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차게 말을 씹고, 오른손을 왼손이라 하고, 얼굴이 새빨개지게
0. 요가를 지도한 지 딱 1년이 됐다! 지도를 시작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장점 3가지를 돌아본다.
1. 첫 째, ‘내’ 요가가 폭풍 성장했다. 요가를 가르치는 능력이 향상된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 내 요가 실력이 폭풍 성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은 “더 멋진 자세를 하게 됐다!” 이런 게 아니라.. 깨달음이다. 제 스스로의 실력이 쪽팔리는 수준임을 깨달았다는 것이 가장 큰 성장이다.
1-2. 지난 10년간 수련을 꽤 했다고 자만하며 “이 정도면 숙련자지”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요가를 지도하면서 내가 영락없는 초심자임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계기로, 한 번 지도를 할 때 개인 수련을 적어도 5번은 한다. 역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최고의 배움인 것이다.
***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는 게 있다. 낮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높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인지 편향이다. 나는 낮은 능력을 가지고 내 능력을 과대평가했었던 게 틀림없다. 같은 맥락의 학위 유머도 있다.
학사: 난 무엇이든 다 안다.
석사: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
박사: 난 아무것도 모른다.
교수: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말하면 다들 믿는다.
2. 둘째, 무대에서 여유가 생겼다. 무대에서 떨리는 건 누구나 다 떨린다. 내가 연예인이 아닌 이상 매주 꼬박꼬박 나를 무대에 세우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떨림에서 평정로 ‘전환’되는 시기를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는가이다. 그 전환의 시기를 근 1년간 많이 앞 당긴 것 같다.
2-2.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당최 모르겠다. 수업만 하기에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깜깜하다. 첫 수업으로 가는 운전대를 잡고 “집에 가고 싶다!”라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만 있다. 지금은 전체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가이드를 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부적인 가이드까지 주는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는 민망해서 수련생 눈을 똑바로 보지 않고 빈 공간을 보며 말하곤 했다면, 이제는 수련생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고 질문도 한다. 짜릿하다.
3. 셋째, 시간을 두고 <쌓아가는 힘>에 대한 믿음이 강화됐다. 아직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하고 부족하다는 것은 기본값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년 차와 1년 차, 그리고 2년 차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시작도 안 하고 “내가 지금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할 거야.” 따위는 없다. 막상 해보면 무조건 못한다. “와, 내가 이렇게 못할 수도 있구나!”를 깨닫는 것이 시작점이다. 계속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3-2. 무조건 거쳐와야만 했던 1년을 돌아본다. 줄기차게 말을 씹고, 오른손을 왼손이라 하고, 얼굴이 새빨개지게 쪽 팔리고, 목소리가 떨리고, 수업 전 후로 초조했던 마음들이 범벅되었던 첫 한 해. 10명 이하로 시작했던 초초초 소규모 수업에서, 친구도 데려오고 딸도 데려와 20명을 꽉 채워준 중소규모 수업이 돼버린 한 해. 수업이 끝나면 문 밖까지 따라 나와 “선생님, 수업 너무 좋았어요. 수업 또 언제 있어요?” 물어봐주는 횟수가 늘어나던 한 해. "나.. 특허 낼까 봐." 나만의 특별한 지도 방법을 차곡차곡 구축해 간 한 해. 이 한 해를 절대 속성이나 지름길로 가는 치트키 따위는 없을 것이다.
4. 온전히 제 몸으로 뚫고 가야만 하는 것. 그런 종류의 것을 사랑하나 보다. 속으로 큭큭 거리게 좋다.
5. 마냥 해야지, 해야지 하고 다짐만 했던 1년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해내 온 1년이 기특하다. 1년 8개월 전만 하더라도 직장인이었던 내가 요가 지도자 2년 차에 접어들다니. 진짜, 진짜 하고 싶으면 시작하기 늦은 시기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