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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ohyun Choi Sep 19. 2017

우리 도시의 오늘, '다시 세운' 재개장

아주 변방에서 아주 살짝 거들고 있는 디자이너의 소회

[20170919 기록]

세운상가 존치, 그리고 '다시 세운' 재개장

아주 변방에서 아주 살짝 거들고 있는 디자이너의 소회


오늘은 '다시세운', 세운상가 재개장 오픈이 있는 날이다.

참 오랜 기간동안 너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인데, 아직 끝난 일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 더 중요한 포인트이다.


2015년, 재회

1967년 지어졌다는 그 곳,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김수근 작...

어릴적 아빠 쫓아 구경 갔던 곳, 대학때 제품디자인 수업 듣느라 을지로 청계천을 헤메고 다닐 때 참 많이도 들렀던 곳, 오락기 사러, 조명 사러 갔다가 참 쌩뚱 맞은 아이들부터 말도 안되는 불법 아이템들까지 재미지게 꼴라주되어 있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지 몰랐던 곳, 사장님들은 모두 맥가이버 같았던 그 곳을 참 오랜만에 다시 찾게 된다.

2015년 서울시디자인컨설턴트로 세운상가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거버넌스를 비롯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아주 다양한 팀들이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어 참 많이 놀랐다.

당시 주어진 과제는 뭔가 그리거나 칠하거나 하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문제가 문제가 아니었던 터라 세운의 존재 이유에 대해 정리하는 방향으로 키를 돌렸다.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고, 교육을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며 7-8개월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2015년, '다시 세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분들에게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모셨던 LMNT 최장순 이사님


'세운'의 존재 이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고민 - '다시 세운'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이상한 영어 이름이 아니라 '세운'을 살리는 '다시 세운'의 이름으로 정해진 것이 제일 뿌듯한 일이다.

'다시 세운'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수차례 여러 회의에서, 여러 관심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온 개념이었는데, 이를 세운상가를 컨설팅하던 팀에서 잘 정리해주었다. 2015년 말, 시장보고때 자문역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세운'으로 굳히기 작업을 열과 성을 다해 몰입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세운'은 're, 세운'의 뜻도 있지만 '다시 000를 세운', '다시 세운 000' 등의 뜻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 열린 이름이라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우리말이라 더 좋다. 정체성을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태그라인으로 maker city를 붙인 것도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표현은 잘 하고 있다.



2017년, 다시 재회

당시 서울시 팀들 뿐만 아니라 협력팀들, 참여 청년들과의 정이 많이 들어 꽤 오래동안 연을 이어오던 차에 올 여름 서울시에서 다시 연락을 받았다.

"간판 막 바꾸면 안된다고, 이것저것 막 칠하면 안된다고 하고 잔소리를 하셔서 되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는데, 저희 재개장 앞두고 뭔가 정리를 해야 해요."


으악!!! 프로젝트고 자문이고 재능기부고 다 모르겠고, 안달려갔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갔다.

재개장까지 기간이 너무 짧았다. 간판개선사업을 막아야 했고, 북한처럼 보일지 모르는 페인트를 칠하는 것을 막아야 했고, 벽화를 막아야 했다. 급하게 하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상황에서 그래도 뭔가는 해야 했다. 상인회분들을 모시고 '세수는 하고 분칠합시다'로 설득하다가, 자꾸자꾸 커지는 간판이라면 건물 다 덮어도 아쉬움이 남을테니 제발 서로서로 잘 보이는 간판으로 바꾸자 달래도 보고, 떼도 써보고 우겨도 보고, 애교...는 안어울려 못하고.

재개장까지 1)위험요소 제거 2)오염 및 지저분한 요소 제거 3)정신없는 기물들 정리 이렇게 세가지를 하자 했더니 자꾸 디자인을 해 달라신다. 청소도 디자인이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당장 눈가리고 아웅이 아니라 앞으로 개선될 모습을 상상하며 천천히 천천히 가자고 우기느라 여름을 보냈다.

역사도심재생과 담당자 분들의 연락을 대부분 늦게 받거나 모른체 하거나 했던 적이 많은데, 어느때보다 바쁜 여름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별 문제가 아니었고, 나 나름대로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해 많이 해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참아주신 서울시 분들께 고마움이 있다.


김용관작가님께서 핸드폰으로 남겨놓으신 청계상가의 파사드와 브릿지 사진(아래 좌측)을 보고 있자니 오염이 많아 다시 칠할 수 밖에 없었던 전면부의 페인트 컬러는 잘 정한건지, 세운상가 파사드의 전면사인을 새하얀 유포지에 바글바글 정보가 프린트 되는 안을 버리고 매시 망으로 덮자고 한 것은 잘한건지...


한참 공사중이던 2017년 여름, 세운상가 전면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 세운상가 전면부 - 뉴스토마토에서 발췌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778207


오늘 재개장 오픈에 못 간 까닭이 면접이 있어서, 회사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결과물들에 대한 두려움과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걱정때문에 발길이 안 떨어진 건 아닌지... 뿌듯함과 아쉬움과 이런저런 생각에 괜히 글줄이나 두드리고 있는 소심한 디자이너이다.


앞으로 이 곳에 어떤 변화들이 있을지... 물론 호오가 있을테지만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우리 도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살려내야만 하는 공간이므로 대안 없는 비판보다는 비평을, 이왕이면 대안 제시형 의견 게재가 많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세운상가 컨설팅과 운영을 맡고 계신 모 기획사의 곽모 팀장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곳에서의 서사를 아는가?", 표면적인 것만 보고 떠들어대는 주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우리가 늘 주의해야 하는.

서울디자인위크가 마무리되는대로, 아직 미해결과제로 남아있는 구석구석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챙겨봐야겠다. 한동안 심신의 병으로 지쳐 있어 가정의학과 병원까지 찾아 잔소리를 퍼부었던, 지금은 을지로에 너무 멋진 공간을 만든 청년 기획자도 잊지 않고 찾아가야겠다.


우리 도시, 오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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