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0. 집착병이 또 도졌다. “요즘 내가 꽂혀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요가 스승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두 눈 감고 내 몸 구석구석 하나하나 살펴봤다. 몸을 가득 부풀리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나는 내가 여러 가지 분야에 깊은 강도로 꽂혀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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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나는 석사 과정에서 성적 만점을 유지하는 것에 꽂혀있다. 분명 석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성적에 대한 압박 없이. 오직 배우는 과정 그 자체에만 가치를 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성적에 기이하게 집착하는 습관을 쉽게 되찾았다. 99.4점은 100점이 아니기 때문에, 99.4점도 용납할 수 없다.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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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이 시작한 프로젝트의 업계 지식을 단시간에 정복하는 일에는 더 푹 빠져있다. 점심 12시, 저녁 6시에 식사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점심 먹고 한자리에서 공부하다 보면 저녁 알람이 울리고 만다. 그 누구도 데드라인을 정해주지 않았고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스프린트에 가까운 오버를 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왜 저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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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가원에서는 특정 자세를 하루빨리 완성하고 싶다는 욕망이 앞선다. 왼쪽 어깨에 담이 온 지 2주가 넘었다. 운동을 쉬어주지 않고, 계속 어깨에 무리가 되는 동작을 시도했더니 회복이 더디다. 진짜. 진짜,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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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몰입은 짜릿하다. 허나 의무감이 선동하는 몰입, 향유없는 몰입은 집착으로 번지기 쉽다. 어쩌면 나는 집착에 집착하는 것일지 모른다. ‘왜 그러는거지? 어떻게 하면 덜 집착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다시 집착 루프에 돌아오는 순간, 스승은 말했다. “내가 꽂혀있는 것은 사실인가요? 아니면 생각인가요? 당장 꽂혀있는 것을 떼어내려 하지 말고 조수석에 태우세요. 조수석에 태우고 그를 인정해 주면서, 원래 가야 할 길로 운전해 가세요. 가고 싶은 길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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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손바닥 뿌리로 이마를 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맞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은 내 생각인가, 사실인가? 내가 가고 싶은 길은 <향유>다. 사랑의 또 다른 살아있는 표현, 향유. 집착을 버리고 가려고 집착하지 말고, 향유라는 목적지를 보고 나아가야 한다. 조수석에 앉은 집착은 내 인정을 받고, 사랑을 누리며, 결국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