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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Aug 30. 2021

철부지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철부지.

대학교 1학년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밝고 외향적인 때였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택적함구증을 벗어나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놀던 때이지만 본성이 내향적인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나 친한 소수의 친구들 앞에서만 활달했다. 기본적으로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대학생이 되어 교양으로 듣던 심리학 수업에서 MBTI 검사를 했더니, 내향적(I)과 외향적(E) 성격의 중간지점에서 약간 외향적으로 치우쳤다. 그래서 당시에는 나는 내가 외향적인 성격으로 완전히 변했다고 착각을 했다. (그러나 30대 이후로는 MBTI 검사를 아무리 다시 해도 늘 내향적인 쪽으로 치우친다. )


내 목소리는 애 같은 면이 있어서, 대학생이 된 후에도 집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은

"어른 안 계시니? 아빠나 엄마 좀 바꿔줘"

라며 보호자를 찾았다. 나는 내 목소리가 아이 같은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내 말투의 문제라는 것은 대학교를 입학하고 알게 되었다. 입학을 하고 얼마 안 가서 같은 학부의 남학생들은 내 말이 끝나면 늘 내 말의 뒷부분을 흉내 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실험 리포트 좀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 아직 리포트 안 썼는데. 야, 이제 리포트 좀 베끼지 말고 혼자 좀 써."

라고 얘기하면 곧바로 상대방은

"혼자 좀 써~~~~~~."

라며 내 말끝을 지나치게 늘리면서 되풀이하여 날 놀리는 것이다. 그런 일은 하루에도 대여섯 번 있는 일이었다. 그런 말투 때문인지 나는 곧 '철부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당시 우리 과방에서는 별명을 한 글자로 부르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이름의 일부를 된 소리화 하거나, 연유를 알 수 없는 한 글자로 이름을 대신했다.  쫑, 썹, 쏭 등. 그래서 나를 부르는 호칭은 철부지에서 '철'이 되었다.


나는 첫인상에 비하여 굉장히 덤벙대고, 구멍이 많 잦은 실수를 하는 편이다. 그것은 나의 단점이자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엄마는 늘 무언가 잊거나 잃어버리는 실수가 많은 나를 보고

"쯧, 칠칠맞지 못하게. 얘는 이다음에 애 낳으면 지 애나 안 잃어버리면 다행이라니까."

라고 나의 콤플렉스를 뒷받침해 주었다. 대학교 선배, 동기들은 나의 허당기 가득한 행동을 보면 어이없이 웃으며 한 마디 했다.

"크크크, 역시 철부지!"

그것은 나를 놀리는 말이지만 비난이나 흉이 담기지 않았었다. 아이대하듯 귀여워하는 말투로까지 들렸다. 그 한마디를 들으면 나에게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의  애기 같은 말투라든지, 꼼꼼치 못한 부끄러운 면들이 '철부지'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특별한 매력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큰 사건이 아닌, 자잘한 실수들은 늘 용납이 되었다. 부지였으니까. 돌이켜보면 학 초년기는 그야말로 열정 그 자체였다. 시험 전에는 밤을 새워 공부하고, 시험이 끝나면 막차를  타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같이 술 먹자는 연락이 쇄도했다. 나는 털털하고 분위기 맞추는 여대생이었다. 그때는 그게 좋았다. 조용한 나날들이 계속되면, 혹여 내가 누군가를 서운하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전화번호 목록을 뒤적거리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 과외비로 번 용돈은 그렇게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모두 다 쓰곤 했다.


20대 중반에 지방으로 내려와 치의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의 말투에 대한 평가를 다시 들었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서울 말투를 쓰니 같은 말을 해도 똑똑하게 들린단다. 세상에. 차마 '그동안 애기 말투라고 놀림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철부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꼼꼼치 못하고 덤벙대는 내가 다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하긴, 애를 둘 낳은 아줌마가 철부지 소리를 듣는다 해도 당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주 세병을 먹던 나는 어디에도 없다. 세 잔도 부담스럽다.


정말 철이 없던 어린이 시절에는 마음을 닫고, 입을  닫느라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진짜 사랑받아야 했던  어린아이 는 귀여움을 받으래야 받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철"로 불리던 그때가 있어서  내 인생도 잠시나마 반짝 빛이 났다. 나는 불혹의 나이 앞에서도 여전히 서툴고, 덤벙대지만 철부지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며 살아간다. 많은 구멍들 틈으로 풀썩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 안의 철은 언제라도 나를 위로해 줄 것만 같다.


"으이구, 역시 철부지!그럴 수 있지. 탁탁 털고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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