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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Oct 12. 2021

엄마의 아이가 된다

백신과 오한

아이가 기관지염으로 며칠 입원하여 힘든 시기를 보내고, 미루던 2차 백신을 접종하고 아이들을 시댁에 보냈다. 생각보다 잠이 꽤 깊이 들었다가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오한이 왔구나, 싶었는데 갑작스레 속이 울렁거렸다. 멀미하듯 누워 뒤척이는데,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느꼈던 입덧이 생각났다. 예민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호르몬의 변화도, 백신도 힘들게 지나가나 보지.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했다. 예민한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어떻게 견디셨을까.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핸드폰 진동소리가 울린다. 연락이 없어 걱정하던 언니였다.

"괜찮아?"

"응."

"걱정돼서 전화했네. 얼른 다시 자."

갑자기 괴로움이 밀려왔다. 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원을 눌렀다. 어느새 시계가 아침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좀비 같은 몸으로 나와 화장실을 가다가 깜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엉거주춤한 내 모습을 보니, 늘 삐뚤던 어깨가 드디어 균형을 찾았다. 항상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처져 있었는데, 주사를 맞은 왼쪽 어깨가 통증과 함께 나락으로 툭  떨어져 있다. 또 한 가지 장점을 찾자면, 백신이  가져온 몸의 변화가 변비를 해결해 주었다. 나올 것이 나옴에 감사해야 한다.


타이레놀을 먹고, 인터넷으로 조금씩만 엿보던 한강의 시집을 e북으로 다운받았다. 생각나는 친구에게도 카카오톡 선물로 보내주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문장들이 내 머리로 들어가서는 뜨거운 눈물로 다시 나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나와야 할 것들이 나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거실 사방에 아이들 장난감, 사인펜, 책흩어져있다. 그렇게도 하기 싫던 집안일인데, 힘이 조금만 있다면 후딱 치워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저 양말을 들어 세탁기에 넣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기쁘게 해야지 다짐한다. 눈에 밟히는(아니, 발에  밟히는) 모든 것들을 애써 모른 척한다. 열은 자꾸 올라간다. 입맛이 없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었다. 아플 때면 늘 누룽지 끓여먹으라는 엄마에게는 비밀로 해야지. 나의 아이들을 보내 놓고, 나는 다시. 엄마의 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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