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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ug 07. 2024

여행이 좋은 이유

19.

여행이 좋은 이유를 말하려니 아득하다. 원래 쉬운 질문이 답을 하기 더 어렵지 않던가. 예를 들어 너 여행을 가는 이유를 말해봐 하면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눈에 확 띄는 답을 만들기 어렵다. 남들 답을, 남들이 써놓은 책들을 들여봐도 매력적인 답이 없다. 그런 것인지 모른다.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 그렇듯이 여행이 좋은 이유를 말하려니, 뻔한 답만 머릿속에 맴돈다.


어느 날 시간이 남아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보고 또 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일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낯선, 모르던, 잊어도 아쉽지 않은, 미련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잠시 정을 나누는, 우연히,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굳이 연락을 할 생각도 필요도, 다음에 만나지 않아도 아쉬움이 없는. 그건 인종도 국가도 민족도 개의치 않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편한 관계가 또 있던가. 어쩜, 우리 사는 것도 이런 가벼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닐는지. 나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니 어렵고, 힘들고, 지치는 것인지도 모를 인생이지만, 좋지 않던가. 휙 하고 지나가는 시간들처럼, 만남도 그런 것 같다. 그러니, 다시 보지 않아도 기약하지 않아도 미련이 없는 만남. 여행하는 동안 만남은 그래서 좋은 것인지 모른다.


하나 더. 그들은 기억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나는 기억하기에, 이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언젠가 내 기억 속에 잠시 머물던 사람들! 그저 그들이 어디서든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길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그런 바람이 돌고 돌아 또 다른 어느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다시 사람 '연'이 이어질지 모르기에.



아는 선배가 돌로미티 간다고 하니까 자기는 돌로미티 가면 암벽을 타겠다고 했었다. 간혹, 산행을 같이 할 때 릿지화를 신고 와서 보여주길래 그려려니 했는데, 선배는 진짜 돌로미티 가면 암벽을 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건 지나가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걷다 보니 진짜로 암벽을 타는 사람들을 본 것이다. 주제를 파악해야지! 난 그냥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만족한다!


돌로미티  바이크 족. 포장된 도로 상태가 좋아서 많은 곳에서 바이크 족들을 만날 수 있다.

왼편 사진) 산마루 정상 부근에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아주 넓게 퍼진 산군 군데군데 언덕과 고개가 많은 곳이 돌로 미티인데 도로포장이 잘 되어 있어 많은 바이크 쪽과 자전거족들이 몰려든다. 차를 렌트해서 이곳을 지나는 여행객들도 많아 이곳은 도로 풍경 또한 다채롭다. 길도 산도 아주 높지 않아 트래킹 족들에게 아주 안성맞춤이다.  


트래킹 중에 만난 캠핑족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잘 수 없다. 이곳에선 그게 가능한가 보다. 산장에서 자지 않고 텐트를 치고 같이 밤을 지새우다 보면 더 산 맛을 느낄 터. 그들이 부럽다. 젊음이 부럽다. 길가라서 크게 위험할 것도 없고. 대피소는 말 그대로 대피소인가 보다.


산행을 하다 보면 개와 함께 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개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왔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개가 산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임에도 산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개와 함께 산행하는 경우를 자주 보지 못한다. 산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기꺼이 포즈를 취해줬다.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도. 개와 함께하는 산행을 즐겨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산장 앞에 모여 있는 학생들. 이들은 어디서 온 걸까? 워낙 다양한 루트가 많아서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지, 옷차림이 다들 가볍다. 트래킹을 하는 학생들은 아니고 학교에서 소풍을 나온 것일까? 학생들 옆으로 소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돌로미티는 그런 곳이다. 특히, 소들을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다. 방목을 하는 건데, 사람과 더불어 돌로미티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알타 비아를 걷다 보면 자주 찻길과 만나게 된다. 이런 특성이 돌로미티 지역이다. 아주 높은 고산지대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낮은 구릉지대도 아니고, 산장을 운영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았다. 아름다운 바위 산 곳곳에 있는 길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다. 힘든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그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들은 뭔가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는 이에게 힘내라고 했더니 번쩍 오른손을 들어 화답을 해주었다.


