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으러 갔다. 싱겁다. 여행을 가면 당연히 사진을 찍는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사진을 찍지만, 여행을 가면 반드시 사진을 찍으니, 결국은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간 것이다. 여행 가서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거의 찾기 힘들다. 누구나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는다. 이때 사진은 평상시 사진과 다르다. 스마트폰이건 전문 카메라 건 도구야 무슨 차이가 날까? 내가 간 곳이 만약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당연히 지금까지 익숙하지 않은 다른 장면을 찍을 수 있다.
찍은 사진은 기존 사진과는 다른, 익숙하지 않은, 낯선, 보기 힘든 사진들이다. 누가 만약 왜 여행을 갔는지 말하라면 이렇게 답해야겠다. 구구절절하게 말할 필요가 없으니 좋다.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과 이유가 다르니 그걸 일반화해도 별로 만족할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사진이라고 표현한 건 결국 내가 본 많은 것이 사진에 남기 때문이다. 남들이 남는 건 사진뿐이야 할 때, 정확히 맞는 말이다. 남는 것 사진이다. 기억이 머릿속에 남긴 하지만 이건 정확하지 않다..
남들과 같이 여행을 가다 보면 좋든 싫든 남을 찍거나 내가 찍히거나. 만약 일행 중에 자기를 찍어달라는 사람이 많다면 곤란하다. 난, 남을 찍어주러 간 것이 아니다. 내가 본 낯선 풍경을 눈으로 본 후 직감으로 바로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 된다. 그건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이고, 그것이 내가 여행을 떠난 이유가 된다. 난 그걸 하러 온 것이다. 남이 남을 찍는 행위보다 내가 그냥 보고픈 장면, 마음에 든 장면이 있으면 그걸 남기고 싶은 거다.
이건 여행이 좋은 이유와 맞물린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리셋 하건, 실연의 아픔을 잊건, 시간이 남아 서건, 그냥 여행이 좋아서 건, 뭔가를 잊고 싶어서 건, 바람을 쐬고 싶어서 건, 여행을 가면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그 속에서도 별나지 않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왜 여행을 떠났는지 멋지게 표현하려고 해도, 머리가 굳었는지 식상해서 폼 나는 문장을 만들지 못하겠거니와, 무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봤자, 살아보니 그런 의미들이 별로 특별하지 않게 다가왔다.
가서 사진을 찍으니, 그곳엔 자연과 인간의 모습들이 남겨있다. 그건 순간을 기록하지만 그 결과가 때론 시간을 넘어서기에 사진이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럼 난 가서 어떤 생각을 담아왔을까?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이런 것이다. 남긴 사진 보며 그땐 이랬었지 하면 어떤가? 사진은 자꾸 앞으로만 가는 시간을, 이걸 되돌릴 수 있어서 아주 좋다. 그러니 여행이 좋다. 그럼 난 그때 그 순간 뭘 담고 싶었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뭔가 담았는데 그것이 뭔지 다시 볼 수 있어 좋은 거다.
왼쪽 위 사진 : 제네바 성 피에르 성당 앞 건물에 음악 삼매경인지 독서 삼매경인지 몰두해 있는 소녀 모습이 아름답다. 저 높이가 꽤 되는데 아랑곳하지 않다니. 오른쪽 위 사진 : 오른쪽 사진은 어디서 학생들이 견학을 온 것 같다. 얼마나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던지 기특했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찍으면서도 담긴 풍경이 흥미로왔다. 세상을 다 산 듯이 해맞이하는 할아버지 뒤로 젊은 여성 3명이 지나가고, 그 앞에 유치원생인듯한 어린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일렬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건 다 비슷하게 사는 것 같다. 왼쪽 아래 사진은 성당을 나와 어느 역사적인 건물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역시나 견학? 하기야 그날이 평일이었으니.
