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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하라 Nov 23. 2024

[1] 가죽으로 만드는 삶 #크매스

공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만드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가죽 공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의 연속이다. 그러나 만들고 또 만들면서도 내가 쓸 것은 잘 못 만든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당장 최근에 만든 물건만 해도 그렇다. 대충 세가지만 추려봤다.


1) 원데이클래스를 위한 립파우치 샘플

수업 후 주문제작으로 계속 나가고 있는 립파우치

2) 주문제작한 남성용 반지갑

심플하게 제작된 반지갑

3) 주문제작하여 납품한 제품에 쓰일 가죽태그 600장

기본형 가죽태그


 대충 추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최근 완성된 제작품은 이렇고, 요즘 만들고 있는 것은 계속 수업을 위한 샘플을 제작하고 있고, 주문제작으로 들어온 가방이나 지갑을 만들고 있다. 샘플은 사용감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사용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제작품은 아닌 셈이다.


 그래서 가죽공예가 싫으냐면 그렇지 않다. 가죽으로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제작품 자체에 미련이 없을 뿐이다. 제작품이 완성되면 그저 오래도록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다. 에초에 가죽 공방을 시작한 것은 가죽 제품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창업 학도로서 연구해본 결과 진입 장벽도 적당히 있으면서, 시작하는 장비를 마련하기에 적당한 규모의 지원사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죽 공예가 좋아지고 공예에 고집이 배어들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1, 2년간의 일이다. 이제 곧 6년차 가죽공예가가 되니 공예를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 늦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예에 대하여 진지한 태도는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무조건 실생활에서 잘 쓰여야 한다는 공예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문제작 중인 가방 핸들

 그래서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사실 한가지 소재로 물건을 제작한다는 것은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범위가 그렇게 넓은 일이 아니다. 가끔 가구에 가죽을 덮거나 씌우는 일을 하기도 하고, 특별한 물건을 만들어볼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만들다보면 가장 많이 만드는 종류가 한정된다.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가방과 지갑, 작은 소재료가 그것이다.


 같은 것을 계속 만들면 질리지 않을까 싶겠지만, 누군가의 쓰임에 맞춰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보니 매번 새로운 과제가 있다. 가죽도 항상 새로운 가죽을 맞춰 사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인조가죽도 필요하다면 사용할 때가 있다. 과제를 푸는 일이 영 질리지 않는다. 다만 능력이 닿기를 바라며 만들고 또 만들 뿐이다.


 누군가 공예 일에는 끝이 없고 만족도 완성도 없이 만드는 삶이라고 그랬다. 돈을 받고 교육도 하고 주문제작도 하고 있으니 완성 없이는 밥벌이를 못한다. 나름의 만족과 나름의 완성을 하기는 하지만 끝이 없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막연하고 먼 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모든 일이 소중하고 귀한 일이다. 요즘 같은 때에 몇 년이고 몰두해서 공부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직업이란 얼마나 멋진가. 


 가죽으로 만드는 삶.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좋기만하다고 권할 수는 없는 삶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 6년차에 접어드는 공예가로서, 공방 안에서 끊임없이 만든다. 만드는 일에 끝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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