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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Sep 28. 2022

제주도 뚜벅이 여행 - 무계획의 셋째 날(2)

카페에서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뒤 나갈 채비를 했다. 어느덧 오후 4시 반이었다.

남편이 어디 가고 싶은지 물어봤다.


"나 사실 오름 가고 싶어."  

"오름 별거 없는데, 그냥 언덕이야"


(그냥 언덕일지라도 가 본거랑 안 가본 거랑 다르지.)

"그럼 왜 물어본 거야"

"아냐 가보자~ 근데 어디 오름으로?"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오름은 느지리오름, 유명한 곳은 금오름이었다.


"금오름?"

"알겠어. 택시 타고 물어보자~"

그렇게 오름에 가기로 했다.


해질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살짝 출출하던 찰나였는데, 택시 타러 가는 길 건너편에 <금능 스낵>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우리 저기 가서 뭐 좀 먹고 갈까?"

"그래 좋아~"


로제 떡볶이와 제주거멍에일을 시켰다. 로제 떡볶이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국물까지 모두 흡입했다.

오전에 칼국수 먹은 게 다였어서 배가 꽤나 고팠었다.


계산하려는데 갑자기 닭강정 튀기는 소리와 소스 냄새가 너무 맛있게 느껴져서 한 팩 포장하며 사장님한테 여쭤봤다.


"저.. 사장님 금오름? 거기 많이 힘든가요?"

"한 20분 정도 올라가면 돼요"


"느지리 오름은 어때요?"

"느지리? 아, 거기는 좀 뒷동산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산책할 만해요"


카카오 콜택시를 부르자 금세 택시가 왔다. 그런데, 기사님이 목적지로 설정해놓은 느지리 오름이 어디냐고 가다가 샛길이면 못 내려준다 하셨다. 그 정도로 유명하지 않는 거 보면 정말 동네 뒷산인가 싶어 왠지 실망할 것 같아 힘들더라도 금오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사님, 죄송한데, 금오름으로 가주세요!!"

금오름까지 차로 15분, 택시로 이동하니 너무 편하게 금방 왔다.   


차에서 택시 아저씨가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덕분에 더욱 빨리 도착한.

오름 가는 길에 이곳저곳 설명해주시며 맥주 공장도 많이 가니까 오다가 들러보라고 하시며(끝내 못 갔지만) 제주 오름에 대한 설명도 해주셨다.


나중에 택시 투어도 재밌을 것 같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20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길지 않았다. 오름에 너무 와보고 싶어서였는지 몰라도, 아님 해안가 쪽을 오랜만에 벗어나서인지 산은 새로워서 좋았던 것 같다.

 정상에 오르자 너무 멋진 풍경이 있었다.


"와 여기 끝내준다"

"나도 이런 오름은 처음이야"


남편은 새별오름을 가봤다고 했다. 거긴 정말 언덕이라고 하며 여기와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멋진 곳인 줄 알았으면 바로 오자고 했을 거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금오름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가 이틀이나 머물러 있었던 비양도를 바라보는 협재 풍경과, 반대편에 한라산 그리고 남쪽의 서귀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북쪽까지 시야가 트였다.

구름이 가까이 있는 듯했다.



해발고도 1000m 높이에 한라산 고지에 올라갔을 때도 이렇게 멋있었던 것 같은데, 오름은 한라산 보다 1/20밖에 힘들지 않지만 제법 한라산 높이에서 느끼는 풍경을 보는 비슷한 기분이랄까.

한편으로 한라산과 다른 오름들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현지인들 내에서 매주 오름을 오르는 동호회도 있다는데, 나 같아도 제주도에 산다면 수많은 오름들을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화산섬이라서 분화구들 때문에, 오름들이 생겨난 게 가만히 보고 있자니 너무 신기한 광경이다.



택시 타고서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일정 동안 뚜벅이도 좋지만, 어디 가고 싶을 땐 버스나 차를 타고 이동해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바퀴 오름을 다 구경하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저 멀리 구름이 많아서 해지는 풍경을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산이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자고 했다.


택시를 잡아서 다시 해변 쪽으로 이동하는 길에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는데, 기사님이 제주도는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해를 보는 것도 운이라고 했다.

오늘 같은 날은 구름이 많아서 산에서는 시야가 안 좋아서 당연히 안보이니 내려오길 잘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정면에서는 구름 밑으로 또 빼꼼하며 해가 보였다. 


"해 보이네요 저기-"


"우와~ 오늘은 못 볼 줄 알았는데"

"대박이네요..!"


기사님이 해안가에 내려주셨다.

너무 예쁜 선셋이다. 매일이 새로운 선셋 풍경이다.


매일 다른 선셋을 보여주는 제주

 벌써 삼일 째지만 볼 때마다 경이롭다.


숙소 근처에 와인바에 갔다. 제주 시골집 같은 마당에서 야외 캠핑의자에 앉아서 위스키와 하이볼을 홀짝이며 파스타와 잠봉 뵈르를 시켰는데 너무 맛있었다. 분위기에도 음악에도 취하며 우리 마당도 이렇게 꾸미면 좋겠다 등등 오늘 하루 고생도 했지만 너무 재밌었다는 둥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내일은 제주도에서 조금 특별한 클래스에 참여해 보는 게 어때?"

"나는 다 좋아"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뭐든 믿고 따라주는 최고의 남편이다.

무계획인 하루였지만 처음엔 계획대로 안 되어 짜증도 났지만 즉흥적으로 선택한 것들이 마지막 오름 덕분인지 몰라도 기분 좋은 하루였다.


"참, 아까 닭강정 산거 있지?"

"오 맞다. 숙소 가서 맥주랑 먹자~"

"그래 좋아!"


여행은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하느냐도 참 중요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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