여행의 묘미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있는 것 같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홍수로 인해 도로가 유실되어 체르마트로 들어가지 못한 다음 날 체르마트로 들어가는 기차를 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다행히 도로가 복구되어 기차 편이 운행을 했을 때 기차 안이 어떤가 해서 찍은 사진인데, 그땐 몰랐다. 누가 포즈를 취해줬는지. 사진을 살아있게 해 준 센스쟁이 친구! 아래 왼편 사진은 샤모니 숙소에 머무를 때 세상에나. 저걸 타고 언덕길을 오르다니. 이건 무슨 종목? 위 왼편 사진은 샤모니 도심가에서 숙소로 들어가면서 찍은 사진인데, 피곤한 것이다. 산행은. 얼마나 꿀잠이었을까? 오른쪽 사진은 숙소 근처 성당을 찾아서 가보니 어느 할아버지가 오르간을 열심히 치고 계셨다. 미사를 위해 연습하셨던 것 같은데, 그 엄숙함과 장엄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테호른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전망대를 리프트와 곤돌라를 타고 아주 편안하게 오르면 별 세상이 펼쳐진다. 주변 높이가 3900여 미터가 되니 만만한 높이가 아닌데, 누군가는 장비를 점검한 후 서로를 묶고 다시 설산을 오른다. 사진 오른쪽 위편 사진에 박힌 점들이 다 사람들이다. 와우. 이런 풍광이 펼쳐질 줄이야!
스위스 리프트나 곤돌라는 사람만 타지 않는다.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가지 않기에 몇 번 정류장을 거치는데, 어떤 곳에 내려 어디로 걸어갈지 그건 자유다. 그러니 트레킹 경우의 수는 많다. 체력과 날씨에 맞게 걸으면 되는 것이 알프스 트레킹의 장점이다. 인터라켄 브리엔츠 호수를 인터라켄 역에서 끝까지 걸어보려다 포기했었다. 생각보다 한참 가야 해서다. 역으로 돌아오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얼마나 반겨주던지. 서로 찍고 기쁨을 만끽한 체 돌아서서 걷는데, 누가 막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양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던 친구가 뛰던 걸음을 멈추고 내 손에 뭔가를 듬뿍 주었다. 뭔가 해서 봤더니 젤리였다. 하하! 자기들 먹던 간식을 내게 주다니. 여행이 즐거운 건 이런 맛 때문 아닐까? 그날 그 후 엄청난 비를 만났는데,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기뻤다. 그나저나 저들 휴대폰에 찍힌 내 모습은 어땠을까?
오른쪽 멋진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 그냥 입은 듯한 옷과 아저씨 수염과 선글라스가 인상적이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스위스는 고산 철도가 특히 발달한 곳인데, 서로 다른 곳을 운행하는 기차들이 서로 연결되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성수기라서 그런가? 기차 모양과 색깔이 달랐지만, 운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나 보다.
왕의 트레일은 융프라우, 뮌히, 아이거 3대 미봉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을 걷다가 본 장면들. 가족들인지 아닌지 멋진 경치를 혼자가 아닌 같이 보기 위해 휠체어를 끌고 밀어주는 사람들. 왼쪽 위 사진은 그중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의족을 하고 경치를 조망하는. 아래 왼편 사진은 왕의 트레일까지 곤돌라 등 교통편이 좋아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은데, 곤돌라 타는 뒤편에 놀이터에서 즐겁게 아이들과 어른들도 놀고 있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가족. 이들은 자기들끼리 타기 위해 몇 대를 그냥 보냈을까? 잠시 정상에서 내려가다 중간에 잠깐 내렸었나 보다. 자기들끼리 타려 빈 곤돌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 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LAVAREDO는 지명이다. 트레치메 라바레도. 행사명칭은 UTMB인 것 같다. 트레일 월드 시리즈? 이건 행운이다. 돌로미티 동쪽에 있는 도시 코르티나 담베초는 마치 모든 돌로미티 여행의 중심지 같다. 어느 날 구간 트레킹을 일찍 끝낸 날이었다. 도시 구경을 가게 되었는데, 그날 그곳 중심가에서 트레일 월드 시리즈 경기가 있었다.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마침 도착한 그때가 트레일 경기가 시작된 후 하루 지난 시간이었다고 한다. 우승자는 10시간 정도 걸렸다던가? 이건 정말 완주가 목표인 스포츠다. 사진 찍을 때 들어오던 사람들은 24시간이 지난 후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 순간만큼은 무슨 경쟁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루 종일 걷거나 달렸을 피곤한 엄마를 딸이 반갑게 마중 나왔다. 모녀는 그렇게 같이 결승전을 통과했다. 주변 사람들이 특히 열광적으로 환영을 해주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와 환영을 해주었는데, 아쉽게도 한국인 아저씨가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분 자식들이 길가 모퉁이에서 초조하게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발한 지 하루가 지난 자기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식들 심정도 심정이지만, 이들을 보러 포기하지 않고 들어왔을 그 아저씨에게 힘찬 박수를 그날 보냈었다.
