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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인선 Moon In Sun Sep 02. 2020

김서방, 맛있지~?

아빠가 할머니에게 듣던 말을 이제는 엄마가 남편에게 한다.

엄마 살 것 같다~ 어제도 왼손과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오전 센터에서 청소년 여름학교 강의 끝나고 으랏차차 병원 갔더니 목 디스크래. 일자목. 핸드폰 많이 봤냐고 해서 안 본다, 그럼 양손에 무거운 들었냐 묻더라고. 양손에 무거운 건 많이 들었지요~ 지금도 장 보면 들고 오지요~ 그래서 양쪽 어깨 손까지 아픈 거래~ 목에 근육 풀어주는 수액까지 놔주더라고~~ 지금은 정상이야. 안 아프니 살 것 같아~ 어제 강의 준비하면서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가 될 정도로 아파오고, 할머니가 혼자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에~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고~



예순셋, 58년 개띠 울엄마가 벌써 예순셋이 되었구나.


엄마는 아플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8년 전에 연골이 찢어져 조각난 연골을 골라내는 무릎 수술을 하고 나서도 아파서 쩔쩔맸지. 그때는 할머니가 계셨다. 관절염으로 삼십 년 가까이 고생하셨으니, 당신 딸이 따라 늙어와서는 따라서 무릎이 아프다고 하니 애틋해하셨다.

그때만 해도 할머니는 몸은 자꾸 말라갔지만, 정신은 또렷하셨지. 인천에 사는 이모와 엄마가 주말마다 격주로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갈 때였다.

나도 가아끔 따라갔지만 티브이 채널권도 없이 종일 KBS1만 보는 것이 재미없어서, 또 할머니의 쓸쓸한 인생사를 듣는 것도 반복되어 점점 안 가기는 했었지.

그때 할머니는 당신이 한평생 바르는 케토톱 파스를 엄마 무릎에 붙여 주고는 한참을 만져주었다. 팔십의 노모가 오십 대 딸의 무릎을 동그랗게 손으로 굴리며 만져주었다.

엄마도 그때가 생각이 났던 거겠지.



할머니 장례식장에 지금의 남편이 등장했다. 연애로는 3년 차, 우리는 삼십 대였고 결혼을 생각했으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남편은 퇴근하고 강남에서 성북구 미아동으로 왔다. 정장에 회사원 백팩을 메고.

아빠, 엄마. 친구 왔어. 나와서 인사해요.

- 뭔 친구가 여기까지 와? 누가 왔는데?

난 미주알고주알 친구든 회사 이야기든 주변 사람들 실명을 가지고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 엄마는 내가 실명을 내놓지 않고 친구가 왔다고 하니 의아해했다.

그냥 나와서 봐봐요.



아빠와 엄마, 이모와 이모부, 친척 언니 열댓 명 -우리 외가는 유난히 여자 친척 형제가 많다, 남자 친척은 둘째 외삼촌네 장남과 우리 집 섭섭이 둘뿐- 이 남편을 에워쌌다.

몇 살이라고? 본가는 어디라고?

다시 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뭐뭐? 몇 살이라고? 어머머, 인선이 남친이래!

같은 말들이 반복되었다.

남편은 넉살도 없지만, 긴장도 없어 태연히 잘 굴었다. 육개장을 먹고, 일어났다.

- 그래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게.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여기까지 와주어 고맙네.

이 말을 엄마가 했는지 아빠가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할머니 49제가 끝나고 그해 늦봄 우리집에서 한번, 남편의 부모님과 한번, 이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한번, 총 세 번의 식사를 하고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세 번째 식사 시점으로부터 거의 3개월 만에 호딱 결혼을 했다.



이후 엄마는 근 20년간 손 놓았던 요리와 살림을 다시 잡았다. 평생 커리어우먼으로 살라고 내게 살림을 가르쳐주지 않은 우리 엄마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이랬다.

- 살림 미리 배울 것 없어, 시집가면 실컷 해. 평생 해.

큰집 제사에 전 부치게 하는 것도 싫어서 나가 놀라 하던 우리엄마 덕분에 어쨌거나 나는 대감집 노비(회사원)가 되었고, 세탁기 돌리는 방법은 남편에게 배웠다. 밥솥이고 청소기고 세탁기는 기계가 하는 것이라 배우면 바로 할 수가 있었지만, 요리는 기계가 해주지 못해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는 탓에 엄마는 2주에 한번 밑반찬을 보내오고 한두 달에 한번 집에 가면 공중파의 요리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배운 새로운 요리를 내어온다.  



여전히 넉살 없고 긴장도 없는 김서방이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으면, 엄마는 참지 못하고

어때~? 맛있어~?

말 좀 해봐, 맛있지~?

이럴 때면 밥상 앞 모두가 웃음이 터진다.

특히 아빠가.

맛있지~?

'맛있지'는 할머니가 아빠에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아빠는 김서방보다 더더더 넉살도 없고 말도 없고 표현도 없었으니, 밥상 앞에서 할머니는 북어구이를 뜯어먹는 아빠를 향해 맛있지? 하고 열 번은 더 물었으니까.



김서방 앞에서의 엄마는, 김서방과 내 앞에서의 엄마는,

유독 할머니 모습과 겹친다.



엄마 집에서 밥 잘 먹고 돌아가는 오늘 저녁에도 엄마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우리가 차에 타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멀어질 때까지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밥 먹고 배불러하며 함께 티브이를 보고 이제 갈게요, 할 때마다 아쉬워하던 할머니가

또와, 또 와, 하고 말하고는

아빠 차의 꽁무니가 저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고 서있던 것 같이.



엄마한테 전화나 해야겠다, 목 아픈 건 괜찮아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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