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힌다
0. 쓸데없을 거라 생각했던 소설 쓰기 수업이 의외로 꽤 좋은 선택이었다. 반드시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없더라도, 쓰기 수업을 듣는 건 꽤 괜찮은 취미 생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처음 수업에 등록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도대체 소설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였다. 수업은 간략한 소설 이론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컨대 소설가들은 글을 쓸 때 어떤 요소를 염두에 두는지와 같은? 매주 숙제로는 A4 기준 2-3페이지의 글을 써서 제출한다. 2-3페이지는 단편 소설의 한 꼭지가 될 만한 분량으로, 나도 벌써 2개의 글을 썼다. 나중에 글이 어느 정도 정돈되면 브런치에도 연재해 볼 계획이다. 으쌰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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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에 대한 시력을 갖춰가는 과정이 재밌다. 더 이상 소설을 재미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좀 아쉽긴하다. 재미도 재미지만, 소설 속 인물 설정이나 배경 묘사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되면서 점점 더 경외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지가 무슨 소설가도 아니면서 묘한 질투심도 동반해 소설을 읽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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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주 차 수업에서는 소설을 쓰기 앞서 인물과 공간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대해 배웠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소설'에서 <인물>을 설정하는 방식이 '상세페이지'를 작성할 때 <타깃> 설정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세페이지 작성 전 나는 항상 그 제품 타깃의 신상 정보와 가치관을 한 페이지 가득 정리한다. 그리고 그 삶의 가치관이 우리 브랜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맞춰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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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물 설정을 할 때, 그 인물의 나이, 사는 곳, 성격, 가치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취미, 가족관계, 친구관계, 습관, 강박 관념, 그리고 콤플렉스까지 담은 미니 자서전을 써봐야 한다. 설사 이러한 정보가 소설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인물을 명확하게 설정해놔야 작품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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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살아있는 인물을 쓰기 위해서, 인물이 집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일상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떻게 일과를 보내는지 그 장면을 써보라'는 가이드였다. 집 밖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그가 집 안에서 벌이는 적나라하고 작은 행동들의 합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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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더불어 소설을 쓰는 내내 설정한 인물을 내 일상에 자꾸 데리고 다니라고 했다. 이 주인공을 카페에 데려오면 어떻게 행동할까? 똑같은 카페라도 아침에 갈 때와 저녁에 갈 때 어떻게 다를까? 누구와 갈까? 어떻게 메뉴를 시키고, 어떤 메뉴를 시킬까? 어떤 메뉴는 절대로 안 시킬까? 이런 상상들을 계속해 보는 것이다. 오, 그런 방법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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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런 걸 재밌어하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 참.. 기특하기도 하고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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