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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ug 23. 2024

희망이 주차장의 담배꽁초 같은 거라고?

댄 거마인하트(2021).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놀.

여기 희망이 주차장에 널려 있는 담배꽁초 같다고 주장하는 아버지가 있다. 이름은 로데오. 세상에 이런 아빠가 얼마나 될까? 열심히 찾아보면 항상 있다고 말한다. 참, 난감한 문장이다. 희망은 어디든 널려 있으니 항상 희망을 가지라는 건지, 희망은 담배꽁초같이 흔하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건지. 일면 냉소적이기도 하고. 아빠는 세상 다 산 듯이 말한 것 같은데. 


제목이 특이해서 빌렸다. 빌렸으니 돌려줘야 하기에 그냥 돌려주면 조금 미안해서 읽었는데 재미있었다.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라면 지나친 과장인 것 같다. 인정한다. 그런데 말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스승이란 말이 어디 있지 않던가? 이 책을 쓴 댄 거마인하트도 어른일 텐데, 그 어른이 어린이들을 의한 책을 썼다. 분명 이건 어른의 시각인데, 마음은 어린이 마음으로 글을 쓰다니. 작가는 틀림없이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다 읽고 소설 뒤 감사의 글을 읽어보니 이 책은 아동문학이란다. 성인문학이 아니고. 어린이를 위한 책인데, 작가도 어른이고 이 책을 읽은 나도 늙어가는 어른인데. 어른이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썼는데, 어른이 읽고 감동을 받다니. 뭔가 이상하다. 아동문학이 잘은 모르지만 아이들이 읽고 세상을 밝게 이해하는 기반을 닦도록 하는 것 아닐까? 감동했다. 그냥 읽힌다. 


물론,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다. 루리의 긴긴밤(2021)도 그랬고, 조지 손더스의 여우 8 (2021) 그랬고. 다른 책들도 많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성인소설 아님 성인문학이란 것이 성인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어떨 땐 아동문학만큼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성인문학은 성인들에게 벌어졌던 있음 직한 일들에 대한 '구라' 라면 아동문학은 자라나는 새싹을 위해 쓴 글. 이것도 '구라'인 건 맞지만, 소설이 구라를 넘어서야 함을, 넘어서는 전제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과 교훈을 주어야 하는 것. 차이는 성인이 성인문학을 읽었는데 실망하는 작품들이 많은 반면에, 성인이 아동문학을 읽었는데 실망하는 작품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강하게 주장하기에는. 아동문학을 읽어봤자 얼마나 읽었을까? 맞는 말이다. 


어쩌다 읽은 책들도 대게 읽게 된 경로가 무슨 무슨 문학상을 휩쓴 책 들이기에. 이건 성인문학도 마찬가지로 무슨 무슨 상을 타던가 베스트셀러라든가 그런 기준으로 읽으니까.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아동들을 대상으로 쓴 책들이 어른들을 대상으로 쓴 책들보다 감동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모든 책이 그렇지 않지만. 다시 이 글을 원래 쓰고자 했던 생각으로 돌아오면 성인이 되면서 겪은 직간접 경험들로 이해되는 많은 성인문학책들이 폭력을 다루고 섹스를 다루고 음모를 다루고 암투를 다루고 성공을 다루고 돈을 다룬다고 해서 어떨 때는 감동에 관한 한. 아동문학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어쩜, 우리 어른 내지 성인들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지난 어린 시절이나 배웠던 모든 것들을 다 잊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무시하면서 어른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기억 속에 마음속에 어딘가 꼭꼭 숨겨두었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사랑과 연민이 아주 훌륭한 아동문학을 접했을 때, 아 그랬었지. 그래야 하는 거지라는 당위와 추억이 뒤범벅되어 다시 생각하게 만드니, 아동문학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담배와 술에 혹은 남들과 경쟁하느라 지친 당신에게 일독을 권한다. 


코요테 선라이즈. 이른 나이 일곱에 엄마와 언니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다. 상처는 아버지 로데오의 마음도 할퀴어 생채기를 남겨 이들 부녀는 스쿨버스 예거와 함께 미국을 떠돈다. 어느 날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이 없어진다는 할머니의 연락을 받고, 그곳에 묻어둔 엄마와 언니들 간의 추억을 담은 상자를 찾으러 떠난다. 5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플로리다에서 출발해서 장장 5,793km 떨어진 서부 워싱턴 주 어딘가에. 


아빠와 코요테는 지난 상처로 먼저 이별을 한 가족들 얘기를 꺼내는 건 불문율이다. 그로 인해 로드트립을 5년째 하고 있으니. 그런 와중에 엄마와 자매들과의 추억이 남긴 추억 상자를 잃는다는 건 잃어버린 가족들을 다시 한번 잃어버리는 상처라서 코요테는 이를 숨기고 기나긴 여정을 아빠 몰래 시작한다. 당연히 이 여행에는 아름다운 음모(?)를 실행하는 동지들이 같이 하는데, 가난하지만 꿈을 꾸는 음악가 레스터,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길을 떠난 살바도르와 엄마 에스페란사, 나이를 속여 차에 동행하지만 동성애자임을 가족에게 밝혔다 거부당한 벨,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아이반까지.


그럼 이들의 좌충우돌 로드 여행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당연히 해피엔딩이다. 어떻게 끝나기에? 읽어보시라. 술술 읽힌다. 혹여, 아동문학이라고 해서 유치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생각 마시라. 사는 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 어린이들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부딪치고 부대낄 분. 누군가는 이 소설을 가족소설이라고 하던데, 가족들이 다 같이 읽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생각해 보게나. 각자가 이룬 가족의 그 가족이 뭔가를 말하는지. 혼자 읽어도 좋은 아름다운 '구라'다. 세상에 이런 구라들이 둥둥 하늘을 떠다닌다면 어른들이 벌여놓은 지저분한 흔적들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다. 폭우와 비바람이 치던 다음 날 비 그친 날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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