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방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0. 내 생애 최초로 소방서에 가본 날. 내 생애 첫 요가 출강 덕분이다. 나는 정말이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소방서 관계자분이 먼 길을 와줘서 고맙다, 고맙다 몇 번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내 평생 꿈만 꿨던 일 안에 살고 있는데, 왜 고맙다고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1. 최근 유퀴즈에서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소방관 화상 상처를 위한 문신 아티스트로 일하는 사람을 알게 됐다. 대단한 이유나 큰 인연 없이도 소방관에 대한 막연하고도 숭고한 존경감이 있었던 나는 그의 이야기에 즉시 매료됐다.
2. 나도 소방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3. 나는 내가 희망하는 것에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꿈꾼 지 얼마돼지도 않아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 경기 북부 11개 소방서에 출강하는 대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소방관은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니까, 근력 운동 위주로 하는 게 좋을까? 매일 고민했다. 내가 닿은 결론은 <이완>이다. 그들이 평소에 쓰는 근육의 방향을 단 한 시간이라도 바꿔보자. 내 마음대로 프로젝트 이름을 정했다. 소방관의 이완.
4. 나도 직장인일 때 만성 긴장 상태인 시간을 오래 보냈다. 맨날 일이 터졌고, 언제나 사건사고에 대기하고 있었다. (소방관이 매일 마주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스운 수준의 사고지만) 이 긴장은 일상에까지 번졌다. 운전을 하면서 쓸데없이 핸들을 꼭 잡고 있다거나, 쓸데없이 만날 엉덩이나 복부에 힘을 주고 있다거나, 쓸데없이 턱관절을 꽉 다물고 있다던가. 턱 긴장을 풀기 위해서 보톡스까지 맞으며 목과 어깨와 고관절이 망가져갔다. 그러다가 명상과 요가를 만나게 됐고, 이완이라는 게 대체 뭔지 알게 됐다.
5. 내가 처음 이완이라는 걸 했을 때 자꾸만 눈물이 번졌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야만 우수한 성적을 얻고, 어떻게 해야만 좋은 대학에 가는지, 어떻게 해야만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가르쳐줬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만 쉴 수 있는지는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쉼에 대해, 이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
6. 힘을 주고, 힘을 쓰고, 힘을 내는 것은 쉽다. 그 자체가 쉽다기보다 그런 방향으로 힘을 쓰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힘을 쓰는 것에는 까막눈이다. “쉬는 거? 껌이지.” 머리로만 쉬운 것이지, 막상 몸으로 하려면 대체 말을 듣질 않는다.
7. 이완에 대한 오랜 고민, 경험, 그리고 철학과 그 실천을 나누는 현장에 119 소방관들이 함께해 줬다. 마지막에는 그들을 향한 고개 숙인 감사함을 육성으로 전했다. 바리바리 챙겨주신 핫도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내내 찡찡하게 외쳤다.
8. 대한민국 소방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