비에야(Biella) 산장에서 트레커들이 간단한 요기를 하는 모습이다. 걷다가 나오는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던가 숙박을 해도 된다. 대게 숙박을 위해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경치가 좋은 산장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배가 고프면 수프를, 더해서 맥주 한 잔까지. 오른쪽 사진에 나온 잘생긴 남자는 미국에서 왔다. 알타 비아 1 시작할 때부터 같이 걷던 친구인데, 희한하게도 힘들어 잠시 쉬고 싶으면 어김없이 이들도 그곳에 있었다. 친구 세 명이서 왔는데, 다른 국적의 트레커들보다 사람들이 오픈 마인드여서 그런지 걷는 내내 동행이 되었다. 고국으로 돌아가 그들은 뭐 하고 있을까? 보고 싶다. 그중 한 명의 이름은 브레이크. Don't break your journey라고 놀렸었는데.
요놈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엄마가 뒤에 있는 줄 알고 나에게 겁을 주려고 잠시 달려왔던 송아지이다. 정말 하룻 송아지 사람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세네스 산장 주변은 옛날에 비행장으로 사용된 곳이라서 평지가 펼쳐져 있다. 그 대지 위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아무래도 이곳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비록, 인간을 위해 사육되는 소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주인공 같다. 그러니 저 송아지처럼 자기들 땅 넘보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저놈은 뒤에 엄마 소가 없자 바로 뒤로 도망쳤다. 송아지가 화를 내면 저런 표정이다. 기억하시길!
가족이 함께 산행을 한다. 할아버지는 개를 끌고, 애들이 등산 스틱까지 철저하게 준비한 것 같다. 이들 부모는 애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나 보다. 산에 오르는 애들이라니. 당장, 엄마한테 공부하지 않는다고 혼나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휴가 왔나?
라가주오이 산장은 알타 비아 중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사방을 막힘없이 전체 돌로미티 산군을 둘러볼 수 있다. 그곳 산장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떼로 몰려왔다. 어떻게 왔을까? 밑에서 산장까지 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온 것은 아닌지. 인솔 교사로 보이는 선생님 말을 잘 따랐던 것 같다. 점심은 학교에서 준비한 듯 다 똑같은 빵이었는데, 이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식사를 했다. 그 기도가 뭐였을까? 자기들 사진 찍는 나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산행을 하다 많은 학생들을 만났는데, 학교 수업으로 산에 왔다고 해도 바람직한 것 같았다. 산장에서 바라보는 뻥 뚫린 360도 전망 못지않게, 향후 젊은 이탈리아가 기대된다.
여행 중 만난 이탈리아 사람들은 친절했다. 특히, 돌로미티 산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 더 그랬던 것 같은데, 우리도 산에서 만나면 친절하지 않던가. 위 사진들은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저 아래 차도까지 동굴을 통해 내려갈 때 찍었다. 거의 1,000m 구간을 내려가야 하는데, 30~40분 정도 동굴 속으로 내려갔던 것 같다. 오른쪽 위 사진이 동굴 입구이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렸더니 가족으로 보이는 7~8명이 함께 내려가려고 했다. 같이 가도 되냐고 했더니 기꺼이 동의를 해줬다. 랜턴도 없고 보호헬멧도 없던 나를 아주 천천히 동굴 출구까지 안내해 줬다. 이 동굴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이 라가주오이 산을 점령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을 물리치려 굴을 팠다고. 결국, 이탈리아 군이 라가주오이 산 주변을 정복했다고 한다.
아래 왼편 사진은 내려오다 잠시 밖을 내려다보니 보이는 풍경이다. 아찔했었다. 오른쪽은 굴을 내려가는 가족들.
다시 가족이다. 이 가족은 어디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일까? 여기도 아빠와 엄마와 애들 두 명이다. 작은 애는 남자였고, 좀 큰 애가 여자로 기억한다. 아빠의 함박웃음이 멋지다. 사진 찍히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조심조심 내려가는 그들 가족들이 그날 무탈하게 산을 내려왔으리라. 그나저나 이 가족은 얼마나 올라갔었을까? 그쪽은 동굴 출구 혹은 입구(올라간다면)였는데 말이다.
돌로미티는 길이 사방팔방으로 트여있어 산에 접근하기 좋다. 그러니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때 가족엔 대부분 개 한 마리 포함된다. 고양이를 좋아해도 고양이를 산에 같이 갈 수 없잖은가. 그런데 개는 아니다. 젊은 부부가 아내와 아들과 딸인지 아들인지 남편이 뒤에 아기를 업고 내려가고 있다. 이곳에서 이건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