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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의세계

2.10밤자고


2. 10밤자고     

‘따르릉 따르릉’

“연희야, 전화 받아라.네 어미다.‘

‘왜 애 자는 이 한 밤중에 전화야 하려면 낮에 하지’

할아버지는 낮은 소리로 말씀하시며 연희에게 수화기를 건네 주셨다.

“명희니?”

엄마는 아직도 명희라 한다.

“응?”

“……”

“……”

“명희야, 미안해.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엄마, 언제와?”

“엄마.......며칠 있다 갈게”

“며칠? 열 밤 자면 와?”

“응, 그래, 열 밤”

다시 자던 방 이불속으로 돌아온 연희는 미소를 지우며 잠이 들었다. 

마당 한쪽 담장 밑에 우물가에 펌프에서 물 푸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있다. 그 소리와 함께 현수 삼촌의 투정 섞인 소리와 할아버지의 아들을 달래는 다정한 소리가 섞여 집안분위기가 어수선하였다. 

“아빠! 다른 친구들은 다 창경원 가봤데, 우리도 가자”

“창경원? 동물원 말이냐?

현수 삼촌은 구멍 난 운동화속에 손가락을 넣어 빙빙 돌리어 구멍을 더 크게 만들며 심통을 부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우리 현수가 왜 저리 골이 났나?”

우물 옆 부엌에서 아침준비를 하시던 할머니가 미소 띤 얼굴로 현수 삼촌에게 말을 건넨다.

“창경원을 가자 하네”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창경원이 뭐 하는 곳인데?”

현수삼촌은 이때다 싶어 

“엄마, 서울에 있는 동물원 있잖아, 기차타고 서울 역 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는데.”

“무슨 동물원을가?, 여기 울 집에 돼지도 있고 소도 있고 저기 강아지새끼도 있고 .저기 고양이도 닭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것 들 이랑 같아?  코끼리 사자 호랑이 기린도 있다는데.”

현수 삼촌은 짜증이 났다 결국 나무대문을 발로 차더니 구멍이 난 운동화를 확 찢어 버렸다. 

“어머나, 이 녀석이 왜 이래? 멀쩡한 운동화는 왜 찢어?”

“지금 찢은 게 아니고 원래 구멍이 났다 구.”

현수 삼촌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 창경원”

바쁜 아침 현수삼촌의 땡강에

“에고. 알았다 알았 어 얼른 밥 먹고 학교가”

“언제? 언제 갈 건데?”

“나중에”

“나중에 언제?”

“다음 쉬는 날에”

“엄마 그럼 이번 주 일요일?”

“아니 다음에”

“엄마 그럼 다음 주 일요일. 열 밤 자면 돼요.”

“그래, 얼른 밥 먹어. 학교 늦겠다.”

그 뒤로 현수 삼촌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현수 삼촌은 창경원 가는 날을 연희는 표시는 할 수 없지만 엄마가 오는 열 밤을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기다림은 다르지만 설레는 마음은 같다. 

현수 삼촌은 창경원에 다녀와 친구들에게 큰소리치고 자랑할 생각에 더욱 들떠 있다. 이미 가기 전부터 동네 친구들에게 창경원 간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연희 또한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에 들떠 있었다.

학교 쉬는 시간 열심히 원고를 외우고 있는 연희에게 다가오신 담임선생님께서

“연희야, 기분 좋아 보인다. 연습 잘 하고 있지.?”

“네, 원고 열심히 외우고있어요”

연희는 좋은 결과로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다.

지루한 시골학교 생활은  연희에게 기다림에 있어 더욱 더디 가는 듯 느껴졌다.

하루하루 웅변대회를 준비하며 보낸 시간들이 열 밤이 지났다. 

반공일인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연희는 6월 초여름 뛰다시피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엄마 왔어요?”

“뭔 소리여”

연희는 가방만 내려놓고 배가 고팠지만 기차역으로 다시 뛰어 갔다. 

서울 발 기차가 들어오는 매 시간마다 역사 난간에 매달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살피며 엄마를 기다렸다. 뱃속에서는 꼬르륵 전쟁이 일어났다.

연희는 역사 옆에 있는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매 시간마다 들어오는 기차를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긴 나무막대를 주워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엄마와 부르던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고, 이 시골에서 구경하기도 힘든 엄마가 사오는 간식거리들을 생각하며, 엄마가 사오는 예쁜 원피스 구두를 생각 하고,  아카시아 나뭇잎을 따 버리면서 

‘온다. 안온다. 온다. 안온다….’

연희는 가슴부터 밀려오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시간만 한 시간만 하고 기다린 것이    깜깜한 밤이 되어 막차에도 엄마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엄마가 오지 않은 슬픔이 연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연희에게 깜깜한 밤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짝이 오싹해 오며 머리털이 쭈뼛 서는 두려움 이었다. 

 헐떡이며 집에 도착한 연희는  살짝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한발을 내밀었다. 그 순간 “연희 왔냐? 어디서 뭐 하느라 한밤중에 게집에가 들어와?”

할머니 옆에는 회초리가 있었다. 하지만 연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반복적인 질문에도 대답이 없는 연희의 행동은 할머니를 더욱 화나게 하였다. 

결국 얇은 회초리는 연희의 종아리를 향해 여러 번 날아오고 나서야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 

눈물이 범벅이 되어 방으로 들어온 연희는 조용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수 삼촌이 그냥 넘어 갈 일이 없었다.  

“뭐야? 너 돈도 없었을 텐데 여직 뭘 한 거야? 왜 말을 안 해? 

“나 건들지 마”

연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단호히 말했다.

“야야야 안 건드려, 내일 창경원 가는데 너 안 데리고 간다?”

연희는 댓구도 하지 않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연희를 쳐다봤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현수 삼촌은 평소와 다르게 일찍 일어나 씻으며 창경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 가요”

“어딜 가?”

“창경원이요”

“또 창경원 타령이야? 오늘 안 돼.”

“간다고 했잖아.”

“저 새끼 밴 돼지가 오늘 내일 하는데 집 비우면 않돼.”

말이 떨어지는 순간 현수삼촌은 마당에 주저앉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열 밤이 아라고 했잖아 오늘이 그 날이라고. 나 애 들한테 자랑 다 했다고”

“그래, 열 밤 자고 가자.”

“뭐가 또 열 밤이야?” 

“현수 아빠랑 라면 먹을까?”

삼촌을 달래려는 할아버지의 말에 현수삼촌은 신발을 벗어 마당에 집어 던지며 울부짖고 있다.  

“현수야, 아빠랑 짜장 면 먹으러 가자.”

한참을 울던 현수삼촌은 못 이기는 척 할아버지와 기차를 타고 짜장 면을 먹으로 갔다. 

이렇게 연희의 열 밤과 현수 삼촌의 열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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