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끝냈다. 학교 숙제처럼, 뭔가를 끝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게 인생을 끝냈다든지, 결혼을 끝냈다든지, 우정을 끝냈다든지 하면 곤란하지만. 여기서 끝냈다는 것은 베네치아에 갔다 왔다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정한 숙제였으니까. 돌로미티 알타비아 트래킹이 좋은지 베네치아 여행이 더 좋은지 말하라면 곤란하다. 인간만이 비교를 하는 것 같은데, 이런 비교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당일치기에 하루 5유로 도시세를 받는, 오버 투어리즘으로 도시 전체가 몸살을 앓는 도시 베네치아. 로마는 하룻밤만 자도 6유로를 내야 하는 곳, 참 볼 것 받은 도시들이 튕기더라도 별 수 있을까마는.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본 풍경
연간 관광객이 제일 많이 방문하는 도시는 아마 파리일 것 같다. 베네치아는 연간 3천만 명이 방문한다고 하던데, 그 좁은 도시에 그 정도 인원을 수용한다는 것이 거의 기적 아닐까 싶게 베네치아는 아주 작은 곳이다. 이건 분명히 구 베네치아를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베네치아라고 일컫는 곳이 신도시를 말하는 것은 아닐 테니. 그 작고 사람 북적이는 곳이 뭐가 좋다고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까? 이런 건 아무리 말해도 소귀에 경 읽기다. 좋으니까 가는 거다. 볼 것이 많으니까 가는 거다. 볼만한 것들이 좀 특별해서 가는 거다. 마지막은 전 세계 운하도시가 꼭 베니스만을 의미하지 않지만 베네치아만 한 운하 도시가 또 있을까? 그러고 보니 베네치아에 가는 이유가 정리된 듯하다. 한마디로 볼 것 많으니까!
산 마르코 광장에서 본 산 마르코 성당 정면 모습
다시 생각해 보니, 베네치아가 오늘 처음이 아니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베네치아 공항에 도착했었다. 비행기 마지막 뒷자리에 앉아서 착륙하는 비행기 밖으로 내다볼 때 산 마르코 광장 종탑이 보여 기뻐하던 찰나, 옆자리 잘생긴 남자가 그랬다. 슈퍼 비지 시티(super busy city)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그런 베네치아를 다시 온 것이다. 그때는 공항에서 바로 코르티나 담베초 방향으로 향했었다. 그러니 정작 베네치아가 어땠는지 기억에 없다. 그런 그곳을 트레킹을 끝내고 돌아온 것이다. 그런 베네치아는 어땠을까?
두칼레 궁전과 광장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쉬웠다.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말하라면, 베네치아가 베네치아 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이탈리아라는 정말 복도 많다는 생각이 여행을 하다 보면 가는 곳곳마다 든다. 시각적으로 매번 풍경이 달라져 뇌가 지칠 만도 하건만, 절대 지치지 않는 건 뇌의 장점이기도 한데, 그건 지루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베네치아에서 볼 것이 뭐가 있을까?
리알토 다리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먼저 손에 꼽는 곳은 아카데미아 다리이다. 리알토 다리보다 사람이 덜 오는 곳일 수 있으나 핫 플레이스다. 당신이 카메라 광이라면. 베니스가 달리 베니스인가. 운하의 도시답게 이곳에 서면 대운하의 운치를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떼 성당 방향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곳에 서서 오가는 배를 중심으로 담는다면 초보인 당신도 어쩌면 인생 사진 하나 건질 수 있다. 그 다리를 찾은 날 사실은 계획하고 간 것이지만, 그 계획이란 것은 석양을 어떻게든 카메라에 담는 것이라서 서둘러 갔지만 역시나 흡족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카데미아 다리는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었다. 일몰이 아닌 ㅎㅎ. 시야가 트인 곳이라면 일출이건 일몰이건 다 명소가 되는 곳이 베네치아지만 말이다.
광장 앞에 우뚝 서있는 돌기둥은 두 성인을 상징한다.
