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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작가 Aug 20. 2024

집착병이 또 도졌다

결국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0. 집착병이 또 도졌다. “요즘 내가 꽂혀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요가 스승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두 눈 감고 내 몸 구석구석 하나하나 살펴봤다. 몸을 가득 부풀리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나는 내가 여러 가지 분야에 깊은 강도로 꽂혀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1. 현재 나는 석사 과정에서 성적 만점을 유지하는 것에 꽂혀있다. 분명 석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성적에 대한 압박 없이. 오직 배우는 과정 그 자체에만 가치를 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성적에 기이하게 집착하는 습관을 쉽게 되찾았다. 99.4점은 100점이 아니기 때문에, 99.4점도 용납할 수 없다. 왜 이러는 걸까?

2. 새로이 시작한 프로젝트의 업계 지식을 단시간에 정복하는 일에는 더 푹 빠져있다. 점심 12시, 저녁 6시에 식사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점심 먹고 한자리에서 공부하다 보면 저녁 알람이 울리고 만다. 그 누구도 데드라인을 정해주지 않았고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스프린트에 가까운 오버를 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왜 저럴까?

3. 요가원에서는 특정 자세를 하루빨리 완성하고 싶다는 욕망이 앞선다. 왼쪽 어깨에 담이 온 지 2주가 넘었다. 운동을 쉬어주지 않고, 계속 어깨에 무리가 되는 동작을 시도했더니 회복이 더디다. 진짜. 진짜, 왜 이럴까?

4. 몰입은 짜릿하다. 허나 의무감이 선동하는 몰입, 향유없는 몰입은 집착으로 번지기 쉽다. 어쩌면 나는 집착에 집착하는 것일지 모른다. ‘왜 그러는거지? 어떻게 하면 덜 집착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다시 집착 루프에 돌아오는 순간, 스승은 말했다. “내가 꽂혀있는 것은 사실인가요? 아니면 생각인가요? 당장 꽂혀있는 것을 떼어내려 하지 말고 조수석에 태우세요. 조수석에 태우고 그를 인정해 주면서, 원래 가야 할 길로 운전해 가세요. 가고 싶은 길을 보세요.”

5. 손바닥 뿌리로 이마를 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맞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은 내 생각인가, 사실인가? 내가 가고 싶은 길은 <향유>다. 사랑의 또 다른 살아있는 표현, 향유. 집착을 버리고 가려고 집착하지 말고, 향유라는 목적지를 보고 나아가야 한다. 조수석에 앉은 집착은 내 인정을 받고, 사랑을 누리며, 결국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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