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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Sep 01. 2022

살아주어 고마워요

그 여름, 이름 모르는 그 사람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그 첫 번째는 남 일만 같았던 아빠의 암 소식이었다. 두 번째 일은 숨 막히게 더운 어느 7월의 토요일이었다. 출근을 하려던 남편이 아들에게 등을 돌린 채, 나에게 잠시 안방으로 들어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남편답지 않은 태도에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서 얼른 따라 들어갔더니, 남편이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을 가리키며 얘기한다.

“어제 저녁부터 누가 저기에서 자살시도를 하려는 것 같거든. 빈이 못 보게 해라.”

예상치 못한 소식에 심장이 두근댔다. 커튼을 살짝 열어보니 맞은 편 건물 옥상 벽에 한 사내가 걸터앉아 있었다. 다리를 밖으로 축 내린 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뉴스에서나 접하던 일을 내가 목격하고 있다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집은 아파트 20층대인데 그 사내가 앉아있는 건물은 우리 집보다 지대가 낮아 나에게는 약간 내려다보이는 각도였다. 그의 체구와 머리스타일까지 샅샅이 보였다. 내 안경을 찾아서 껴보니 그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보이는 듯해서 깜짝 놀랐다. 바닥에는 에어매트 두 개가 깔려져 있었고, 소방차 3대와 경찰차, 구급차가 비상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내리쬐는 햇볕이 꽤 따가웠다. 밖에서는 고군분투 중인데, 에어컨을 틀고 편히 있는 내가 죄스럽게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거실의 반투명한 속지 커튼을 열지 않았으니, 아들은 봤을 리가 없었다. 남편을 보낸 뒤, 티비를 보고 있는 아들 몰래 나는 다시 안방으로 와서 커튼 사이로 빼꼼 그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미동도 없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그가 아래를 보던 시선을 거두어 갑자기 고개를 약간 들었는데, 마치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에 놀라 황급히 커튼 뒤로 숨었다. 그는 얼마나 괴로운 심정으로 저 곳에 밤새 앉아 있던 것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감히 추측할 수도 없었다. 아들은 밥을 먹고 숙제를 할 때까지 커튼을 건드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다시 한 번 커튼 밖의 상황을 살짝 보니, 한 여성 소방대원이 그의 옆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사내는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짚어가며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대여섯 명의 소방공무원들이 그의 곁에 와서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가 자신들끼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다시 아들 곁으로 오니, 어제 보여주었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 나오는 음악을 들려달라기에 음원 사이트에서 영화의 OST인 summer를 찾아 들려주었다.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발랄한 멜로디가 커튼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암담한 상황과 대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올 것이 왔다. 갑자기 매우 감성에 젖은 빈이 얘기했다.

“엄마, 근데 나 이 음악을 들으니까 하늘에 구름을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이 음악이 깔리게 하고 싶네.”

동시에 빈이가 커튼을 열려 했다. 아뿔사, 다급한 내가 말했다.

“안돼, 커튼 닫아!!!”

아이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날 봤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커튼 열지 마.”

“아, 왜? 나 지금 찍을 거란 말이야!”

“열지 말라고. 밖에 사고가 날 것 같아서 그래. 네가 보면 안 되는 거야. 그냥 나중에 찍자.”

나는 당황하여 횡설수설 했고, 빈이는 커튼을 열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 말 들어. 진짜. 너 창밖에 보면 안돼서 그래.”

결국 빈이는 몇 번이나 나에게 제지당하다가 도대체 왜 그러냐며, 지금 꼭 해야 한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가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기어이 커튼을 조금 열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바깥 상황을 본 아이는 놀랐는지 엉엉대던 울음이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 스스로 커튼을 닫더니 묻는다.

“엄마, 근데 밖에 소방차가 왜 와있는 거야?”

여덟 살 아이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엄마가 된 이례로 가장 난감한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빈아, 너 밖에 소방차만 봤어? 아니면 어떤 남자분도 봤어?”

“응. 옥상에 앉아 있는 거 봤어. 왜 그렇게 앉아있는 거야?” 

아이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엄마도 그 분이 뭐 때문인지는 모르는데....... 근데 그 분은 지금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은 기분인 가봐.”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살고 싶지 않은데?”

