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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인선 Moon In Sun Jul 10. 2021

열한 살 생일파티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이유


겨울 방학 전에 꼭 생일파티를 해달라고 졸랐던 건 다 너 때문이었다. 난 1월 생일이니까,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당겨 파티를 하고 싶다고 한참 엄마를 졸랐다. 초등학교 4학년을 다 보내고 방학을 앞둔 겨울이었다. 곧 5학년이 되면 다른 반이 될지도 모르니까 헤어짐이 무서웠다.


너 때문이었다.

니가 건네줄 선물과 생일 축하카드를 상상했다.

생일파티 초대장을 만드는 동안 수없이 들뜬 채로 니 앞에 서서 '내 생일파티에 와줄래?'하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작년에 친척 언니에게 물려받은 하늘색 공주 드레스를 입었다 벗었다. 드레스가 과한가, 그럼 뭘 입을까 한참을 고민한 기억은 나는데, 결국 무엇을 입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는 돈가스, 잡채, 갈비, 탕수육, 김밥, 떡볶이까지 긴 식탁 두 개를 붙여서 음식을 차려주었다. 거실 가득 친구들이 찼다.


니가 오지 않았다.

거실은 꽉 찼지만, 마음이 텅 비었다. 쓸쓸한 마음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듣고, 후다닥 케익의 촛불을 부른 채 집 앞 공원에 나갔을 때,

정글짐 꼭대기 위에 니가 앉아있었다.


왜 오지 않았어?

묻지 못했다. 나는 눈을 한 번 흘기고 아무렇지 않게 애들과 얼음땡을 하고 한 달 반이나 서두른 생일날을 마무리했다.

누군가를 혼자 좋아할 때 생기는 들뜸과 슬픔을 열한 살 겨울에 알았다. 사소한 행동에 시시각각 좋았다 슬퍼졌다. 이 마음을 어쩔 줄 몰라 일기를 열심히 쓰기 시작한 것도, 덕분에 남들보다 이른 사춘기를 맞이한 것도 다 니 덕분이었다.


너는 그러고도 오랫동안 아이처럼 지냈다. 달리기와 축구 말고는 모르는 아이 같았다. 방과 후 운동장 모래 먼지를 폭폭 날리며 달리는 너의 발 끝을, 달릴 때 바람에 사르륵 내려앉던 너의 바가지 머리를 몰래 보았다.


열한 살에 내가 알게  들뜨고 슬픈 기분을  열여섯에 처음 느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중학교 3학년, 교회에서 반주를 맡고 있던 키가 크고 하얗고 손가락이 가느다란 사라가 고백을 받았다며 내게 들떠 이야기했을 , 고백을  아이가 너라는  알았을  나는 심장이  하고 내려앉는다는 것이 무슨 기분인지 알았다.


오랜 시간 혼자 마음을 키우는 동안 생기는 여러 감정을 일찍 알았다. 마음을 전하고 돌아오지 않는 답을 기다리며 많은 일기를 적었다.

전하지 못한 마음과 표현하지 못한 기분을 혼자 쓰다 보면 답답함이 조금 가라앉은 채로 잠에 들었다.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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