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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Jan 11. 2021

그 날에서야 밝힌 바이올린의 비밀

철부지의 세 번째 눈

철부지의 세 번째 눈

울 아부지 뵈러 왔는데
철부지 아들 녀석은
눈 덕분에 신이 났다

엄마,
나는 지금까지
딱 두 번 눈을 봤어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철부지 인생
세 번째 눈을 보더니
흥분하여 날뛰는 모습이
영락없이 말띠구나

절을 하고
금세
남편과 사라진 아들

인사를 드리러 온 건지
눈싸움을 하러 온 건지

요 녀석 어디 갔지 찾으니
우리 언니 웃으며 하는 말

괜찮아,
우리 아버지는
손주 온 게 너무 기뻐
같이 따라다니며
눈싸움하고  있을 거야

그래 맞아
아부지의 자리를 보니
어느새
고사리 손으로 꽁꽁 뭉쳐
만들어 놓은
꼬마 눈사람
아부지 옆을 지키고 서 있다


@pixabay


 우리가 격식을 중시하는 가족은 아니지만, 아빠를 이대로 보내는 것이 영 허전했는지, 엄마는 삼우제도 챙기고 49재도 챙기자 한다.


  나 어린 시절 우리 아빠는 자식들 생각하는 가정적인 아빠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주들 생각하는 마음은 커지는지 항암을 앞둔 어느 날에는 대뜸 나에게 카톡으로 , 손주들을 생각하면 삶의 의욕이 생긴다고 당찬 메시지도 보냈다.


 그런 손주들 얼굴을 못보고 가신 것이 한이 될까 싶어, 삼우제는 첫째만 데리고  추모공원에 갔다. 3시간의 긴 이동에 지쳐있던 아들은 도착하니 그저 눈놀이에 신이 났다. 아빠한테 소주를 따르며, 엄마와 우리 삼 남매는 살짝 웃었다. 암 이후 술을 입에도 못 댔는데 이제 원 없이 드실 수 있겠네, 하며.


 그날 밤, 집에 도착하여 한밤중 언니와의 통화 중 바이올린에 얽힌 아빠의 비밀을 얘기해주었다. 언니는 꺽꺽 울었다. 나름 서프라이즈 준비 같아서 나는 일부러 숨겼지.  내가 철부지의 세 번째 눈, 시를 보내주니 언니의 답시가 왔다.




바이올린

받고 싶은 선물이 무어냐 묻는 동생에게
아버지는 바이올린이라 대답했단다.
좋은 바이올린 사드려봐야
끽끽 소리 내며 조금 만지다 마실 테지.

켜켜이 먼지가 쌓여있을
내 옛 바이올린이 떠올랐다.
새로 산 것 마냥 하얀 거짓말로
꽁꽁 포장하여 보내드리라 했다.

유독 튜닝을 할 때면
줄이 뻑뻑하게 조절되다가
탁,
끊어져버리기 일쑤였던
헌 바이올린이었다.

아버지 삼우제가 끝난 날
동생이 슬픈 목소리로 토로를 한다.
언니야 사실은 아부지가 그 바이올린
언니 결혼식 때 연주해준다했었다.

첫째 딸 결혼을 꿈꾸던 울 아버지
뭐가 그리 신나 준비를 하려 했을까.
아버지 살아생전
내내 비어있던 내 옆자리가 무색하다.

@pixabay



  비어있는 무색한 옆자리가 빨리 채워지길.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머지않은 미래 언니의 결혼식에 우리는 아빠의 바이올린이 생각나 많이 울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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