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로마를 방문한 이방인이 이놈(?) 때문에 로마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주빌리오, 이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사람 이름 같기도 한데, 이놈 때문에 로마 베드로 성당 피에타 상과 발타키노를 보지 못했다.
베네치아 광장도 공사 중
천사의 성 앞, 캄피델리오 광장,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앞, 나보나 광장 등 로마의 명소라는 곳을 가보는 족족 공사판이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로마 전체는 공사 중 같았다. 이런 아쉬움 때문이라도 내년에 로마에 다시 오라고?
천사의 성 앞도 공사 중
2025년이 희년(giubileo)이라고 한다. 25년마다 돌아오는 축복의 해. 예전엔 50년마다 한 번씩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평생 1번도 이 희년을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안타까움 때문에 25년으로 줄였을까? 지식이 얕아 잘 모르지만 로마에서 가장 크다는 성당들, 앞에 바실리카라는 말이 붙은 성당 정문 오른쪽 끝에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25년마다 한 번. 그래서인지 그 문을 성문(The holy door)이라고 하는데,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에겐 약발이 듣지 않겠지만 믿는 이들에겐 이 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가 신의 은총을 받는다면 도전하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정문으로 들어가나 성문으로 들어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건데... 이 행사 때문에 전 세계에서 순례객과 관광객 등이 몰려 로마 시내 일부가 텐트촌으로 변한다던데, 숙소를 구하지 못해서 말이다.
판테온 앞도 공사 중
종교란 결국 믿는 자에게 복을 주나니!
더위는 길거리 연주자들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로마를 떠나기에 로마, 안녕해야 하는데 참, 마음이 구렸다. 이건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여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이라기보다, 피에타 상과 발다키노를 보지 못했다는 미련 때문이라기보다, 이제 피자와 파스타라는 이탈리아 음식이 질렸다기보다, 엉뚱하게도 더위 때문이었다. 더위! 더웠다. 사람 체온에 가까웠던 날씨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정도 로마 날씨면 축복이었다는 말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섭씨로 40도가 넘어 예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들은 뇌에 전달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내려오면서 배낭엔 물이 한 통이 아니라 두 통이 들리기 시작했고, 머릿속에선 온통 시원한 청량음료와 맥주와 수박에 대한 생각만이 간절했다.
라테라노 산 지오바니 성당(성 요한 대성전)
낯선 문화와 환경에 대한 동경보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배낭 무게를 가볍게 할까 짱구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로마의 거리는 지저분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 데서나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도시였으며, 도시 전체가 녹지라고는 거의 없어 열기가 그대로 전달되기에, 길거리 쓰레기들까지 눈에 거슬리는 도시였다. 로마의 지하철은 작고 사람들은 많고 그 좁은 공간에 사람 몸만 한 개들까지 타는 환경에 소매치기가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경구까지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던 이 생각 저 생각들이 서로 짬뽕이 되기 시작했다.
산 파울로 성당(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떠나는 날 배낭을 배고 로마 테르미니 역을 빠져나오는데, 리프트라는 말만 들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여자를 무시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탔을 떼 뭔가 싸했던 느낌으로 인해 로마에 대한 불쾌함을 한 층 더 쌓아 올리긴 했었다. 저들이 소매치기 일당이냐는 내 말에, 담배 피우던 남자 한 놈(?)이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옆에 탄 남자의 말도 무시하고 지나친 건 내 조심성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처럼 더위 '탓'이었기 때문이다. 더웠다. 더위에 지쳤다.
스칼라 산타 성당 입구와 외부 모습. 저 입구로 들어가면 안쪽에 28개의 성혈계단이 있다.
산속을 헤매다 도시에 들어오니, 자연이 주던 풍미에 빠져있던 촌놈이 대도시 문물에 적응하지 못한 꼴 그대로였다. 그래서 로마를 떠나는 마지막 날, 그 마지막이라는 감흥이 머릿속 어디에도 남아있질 않았다. 그렇다고 여행을 끝내는 기쁨도 없었고. 그나마 한 가지. 정말 딱 한 가지 위안은 숙제를 끝낸 초등학생 모양 몸가짐이 홀가분해졌다는 것이다. 누가 내준 숙제가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든 숙제. 큰 칼 쌍칼로 옆에 차듯 물통 두 개 들고 꼭 끝내리라는 다짐으로 지하철 하루 이용권을 끊고 여기저기 다녔던. 그때까지 숙제라고 생각하던 그 숙제는?
산 파울로 성당 성문. 내년에 이 문을 통과하면 죄의 사함이란 은총을 받는다는 문 중 하나.
그건 로마 바실리카 4개 성당만큼은 주마간산이라도 다 보자,였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이야 바티칸 박물관 둘러볼 때 끝냈고. 로마 인문학 기행 같은 시내 투어를 끝내고 들른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로마 테르미니 역 근처에 있어서 방문하기 수월했었다. 남은 두 곳 성당은 포기할까 했었다. 누가 숙제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숙제를 끝낼까 말까, 잠시 고민했었다. 그때까지도 머릿속엔 맥도널드에 가서 얼음이 담긴 500ml 콜라나 한잔 마셨으면 했었다. 그럼에도 불끈(?) 두 주먹을 쥐고 일어서서 지하철을 타러 간 건, 새로 산 시원한 생수 두통을 두 손에 쥐었기 때문이지만, 결론은 포기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세 분수 수도원 입구
지하철로 돌다 보니 산 파울로 역에서 조금 더 가면 세 분수 수도원(Tre Fontana)이 있어 방문했었던 것과, 라테라노 성당에 더해서 그 옆에 있던 스칼라 산타(Scala Santa)에 들른 후 느낀 감정은 이미 숙제를 끝낸 감정을 훌쩍 벗어나 버렸다. 이건, 숙제를 끝냈다고 느낀 뿌듯함이 아니었다. 숙제를 하다 보니 다음 숙제까지 해버린 마음이 이랬을까? 머릿속 온통 잡념들이 한방에 날아간 느낌이 이랬을까? 숙제를 끝냈다는 그 숙제에 대한 부담감을 이미 넘어선 것 같은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로마에 거주하신다는 수녀님이 저 멀리 걸어가신다. 순례 잘하라는 말씀 남기시고!
지하철 종점에 내려 15분 이상 걸어간 세 분수 수도원은 그곳이 바오로 성인의 참수터라는 상징성보다 수도원 입구 카페에서 마신 시원한 마키아토가 더 생각난 건 사실이지만, 세 분수 수도원을 둘러보다 수도원 성당에서 만난 수녀님 말씀이 잠시 숙제라는 생각마저 내려놓게 만든 것 같았다. 한국 분 같아서 여쭤보니 자긴 로마에서 사는 수녀라는 그분이 내게 던진 말은 참 평범한 말이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듯한. 그저 툭 던진 한마디. 혼자 순례 왔냐는 질문. 그곳까지 더운 날, 수도자가 보기에 순례자로 보일 수 있겠다는 것을 넘어서, 내가 이렇게 찾아다니는 행위를 숙제에 포함하기엔 그걸 이미 넘어섰다는. 우린, 어쩌면 각자의 인생이란 순례를 벌써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그 누군가는 끝내는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