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경험과 전문성에서 나온다.
21세기 패션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혁신을 이룬 두 사람을 뽑으라면, 대부분 인디텍스(ZARA의 모회사)의 아만시오 오르테가와 패스트리테일링(UNIQLO의 모회사)의 야나이 다다시를 거론할 것이다. 두 사람은 Vertical Integration(수직화) 혹은 SPA라 불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회전율을 높여 연매출 수십조 원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스페인과 일본의 최대 갑부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성공적인 혁신 사례이자 벤치마킹 대상으로 수많은 미디어에 소개되는데, 이들을 거론할 때 항상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두 사람의 경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ZARA와 UNIQLO를 200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생각한다. 하지만 두 브랜드의 역사는 매우 깊다.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1975년 아꼬루냐에 첫 ZARA 매장을 오픈했으며, 야나이 다다시는 1984년 히로시마에 UNIQLO의 첫 매장을 오픈하였다. 이들은 80, 90년대 패션업계가 모두 아웃소싱에 집중할 때, 기획, 생산, 판매의 수직화 및 내재화를 통하여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시켰다. 그리고 2000년대 임금 상승과 납기 문제 등으로 아웃소싱의 경쟁력에 한계가 다가오자, 비로소 공격적인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ZARA와 UNIQLO의 혁신은 두 사람이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스타트업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창업가들이 기존의 IT 기반을 벗어나 다양한 업종에 도전하고 있다. 글로벌 IT 회사와 컨설팅펌의 인재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시장에 도전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인재라 평가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워커홀릭이다.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근무가 일상인 나머지 고액의 연봉에도 소비할 시간이 없으며, 유행하는 트렌드에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다시 말해 소비자로서의 경험치도 부족하다. 이처럼 업에 대한 노하우나 경험도 없지만, 본인들의 높은 스펙과 열정, 그리고 그에 따른 투자금에 의존하여 스타트업이란 로켓에 올라탄다. 과연 M7 출신의 컨설턴트와 실리콘밸리의 천재 개발자가 의기투합하면 현업 전문가를 뛰어넘는 성과가 나오는 것일까?
미국 자동차 업계의 전설 밥 루츠는 그의 저서 <빈 카운터스>에서 GM이 몰락한 원인으로 MBA 출신의 경영진을 지목했다. 그들 대부분은 뉴욕시 출신으로 운전면허조차 없었다. (뉴욕시에서는 높은 주차비로 인해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더 싸고 편리하다.) 운전 경험이 없는 '무면허' 경영진은 데이터에만 의존하여 비상식적이고 반시장적인 자동차를 만들어냈고, 이는 소비자의 외면으로 이어지며 GM을 파산으로 몰고 갔다. 수많은 전문가를 보유한 글로벌 대기업 조차도 비전문가가 경영을 하는 순간 무너지는데, 스타트업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 스타트업을 보면 '무면허' 창업가가 정말 많다. 투자자는 창업가의 스펙을 보고 투자를 결정지을 수 있지만, 소비자는 오로지 상품을 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더라도 업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상품에 혁신을 불러올 수 없다. 정말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이 있고 창업을 하고 싶다면, 우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자.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략적 사고와 앞선 기술을 적용할 때 혁신은 따라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