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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Nov 25. 2024

이런 결말 어떠세요?

이혁진(2019). 사랑의 이해. 민음사

작가가 소설 뒤편에 쓴 '작가의 말'에서 실토했듯이 결론을 맺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 같다. 사랑과 혹은 그에 딸린(?) 결혼의 본질을 말하려는 건지, 요즘 세태를 주장하려는 건지, 모두들 원하는 그 사랑이란 것이 결코 사랑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지. 차라리 진화생물학 얘기를 썼더라면 쉽게 이해될 텐데. 아니다. 이 글도 뭐 어렵지 않다. 같은 회사에서 이런 남녀관계가 벌어지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이 들지만, 소설이라고 읽으니 그럴 수 있겠지 했는데. 


소설만 그렇겠는가. 뭐든 시작이 있어 끝이 있어야 하는 어떤 관계라도 결론이 중요한 것 같다. 누군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결론이 의도하지 않게 될 때 그걸 그저 합리화하면 되지만. 과정이 중요했다고. 연애 이야기. 로맨스 소설.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는 바가 뭔지 명확히 와닿지 않은 건 나만 그럴 것이다. 오래간만에 읽은 연애 이야기라서, 이럴 수도 이렇겠지. 이랬을 거야 하며 읽었으니 수월한 전개였다. 많은 남녀가 만나서 즐기다 헤어지기도 하고 현실에서 실제로 결실을 맺기도 하고. 그 와중에 있음 직한 세부적인 사항들, 소위 디테일이 살아있어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지만. 


은행이란 공간에서 이뤄지는 밀당과 고도로 계산된 관계. 그렇지. 은행이니까 더 정교할 것 같은. 이제 창구에 가서 돈을 찾는 경우가 많지 않은 세상을 살면서 은행이란 공간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 하는 소설은 반가웠던 건 사실이다. 그곳 공간에도 사람이 사니, 그것도 돈과 경쟁과 출세가 엮인 체험 현장은 많은 걸 시사하게 하는데, 여기에 슬쩍 사랑이 끼게 되면 이게 참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러니 작가가 은행이란 공간에 그저 그런 우리 보통 사람들을 집어넣은 건 현명해 보인다. 그 안에서 보통 사람들도 갖고 있는 속물근성들이 사랑과 뒤섞여 꿈틀거리니.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건 아니었'던 주인공들이라는데, 이게 좀 수상하다. 애초 우리가 순도 100% 사랑만 하는 관계가 가능하던가. 이때 사랑은 육체적인 관계만 의미하지 않듯이. 반대로 육체적인 관계만 원하면, 이건 술 마시고 클럽에서 놀다가 하룻밤 즐기는 일부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사고일 것 같은데, 우리네 보통 사람들도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건 사회에서 주어진 교육이나 도덕이란 규범 때문이라기보다, 애초 우린 그런 동물들처럼 살면 회의하게끔 설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동물과 조금 다른 차이가 드러날 뿐. 동물이면서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뭔가 자꾸만 고상하게 사랑을 분리해서 마치 별다른 것처럼 말하는데. 그래봤자 동물이 벌이는 사랑 아니던가. 지고지순한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그랬다고 신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소설에서, 작가와 제목을 밝히면 안 될 것 같기에, 남녀가 만나 주야장천 섹스를 즐기다 헤어지는데. 작가도 이를 눈치챘는지, 주인공이 자기들이 벌이는 관계가 마치 동물이 벌이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건 또 뭔 소리? 내용 없는 소설이라서 그걸 보충하려고 양심선언? 사람은 애초 인간이라고 해도 동물인 것을. 이 소설의 미덕은 애초 우리가 고귀하다고 하는 그 사랑이란 것 자체가 물질적일 수밖에 없음을 어떻게든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러니 배경을 은행으로 등장시키고. 그곳 자본주의의 전초기지인 은행에서 벌어지는 사랑이라서 더 특별할 까만은. 은행에 방점이 찍히니 더 물질적으로 보이도록 작가가 의도한 것은 자명하다. 


주요 주인공은 상수, 수영, 종현, 미경. 상수는 수영을 좋아했는데, 모든 것을 갖춘 미경과 사귀고. 수영은 예뻐서 묻 남성들 시선을 한 몸에 받지만 청경인 종현과 그렇고 그런 관계. 수영은 텔러로 정규직이 아니고. 상수는 조건이 완벽한 미경과 진정으로 빠져들 뻔했는데, 빠져들어도 되는데 자꾸만 미경이 가진 배경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러 자꾸 한눈을 판다. 수영에게. 종현은 임시직 청경이라 앞날 경찰을 꿈꾸면서 현실을 벗어나려 해도 쉽게 시험이 그를 시험에 들게 한다. 종현은 가난한 자기 환경으로 인해 수영과의 동거로 마음이 불편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청춘 남녀의 미래는 불투명하면서도, 그 와중에 종현은 슬쩍 바람도 피운다. 


소설의 결말은 수영이 같은 은행원 경필과도 관계를 맺어 종현이 이를 폭로하면서 폭풍이 한순간 은행에 몰아닥친다. 그러니, 수영도 회사를 그만두고 종현도 사라져 나중에 경찰이 된다고 그러고. 애초 이런 관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건 은행이란 공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공간에서 감정과 육체가 서로 엮이고 엮인다는 설정 때문에 빚진 원죄 같은데. 중요한 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란 것 자체가 애초 물질적일 수밖에 없이 프로그래밍되어있는 것을 자꾸만 사랑에 방점을 두다 보니 이런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지. 그렇다고 누군가 좋아할 때 느끼는 그  감정마저 부정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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