가의 와인까지 영국 귀족의 모든 것을 흉내 낼 순 있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젠틀맨’이라는 귀족의 타이틀 Your grace’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에디에게는 ‘젠틀맨’이라는 타이틀이 허락될까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공작 작위와 부동산 등 모든 걸 상속받게 된 에디는 정작 융통할 현금이 없는 캐시 푸어’입니다. 거대한 저택을 굴리는 데 드는 막대한 유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범죄 조직과의 연결을 끊어낼 수도 없죠. 에디는 어두운 그림자의 범죄 비즈니스에서 가족을 구하려 하지만, 숙명처럼 계속 범죄에 연루되며 재능까지 보입니다.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어’ 보이지만 심지어 자신이 누구보다 더 즐기고 있죠. 에디는 늘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통제합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배운 군인으로서의 전투 기술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유용하게 쓰고, 가족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편안하게 폭력을 행사하며, 법을 어기고 권력을 얻으며 범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깁니다. 허영과 욕망으로 가득한 계층 사회 시스템의 정점을 상징하는 고고한 귀족이 질펀한 핏빛 정글을 자유롭게 오가며 숨겨둔 야수성을 드러냅니다. 우아한 동물원의 방식이 아닌, 정글의 방식으로 이빨을 드러내며 자기 것을 지키죠. UN군에서 평화를 지키던 에디의 총은 본능적인 권력욕과 야성을 드러내는 데 쓰입니다. 모순적이죠. 기품 있는 귀족의 저택 지하에 수천 톤의 마리화나 재배실이 가동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처럼 말입니다.       


우아한 상류층 귀족 에디의 슈트엔 점점 피가 묻어가고, 마약 범죄 사업으로 왕국을 거느린 억만장자 스탠리는 그런 에디에게 이렇게 말하며 그의 숨겨진 야성과 본능을 깨웁니다. “내가 영국 귀족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그들은 원조 갱스터들이죠. 그들이 이 나라의 75%를 소유한 이유는 이 나라를 훔쳤기 때문이에요. 정복자 윌리엄은 알 카포네보다 더 나쁩니다.” 귀족 사회와 지하 범죄 조직의 세계는 다른 듯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 뉴시스




젠틀맨 조국의 야수성과 카타르시스


넷플릭스 <더 젠틀맨: 더 시리즈>는 동물원에서 정글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에디가 생존을 위해 싸우는 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돈된 말투와 억양, 몸짓, 차 마시는 모습 등 모든 게 상류층 귀족, 그 자체를 상징하던 에디가 8편의 에피소드에 걸쳐 옷차림부터 표정, 말투, 눈빛까지 바뀌는데요. 바로, ‘야수성’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조국혁신당의 대표 조국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해외 생활을 할 때 유독 영국인들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냈던 저는 놀라울 만큼 영국과 한국 사회의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예절과 명예, 가족, 책임감,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 알아서 규제하고 감시하는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작용하죠. 그들은 그들의 물에서, 우리는 우리의 물에서 놀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계층 간의 유리천장이 방탄유리급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판타지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조국 사태 당시 저는 해외에 살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모두가 청렴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워진, 기괴한 집단 최면에 빠진 한국 사회를 보면서 한편으론 상류층, 지식층에 고고하고 청렴한 이미지까지 갖췄던 조국에 한 순간에 등을 돌려버린 대중의 마음도 이해가 됐습니다. 정치인이든 셀러브리티이든 대중은 그들의 욕망과 희망과 페르소나를 투영하는데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외모 좋고, 능력 좋고, 정의롭기까지 한 ‘서울대 교수’ 조국에 투영된 대중의 꿈과 희망이 짓밟힌 듯한 실망감과 배신감은 배가 되었을 테니까요. 고위공직자에 지식층, 상류층에, 고고하고 청렴한 이미지까지 가진 사람이 정의롭기까지 하다니, 우리가 여태 그런 정치인을 본 적이 있었나요.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마음을 많이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더 실망하고 상처받은 걸 테고요.


조국은 대한민국에서 ‘서울대 교수’ 하면 자연스럽게 이 사회가 떠올리는 이미지,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터키 국경을 지키며 UN군으로서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보호’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에디만큼이었습니다. ‘젠틀맨’ 에디가 보호의 의무를 넘어 공격과 정복의 욕망을 드러내며 지하 세계의 범죄 조직과 엉켜 싸우며 슈트에 피를 묻히자,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교수’ 조국이 살던 우아한 동물원은 ‘피고인’ 조국의 야생 정글로 진화하며 그의 야수성을 깨웁니다. 조국의 숨겨둔 본능인지, 생존을 위한 즉흥적 수단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적 없는 눈빛을 하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이는 조국에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여기서 조국의 도덕적 딜레마는 중요치 않습니다. ‘악’을 이용해 ‘악’을 물리치는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치니까요. 우리는 다시 조국에 자신을 투영합니다. 적당히 흙과 피가 묻은 슈트를 입은 그에게 공감하기란 이전보다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우리는 <젠틀맨: 더 시리즈>를 통해 옳고 그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전략적 사고와 행동, 위험한 환경에서의 적응력과 생존 본능을 선보이며 범죄 사회의 잠재력 높은 차세대 리더(?)가 된 에디의 성장을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코가 석자인데도 점잔만 떨고 있는 양반인 줄만 알았던 ‘잘나고 약한 캐릭터’ 조국이 날카로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야성적인 생존 방식 또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전국에 생중계되어 온 공개 처형과 마녀 재판으로 조국은 잔인하고 가혹한 서사까지 획득했습니다. 가이 리치 식의 '젠틀맨'의 탄생입니다. 우리는 지금 마치, 조국으로 만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느낌일 겁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이야기의 흐름에 개입할 수 있는 총선 시간의 유권자죠.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이슈가 된 <젠틀맨: 더 시리즈>를 보고, 제가 생뚱맞게 조국을 떠올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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