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2024). 영원한 천국. 은행나무
소설 제목이 영원한 천국이다. 생각하고 생각해서 천국은 영원할까, 생각해 봤다. 천국이 영원하면 영원한 천국은 동어반복이다. 천국을 강조하려고 했을 수도 있으니. 천국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역으로 영원하지 않은 천국도 가능? 영원하지 않은데 굳이 천국에 가려고 할까? 그때 천국은 6개월짜리, 1년짜리, 10년짜리 이렇게 있을 수도 있겠지? 불교에서는 현생에서 덕을 아주 많이 쌓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데, 다시 태어나면 그곳이 그곳일 텐데 다시 태어나야 할까? 덕을 쌓으면 다시 환생하는 곳이 천국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현생이 천국?
생각이 이리저리 튄다. 답은 마땅하지 않은데, 확실한 건 죽어서 가는 곳이, 죽어야만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이 소설에서는 아니다. 여기서 천국은 내세와 현세까지 다 포괄하는 것 같다. 소설에선 내가 알고 가는 곳이기도 하니까. 소설에서는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고, 병든 자도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영원한 천국"(p. 106)이라고 말하는데. 그곳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소설에서 경주와 해상이 만나는 곳이 처음에는 현생인 줄 알았다. 읽다 보니 어라, 이상한데 했었다. 경주가 드림시어터 개발자 해상을 만나는 곳이 바로 롤라였다는. 힌트는 개발자라는 단어다. 프로그램 개발자. 현생에서 쓰이는 용어가 천국을 위해 쓰이다니. 이건 어쩔 수 없다. 소설가가 현생을 사니 그곳에선 개발자가 가상현실도 만드는데, 당연히 롤라는 단순한 가상세계가 아니다. 천국이다. 천국!
사실 읽다 보면 뭐가 현실이고 뭐가 롤라인지 크게 헷갈리지 않더라도, 아니 헷갈려도 상관없다. 재미있으니까. 이런 소설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읽으면 된다. 두꺼운 책도 문제가 안 되는 것이 당연히 정유정이 썼으니 재밌게 읽히는데, 군데군데 내용들이 아프고 슬프고 연민이 최대치로 작동된다. 롤라에서는 그저 잊고 살면 되는데, 천국에서도 완전한 만족이란 것이 없는 건지 자기 인생으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은 드림시어터를 선택하고. 참, 어렵다. 어려워.
소설 속에선 이런 배경 때문에 해상을 어떻게든 개발자로 만드는 건 해상의 연인 박제이이지만 그는 죽는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대비해서 자기도 살 걸 전제하면 소설이 안될까? 비극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슬프게 만드는 게 정유정 소설의 단골 플롯이지만 자기가 죽을 거를 예측하지 못해도 자기는 롤라에 갈 수 없는 걸 알아서인지 어떻게든 연인 제이를 그곳에 보내는데 애틋하다. 롤라에 안착한 해상은 자기 손님 경주를 만나서야 그의 삶 속에서 그의 연인이 어떻게 살아 꿈틀거렸는지 알게 되고. 누구 덕에 롤라에 왔는지 알아도 롤라는 이미 죽은 자를 받지 않는다. 오로지 선택된 몇몇. 롤라가 초기라서 무작위로 선택된 행운아들 말이다. 천국도 에러를 줄이려 테스트를 해야 하니.
소설 대부분의 배경은 삼애원이다. 노숙자 숨터라고 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숨터가 아니라 저승으로 가는 대기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혹독하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 그곳에 전직 물리치료사 임경주가 보안담당으로 취업을 하는데, 경주는 동생 승주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괴로움에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 가족들은 불행이란 불행을 죄다 유전으로 물려받았는지. 이해상은 32세에 근육이 수축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여자 주인공이지만. 경주와 섬싱으로 엮이지는 않는다. 그럼 정말 막장 소설이 될 텐데.
경주 동생 승주가 노숙자가 되어서 죽는 거와 삼애원에서 유일하게 롤라로 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서 유심을 뺏으려는 배경은 동일한데, 그 거대 배후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라서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워낙 흡인력이 강해서 이런 의심을 굳이 가질 필요가 없이도 신속하게 전개되어 결말에 도달되기 때문이다. 삼애원에는 보안팀 말고 소장과 얽힌 관리 팀장과 팀원인 칼잡이 등이 보안팀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이때 복선을 깔고 등장하는 이가 삼애원 바리스타 베토벤.
베토벤이 실질적인 삼애원 물 주고 그가 이곳에 잠입해서 죽기를 기다린 건 조용히 현생에서 쓱 살아서 롤라에 갈 계획이었기 때문. 그를 노린 집단들이 정확히는 롤라행 유심을 가진 것이 베토벤임을 알게 되니. 그들이야 당연히 베토벤이 갖고 있는 롤라 티켓 유심을 챙겨 한몫 단단히 잡으려고 하고. 이렇게 요약하다 보니. 어? 소설이 복잡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기존 정유정 소설만큼 슬프고 아련하고 고통스럽지 않지만 새롭고 진기한 신사고를 경험하니 만족! 소설이란 도구가 참 새롭고 막강하다는 건 사족.
이제 소설도 다 읽었으니 나도 바하리야 사막에 가서 애인이나 만나서 혹여나 바람에 굴러다니는 유심 하나 구해 롤라로 떠야야겠다.
지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