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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Feb 09. 2021

탈모와 민머리

둘째를 낳고 나서 지독한 탈모가 왔는데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탈모관리를 등록했다. 머리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편이지만, 훤하보이는 두피 거울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몇 번 탈모센터를 오가 늦은 속도로 잔머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그 새 원장과 익숙해져 이 얘기, 저 얘기 수다도 떨고는 했는데 어느 날 돌연듯 그분은 자궁암 치료와 수술을 받아야 해서 가게를 몇 개월 닫는다고 했다. 나보다도 어린 사람인데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마음속에서는 '내가 남은 쿠폰을 쓸 수는 있을까' 우려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감을 때도 한 웅큼, 말릴 때도 한 웅큼 @pixabay



그렇게 6개월 정도 그곳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탈모가 다시 시작되어 전화를 했더니 때 마침 다음 주부터 재 오픈한단다. 갔더니 원장이 밝게 인사를 하는데 사람이 달라 보인다. 비만이던  체형은 보기 좋은 통통 체형으로 바뀌었고 머리도 짧은 단발에 회색빛이 도는 요즘 젊은이들 같이 염색을 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고객님, 잘 지내셨어요?"

"네. 치료  받으셨어요? 예뻐지셨네요. 못 알아보겠어요. 헤어스타일도 확 달라지셨고."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거울을 힐끔 보더니 얘기한다.

"네. 살이 엄청 빠졌어요. 제 머리 괜찮죠?"

"네. 색깔도 예쁘네요."

헤헤헤 웃던 그녀가 내 머리를 정성껏 빗질하더니 말한다.


"저...... 이거 가발이에요. 진짜 같죠?"

더없이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얘기에 나는 깜짝 랐다.

"어머, 진짜요? 전혀 몰랐어요. 항암 때문에 머리 빠져서 가발 쓰신 거예요?"

내 머리팩을 바르 그녀가 얘기한다.

"네. 항암을 4번 했는데 항암 때 너무 빠져서  머리 싹 다 밀었거든요. 근데 민머리 진짜 편해요. 머리 말릴 것도 없고 집에서 머리 빠지는 것도 없으니 청소도 편하고요."

인터넷에서 산 가발인데,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다들 진짜 머리로 속는다며 한참 가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투병생활이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나는 알리가 만무하다. 아직 결혼 안 했는데 자궁을 적출해서 어쩌냐 물으니 더 밝게 웃으며 쿨하게 대답한다.

"괜찮아요. 저 어차피 비혼주의자예요."

나라면 비혼주의자라 해도 너무 속상해서 우울감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녀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한층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의 자궁근종 수술 계획을 듣더니, 자궁수술 후에 탈모가 다시 올 수 있다고 그전에 관리 잘하시라고 당부해준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의 탈모를 다루는 그녀가 '민머리가 편하다.'라고 말하는 게 역설적이지만, 그 날은 내내 그녀의 긍정적인 태도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힘든 시기일수록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아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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