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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som Aug 17. 2016

욕먹지 않는 바람둥이

8월 12일,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강독회


재민 언니랑 재미공작소에 갔다. 서윤후의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강독회가 있는 날이었다. 재미공작소가 사실은 재민공작소라느니, "ㅋㅋ"를 쉬지 않고 치며 도착했다. 강독회가 시작되고 그는 시인 같은 모습으로 시를 낭독했다.

사실 처음 10분간은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숨을 삼키고 입술을 안으로 꽉 물었다. 웃음을 참는 건 초등학교 때 매년 초마다 맞는 할머니 제사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삼촌의 목소리가, 숙모의 발바닥이 괜히 웃겼다. 오늘은 목소리를 까는 오빠가, 그 목소리밖에 안 들리는 이 공간이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곧 온전한 강독회의 일원이 되자 부러워졌다.

'욕먹지 않는 바람둥이!'라고 공책에 적어두었다. 오빠는 사랑받고 있었다. 모두가 이 자리에 오지 않은 사람들은 듣지 못했을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주치지 않더라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피식, 웃을만한 멘트에도 하하하, 웃어주었다. 다들 같은 책을 한 권씩 들고 앉아 페이지를 정성스레 넘겼다.

오빠는 시집에서 <독거청년>이라는 시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나두!"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말을 듣기 전부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어머어머, 너도 그랬어? 나랑 같네, 하고 칭찬을 듣고 싶었다. 강독회에 온 팬의 역할에 완전 몰두한 거다!

또 말을 굉장히 천천히 했다. 나는 그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 사람인지 안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 또박또박 분명히 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시에 대한 이야기는 어렵거나 대단치 않았다.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내 기억으로) "좋아하는", "외로웠던", "아쉬운"이다. 어쩌면 누구나 입에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오빠의 특별함이 책을 만들고, 책이 다시 오빠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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