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25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신주쿠에 작은 사무실을 얻으셨다고요? 셰어 오피스라니! 한국에도 요즘 막 유행하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내고 공동으로 쓰는 사무실인데 커피나 음료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저도 7-8년 전에 아파트 근처의 작은 상가에 셰어 오피스를 얻은 적이 있어요. 같은 방송 일을 하는 작가 언니가 추천한 사무실이었는데, 5만원에 여자 작가 3명이 함께 쓰는 곳이었어요. 그때는 아이가 어려서 우선 집이 아닌 곳으로 공간을 이동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아시잖아요? 집에서는 일이 되지 않죠. 잠깐이라도 일에 집중을 해보려 해도 밀린 집안 일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히니까요. 세탁기 돌려야 하지 않나? 반찬을 미리 좀 만들어두면 저녁에 일이 좀 수월해지려나? 별별 잡다한 생각이 다 듭니다. 그래서 일을 하려면 과감히 집을 나와야 해요. 아마도 그런 이유로 저도 셰어 오피스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셰어오피스 라는 것이 저는 성격에 잘 맞지 않았어요. 저를 언뜻 본 사람들은 성격 참 좋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상한 것이 저는 은근히 까다로운 사람인거에요. 대놓고 까다로운 게 아니라, 은근히 까다로우니 문제입니다. 공간을 함께 사용하다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 다 거슬리곤 하잖아요. 그것이 어떤 점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있으니까요. 셰어 오피스에 입주하고는 처음에는 매일, 얼마 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번 겨우 들락거리다가 몇 달 후에는 한 달에 한 번도 나가지 않게 되었어요. 나는 공동생활에 적합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구나, 하고 느끼면서 그때 처음으로‘자기만의 방’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버지니아 울프 작가의 소설에 나온 말처럼, 여성이 자유의 문을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는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 고정적인 소득을 얻기 위해서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뛰어다녀야 했고 지금도 나만의 방을 마련하기 위해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집에 방이 없나? 왜 밖으로 방을 찾아다니나?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래요 작가님.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어릴 때 방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네 살 터울의 언니와 늘 방을 함께 써야했던 저는 나만의 방을 갖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였어요. 어찌 보면 제 젊은 날은 방을 갖기 위한 투쟁의 나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 방은 물리적인 공간의 방일수도 있지만, 누구도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속의 방이기도 해요.
참! 얼마 전에 ‘546명이 모여 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국 런던의 셰어하우스’에 대한 기사를 보았어요. 올드오크 라는 공동주택인데,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하는 딱 그런 컨셉의 주택이더군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무려 546개의 자기만의 방이 있는 곳, 혼자가 좋긴 하지만 인간이기에 때론 외롭기도 하잖아요. 자기만의 방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교류할 수도 있고, 적절히 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거대한 공동주택. 저는 이런 걸 ‘교집합 주택’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요. 풀어서 말하면 ‘따로 또 같이 주택’ 정도 되겠군요. 앞으로는 이런 주거형태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밥은 공동 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고, 나가서 해결할 수도 있죠. 자기가 먹은 만큼 정산되어 관리비에 부과된다면 편리할 것 같다는 즐거운 상상도 해봤습니다.(요즘은 어떡하면 밥을 안 할까, 궁리만 해요^^;)
그래요, 작가님. 꼭 합집합일 필요는 없죠. 몇 %가 되었든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관계이고 감사할 일 인 것 같아요. 어쨌든 완전한 자기만의 방은 아니더라도 셰어오피스에 입주한 작가님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은근히 까다로운 성격으로 인해 공동 오피스마저 쉽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 우리 앞으로도 자유를 얻기 위해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을 구축해 나가기로 해요!
서울 여자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