리알토 다리가 아카데미아 다리보다 아름다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카데미아 다리는 임시로 만든 나무다리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고 리알토 다리는 공모에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리에서 보는 경치야 아카데미아 다리 위가 앞서지만, 베네치아 대 운하를 연결한 최초의 다리이면서 사람이 유일하게 건널 수 있던 다리였다는 상징성까지 가진 건 리알토 다리이다. 이곳은 어찌 보면 서울의 명동 같은 곳이다. 그 작은 섬에서 마치 교통의 요지 같은 곳으로 볼거리와 먹거리가 집중된 곳이다. 근처에 시장도 있어 사람들이 엄청 몰리는데, 많은 사람들과 북적대는 것을 싫어하면 비추지만, 베네치아에서 뭘 바랄까? 알면서 가는 곳인데.
신혼 여행온 가족인가?
산 마르코 광장이 주는 아우라는 남다르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다차원적으로 얽힌 광장이 또 있을까? 광장을 기준으로 보면 오른편에 종탑이 있고, 정면에는 산 마르코 성당이 있다. 종탑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 나오면 바로 두칼레 궁전이 보인다. 그리고 우뚝 선 2개의 돌기둥이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하나는 초기 성인 테오토로를 다른 하나는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상. 그 앞으로 바다가 있다. 그 바다란 게 아름답다를 넘어 다채롭다. 분주히 오가는 수상버스와 그 앞에 보이는 성당. 석호 나무 기둥에 묶인 곤돌라. 오가는 다양한 인종들. 여기엔 17세기부터 있던 카페 플로리안에선 생음악이 흘러나온다. 두칼레 궁전 뒤쪽엔 탄식의 다리도 사람들 시선을 끌고.
산 마르코 성당 내부. 예쁘다!
산 마르코 성당. 의미를 봐도 아름다움을 봐도 어쩌면 베네치아 랜드마크. 당시 도시 간의 경쟁으로 훌륭한 수호성인을 모시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이집트에서 순교한 성 마르코의 유해를 이곳에 안장시키는 성과(?)를 내고, 이를 기리기 위해 820여 년부터 성당을 건설했던 노력들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베네치아 도시 자체가 동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라서, 성당도 비잔틴 건축 양식이 혼합될 수밖에 없으니, 상당히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지척에 바다까지.
성가를 부른 어린 찬송가 대원들
성당 관련 에피소드 하나. 성당 내부가 아름답다 알려져 반드시 이곳에 들어가려 줄을 섰었다. 입장 마감시간이 다가와 들어가지 못할 수 있어도 줄을 섰는데,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성당 정면 왼편 쪽에 가니 표지판에 성당 미사 시간 안내가 있었다. 이거다! 일요일 저녁 미사가 6시 45분에 있다고 적혀 있었다. 준비한 입장료야 봉헌시간에 내면 되고. 그러니 그곳에서 주일 미사를 봤다. 당연히 이탈리아 말을 알아듣겠는가. 역시나 잿밥에 눈먼 나 같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정숙한 미사 시간을 끝내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물론, 제지하는 멋진 남자 둘이 있었지만 아롱곳 하지 않았다. 복수했다! 입장 마감으로 못 들어가 입구 보안담당한테 구시렁거렸더니, 내 알바(my business) 아니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궁전 오른쪽 건물이 감옥이라서 탄식의 다리라고 이름이 붙었다. 종탑위 마르코 성인 상징 사자상이 보인다.
결국, 눈으로 본 베네치아였다. 일정이 짧아 어쩔 수 없음에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이곳 다른 성당과 궁전을 안에 들어가 세세히 둘러보지 못한 미련은 미련이기에. 다음 숙제가 될 터이지만. 확실한 건 이탈리아 다른 어디를 가봐도 원픽 도시를 꼽으라면 베네치아가 될 것은 확실할 것 같다. 미인이라면, 도시 베네치아를 닮았을 것 같다. 예쁘다는 단어가 충분하지 않은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