“빈아, 어른이 되어 갈수록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되는 거야. 지금은 상상이 안가겠지만, 너도 어른이 되면서 점점 어려운 상황들이 계속 생길 거야. 누구나 힘든 일을 겪지만, 사람마다 다 다른 일을 경험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쌓이다보면 너무 속상하고 괴로워서 사는 게 자신이 없어질 수 있어.”

“그래? 근데 왜 저기 앉아있냐니까?”

“왜 앉아있냐고? 음....... 만약 저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아.......”

아이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숙연해졌다. 이내 커튼을 붙잡고 묻는다.

“엄마, 나 그 아저씨 한번 다시 볼래.”

“빈아, 그건 아닌 것 같아. 잘 생각해봐. 저 분은 스스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속상한데, 우리가 커튼을 열고 구경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떨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거나, 화가 더 나지 않을까? 창피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저 분의 감정이 안 좋아지면 상황이 더 위험해질 수 있어.”

“맞네.”

빈이는 커튼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엄마 나 안 볼래.”

“그래. 우리 보지 말자. 속으로 빌어주자. 절대 나쁜 일이 일어나지 말기를.”


아이는 다행히 그 뒤로는 창밖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아이와 summer를 다시 한 번 반복하여 들었다. 발랄한 그 멜로디처럼 그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길, 그 사내가 밤새 붙잡고 있던 생에 대한 미련을 절대 놓지 말고 용기 내길 기도했다.      

두 시간 가량 흘렀을 때, 이 상황이 종료되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 모르게 커튼 사이로 보니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에어매트를 한참 접고 있었다. 

“빈아, 끝났나보다.”

나는 커튼을 열었다. 시원한 파란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아무 일도 모른다는 양 태연하게 느껴졌다.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것을 보니 그는 미련의 끈을 놓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심난했던 가슴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그제야 열 댓 명의 사람들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커다랗고 둥근 에어매트를 접기 위해 땀을 닦아가며 일하는 소방대원들. 또 다른 네모진 에어매트를 접는 소방대원들. 경찰차 주변에서 상황 정리를 하는 경찰들. 구급차에 올라타는 구급대원들. 한 사람의 귀한 생명을 붙잡기 위하여, 지난밤부터 잠도 못자고 열대야 속에서 밤새 기다렸던 열댓 명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찡하게 따뜻해졌다. 사내를 설득하기 위하여 내내 말 걸었던 소방대원은 사내가 결심을 포기하고 뒤돌아 내려올 때 자신의 피로도 잊고, 기쁨을 맛보았겠지. 뭉클. 감사한 마음이 내 안에 뭉게뭉게 퍼진다.

      

그런 일을 겪은 후여서인지 다음 날, 무척 생생한 꿈을 꿨다. 꿈에서 세 살 배기 둘째가 술래잡기 하듯이 나와 놀고 있었다. 아이가 먼저 타고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혼자 타고 올라갔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니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은이 옆에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나란히 서있었다. 말년의 늙은 모습이 아닌, 내가 어릴 때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작은 체구에 긴 플리츠치마를 입고 꼿꼿이 허리를 편 할머니. 놀라고 반가워서 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는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날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할머니 옆에 히죽 히죽 웃고 있는 은이를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얘는 누구게?”

할머니는 다시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몰러.”

“얘 내가 낳은 애야. 저기 쟤도 내가 낳은 애고.”

어느 샌가 첫째 빈이도 건너편에서 우릴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그려? 둘 다?”

“응.”

나는 이게 꿈이구나,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벅찼다. 이 꿈이 끝나기 전에 할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지 생각하다가 물었다.   

“할머니, 이제 아픈데 없어?”

“응. 안 아파.”

나는 기다렸던 그 대답을 들으며 할머니를 꼭 껴안았다. 

‘할머니가 없는 지금 이 세상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해서 살다가 할머니 만나러 갈게.’ 

라고 생각하면서 번쩍 눈을 떴다. 나는 몸을 일으켜 커튼을 열어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그 사내가 져버리지 않은 오늘, 할머니가 마주하지 못한 오늘을 감사히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보내리라. 나는 아마도 창밖의 그 옥상을 바라볼 때마다, 그리고 summer를 들을 때마다, 절망이란 늪에서 포기하지 않고 힘껏 한 발자국 내딛은 사내와 그를 잡아준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고마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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