중간에 가다 물을 보충한 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요놈들 때문에 잠시 기다렸다. 뭐 하나 봤더니 앞에 사람들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주인들이겠지? 뿔도 달려있는데, 이놈들은 염소 같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저 언덕 근처에서 뭘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저 떼들이 다 몰려가서 같이 어울려 있었다. 뭘 한 건지?


야트막한 경사지를 오르다 잠시 쉬며 물을 마시는 사람들. 이제 곧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 다들 목을 축이고 다음 목적지를 준비하는데, 물을 마시는 장소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다. 가축들이 와서 물을 마시게 만든 물 터인데, 물이 깨끗해서인지 저 물을 사람들도 그냥 마신다. 여러 곳에서 마셔도 탈이 나지 않았는데, 저 물도 에비앙 생수 아니던가? 크게 보면 알프스산맥에 속한 돌로미티 산군이라서 말이다. 사람들이 물을 마시기에 전혀 이상이 없는데, 저런 형태의 시설들이 산장(정확히는 대피소) 주변에 반드시 있다. 건물 밖에 만들어 놓아서, 산장에 들르지 않아도 물을 보충하거나 마시게 해 놨다.



장면 1. 딸과 아빠. 아빠와 딸. 어느 어감이 더 좋을까? 산악지역이라서 그랬겠지만 가족들이 산행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처음 그들과 마주쳤을 때 바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덕분에 한참 그들이 걸어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지 않고 내려가는 여자아이가 예뼈 보였다. 가냘픈 다리와 돌 길이 대조되어 보이지만, 저 딸은 살아가면서 부딪힐 어떤 어려움도 씩씩하게 이겨낼 것 같다. 아빠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라도 내려갈 동안 딸의 하산을 도와줄 것 같지 않았다. 아딸이란 떡볶이 가게가 생각난다. 엄마와 딸보다 훨씬 멋져 보인다.


장면 2. 요 친구는 혼자 왔을까?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둘러봐도 가족이 없다. 아주 부지런히 내려가는데, 당차 보였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

어느 날 열심히, 힘들지 않은 척하고 올라가다 만난 이탈리아 학생들과 선생님들. 양보를 해줄 테니 지나가라고 신호를 주길래 당신들을 사진 찍겠다고 하니 다들 저렇게 자세를 잡아줬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끊임없이 몇몇 일본어로 말을 건다. 본인들이 아는 듯한 일본어를 다 동원하면서. 나중에 지나가면서 가장 앞에 있던 선생님과 몇 마디 나눴는데,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나라를 다 동원해도 꼬레아는 없었다. 한국이라고 말하자 다들 신기한 듯 쳐다보았는데, 아직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탈리아 산골마을에는 미치지 않은 것 같았다. 도대체 나이가 학년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그들이 보는 아시아 사람들도 나이 구분은 애매할 것 같기도 하다.



알타 비아 트레킹 하산 길에 만난 목동과 양 떼. 아니 염소 떼. 긴가민가 하다. 염소인지 양 떼인 지. 이놈들이 길가를 가득 매워 오가는 사람들과 차량들 통행을 방해했는데, 사람들이야 옆으로 바로 빠져나갔지만 차는 그날 꽤 늦게까지 뒤에서 기다렸을 것 같다. 양치기 혹은 염소 치기 개 두 마리가 주인을 따라오던데, 개는 뒤에 오는 것이 맞나 보다. 양인지 염소인지 다음 목적지를 스스로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목동인 청년이 진지하게 자기 일을 해서 말을 건너지 못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도 호기심으로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알타 비아 트레킹 하산 길로 기억한다. 여러 명의 남녀가 함께 올라오는데 제일 앞에 저 꼬맹이가 앞에 섰었다. 왜 그렇게 나를 보고 짖어대던지. 아마, 자기를 호위하고 가는 여러 명 때문에 우쭐해진 것 같았다. 자기가 마치 왕이 된 듯이. 그러니 별 수 있겠는가! 무릎까지는 아니어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황송하나이다. 속히, 지나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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