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디단 밤양갱 하나뿐인 것처럼. - 마흔에 쓰는 육아일기
지난주 목요일, 3월 14일.
집 근처에 지하철역이 없어서
남편을 역까지 차로 데리러 가는데요.
저 멀리 칙칙폭폭 기차역에서 나오는
남편 손에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더라고요.
친정엄마 생신은 토요일에 하기로 했는데,
하루 먼저 사 왔나 의아했더니,
오늘이 화이트데이라며 케이크를 사 왔다고 하더라고요.
지하철 안에서 케이크가 흔들려 뭉개질까 봐
얼마나 조심히 안고 들고 왔는 줄 아느냐며.
저희는 육아 3년 차,
결혼 9년 차, 만난 지 13년 차 커플인데요.
기념일을 챙기지 않은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뭔가 갑자기 화이트 데이 케이크라니,
괜히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우리 부부가 주말 없이,
특히 남편은 밤낮없이 부지런히 살기 시작한 지 시간이 좀 지났고,
어느 주간은 특히 바쁘다가, 어느 주간은 좀 여유롭다가 하며 조금 빠듯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래서 부부라기보다는 어떤 때는 정말 회사 동료 같기도 하고,
아기 이야기 보다 일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문득 화이트 데이 케이크라니,
웃음이 좀 나오더라고요.
글쎄, 남편은 케이크 한 상자를 사 왔을 뿐이지만
저는 뭐랄까.
여보, 나 만나서 고생이 많아.
당신 고생하는 것 잘 알아.
우리 열심히 살아서, 같이 오랫동안 행복하자.
이런 편지를 받은 것 같은 기분.
내 고생도 알아주고, 내 마음도 다독여주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참, 아내 마음 알아주는 일 이렇게 별로 어려울 것 없어요.
기념일에 케이크 한 상자. 꽃 한 다 발.
회식 후, 편의점에 들러 맛있는 아이스크림 한 통.
그거면 되거든요.
달디단 밤 양갱 하나뿐인 것처럼. : )
23개월 아기와 함께 책을 읽는 일상.
읽다 보면, 쓰다 보면, 점점 좋아질 것이라 믿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