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유를 포기하면 나중의 여유는 보장될까?
현시점, 아내는 만삭의 몸이다.
그럼에도 일을 통해 느끼는 자기 효능감이 너무 좋아, 아직도 출근 중이다.
그런 아내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그 몸을 이끌고
횡단보도 건너 신호에 걸려 멈춰있는 버스에 타려고, 후다닥 뛰었다고 했다.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서 아내에게 무리해서 타지 말고,
버스 한 대 정도 그대로 보내도 괜찮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버스에서 내려서의 여유를 위해' 뛰었다며 웃었다.
문득 지금 빨리하면 나중이 여유로워진다는 점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여유는 총량이 있어서, 총량을 잘 분배하여 나누어 써야만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를 놓고 보면, 오전에 바쁘면 오후에 여유로울 수 있나?
일 년을 놓고 보면, 1, 2월 바쁘게 살면, 11월, 12월이 여유로울 수 있나?
삶을 놓고 보면, 50세까지 바쁘게 살면, 100세까지 여유로울 수 있나?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삶이 마음대로 되던가?
결국 단 5초 뒤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은
지금 택하지 않은 여유가 나중을 위해 저축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조금 여유로워도 되면, 지금 여유롭자.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지금 여유로워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여유로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 여유의 대가는 감당할만할 것 같다.
브런치는 항상 오랜만에 돌아오게 되네요.
제 글을 읽는 분이 많지는 않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자기 검열을 자꾸 하게 되고, 글로 작성할 콘텐츠를 자꾸 필터링하게 됩니다.
애초에 보이기 위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음에도,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갈대 같고 줏대가 없나 봅니다.
미국에 살 때부터 여유는 저에게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깜빡이는 신호등 앞에서 뛰지 않고,
이미 도착한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지 않습니다.
제 삶에서는 반드시 얻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일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타인과의 약속과 관련된다면 조금 더 엄격하게 생활합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20분 정도의 쿠션을 두는 것처럼요.
여러분도 오늘은 신호등이 깜빡이는 횡단보도와 이미 도착한 버스는 흘려보내보세요.
다음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것들을 찾는 재미도 사소하지만 쏠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