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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Sep 27. 2022

제주도 뚜벅이 여행 - 무계획의 셋째 날 (1)

 

배고픔에 눈이 떠졌다. 9시 반쯤 되었나, 준비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뭐할 건지는 사실 배부터 채우고 생각하자였다. 지나가면서 보았던 협재에 칼국수집에 들어갔다. 하필 웨이팅이 있었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뭐 먹을지 고민도 안 하다가 들어갔고, 얼떨결에 주문을 받아서 시켰다. 나는 이 집 메인 메뉴인 보말칼국수 하나를, 남편은 한치 물회를 시켰다.


"오빠 근데 물회를 먹을 거면 칼국수 집이 아니라 회 전문식당에 가면 좋을 텐데."

"그런가?.. 그럼 하나는 죽 시킬까?"

".. 아냐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어!!"

굳이 남편이 먹고 싶은 것을 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나 한치물회는 뭔가 심심한 맛이 났고, 웨이팅 할 정도로 먹을 맛은 아니었다. 남편은 음식을 남기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남겼으니 말 다했다. 남편도 역시 '너 말을 들을 걸' 이라며 살짝 후회하는 눈짓이었다. 나 또한 칼국수가 웨이팅 해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번 한림에서 먹었던 보말수제비가 생각나서 솔직히 아쉬웠다. 식당에 음식에 대해 평점 매기듯 나오고, 둘이 멋쩍게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다음에는 꼭 맛있는지 검색하고 가자"

 여행 와서 기왕 음식값을 지불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지 않을 때,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매 끼마다 다른 종류의 음식을 먹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차를 타고 다닐 적에는 맛집을 주로 검색해서 다니기 때문에 대부분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일단 배고프면 들어가기 때문에 미리 근처에 맛집을 찾아놓지 않고 정처 없이 들어가게 되면 실패할 확률도 생긴다.

고로, 뚜벅이 여행자의 경우에 인근 맛집 식당을 미리 조사하고, 그날그날 어느 정도 계획이 필요한 듯싶다.

맛집 리스트에 미리 봐 뒀던 곳을 그날 가야겠다고 찾다 보면 생각보다 주중에 휴무날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날은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었다. 바다를 보며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쓰고 싶었다. 밥을 다 먹고 협재해변 앞에 눈여겨보았던 바다 바로 앞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냄새가 심하다며 나가자고 했다. 나도 맡았다. 음.. 뭐지? 똥냄새인가 싶은 냄새.

'하수구가 역류했나?' 서로 쳐다보고 멀뚱거렸는데 직원이 무언가 급히 뿌렸는지 갑자기 페브리즈보다 독한 향과 섞여서 났다. 나는 조금만 참아보자고 눈짓을 했고 남편은 못 견디겠다며 다른 곳에 가자고 하여 결국, 밖으로 나왔다.

 

"거기가 딱 바다가 잘 보이고, 책 읽기 좋은 카페로 원픽이었는데"

"나 냄새에 예민한 거 알지. 굳이 돈을 쓰면서 불편함을 겪는 건 싫어."


맞는 말이긴 했지만 조금 뾰로통했다. 카페만큼은 계획이었는데 말이야.

"다른 곳 또 있겠지"

"알았어"


 금능해변 쪽으로 걸어갔다. 삼일 째 같은 바다를 봐도 예쁘다고 느껴졌다. 해변을 지나서 걷기 시작하자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벌써 2km를 넘게 걸었다. 걷다 보면 바닷가 쪽에 카페가 있을 거란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 걸었다.



그런데 금능 쪽에는 생각보다 바다 조망의 카페가 없었다. 길 옆에 돌담에 있던 카페들과 특유의 제주 분위기가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있었다. 처음엔 무조건 바다조망을 고집하며, 그곳들을 지나쳐서 끊임없이 걸었지만 한 1km 남짓 더 걸어갔을 때 그나마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으나 자리가 없었다. 기다릴까 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다리가 너무 아파졌다.


"우리 한 시간 반째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알아?"

"그냥 아까 거기 들어갈 걸, 이따가 갈 때는 택시 타고 가자"

아까 그곳이라도 좋으니 얼른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몹시 지친 상태와 더위가 한몫했다. 다시 돌아가는 길도 꽤나 멀었는데 들어가 보니, 여기도 웨이팅이란다. 헐


"차라리 협재 쪽 카페를 갈걸"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계속 튀어나왔다. 괜히 화가 났다. 지금쯤이면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면서 책 반절은 읽고 지났을 시간인데 말이야. 계획 없이 온 거긴 한데, 계획이 무산된 느낌.

나도 남편의 의견에 동의했기에 별말 없이 따라와 놓고선 말이다.


뚜벅이 여행하니까 짜증이 늘었다. 남편도 열심히 검색해서 찾더니,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자, 자기는 따를 테니 이젠 네가 알아서 정해서 들어가란 식이다. 그러다가 여차저차 바다 조망이 있는 브런치와 레스토랑식 카페라도 찾아서 들어갔다. 금능해변 바로 옆이었는데, 뺑 돌아서 결국 여기로 왔구나 싶어 허무했다.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인지 우리처럼 음료만 마시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햇빛이 뜨거워 지쳤기에 서둘러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바다조망이 예쁜 곳이었다.

음료가 나오자마자 반샷 들이키고, 앉아서 각자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하고 책을 읽었다.

문득 아까 짜증을 냈던 게 미안해졌다.


결혼하고 남편과 싸운 적이 거의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짐가방을 매고 계속 걷다 보니 몸이 힘드니까 서로 탓했던 것 같다. 이걸 깨닫는 순간, 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숙소를 못 찾거나 길을 잘못 들어서 싸웠던 것들이 생각났다.


"아, 우리 뚜벅이라 그런가 봐."

"전에 제주도 와서는 한 번도 안 싸웠는데"


보통은 제주도 여행 내내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에게 고마워서 짜증은커녕 괜찮은지 수시로 물어보고

서로 원하는 걸 배려했던 것 같다.  


"내일이라도 렌트할래?"

결국 이 말이 나왔다.


"알아보니까, 하루에 4만 원 밖에 안 해. 공항에 다녀올게"

"아니야, 내일부터는 어디갈지, 내가 잘 루트를 짜 볼게, 필요하면 택시 타자"


이번 여행만큼은 꼭 뚜벅이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다짐했었기에, 고집 아닌 고집을 부렸다.

어쩌면 무계획이라는 게 더 까다로운 일일 수도.

목적지가 있어야 택시도 타고 가니까 말이다.



카페를 찾기 위해 헤맸을 때는 몰랐는데, 마지막 날에 한번 더 온 금능 마을은 곳곳이 예쁜 데다 알고 보니 <우리들의블루쓰> 촬영지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웃프게도 여긴 이제 다 봤으니까 다시 오지 말자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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