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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eji Sep 12. 2024

여유의 총량

지금 여유를 포기하면 나중의 여유는 보장될까?

현시점, 아내는 만삭의 몸이다.

그럼에도 일을 통해 느끼는 자기 효능감이 너무 좋아, 아직도 출근 중이다.

그런 아내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그 몸을 이끌고

횡단보도 건너 신호에 걸려 멈춰있는 버스에 타려고, 후다닥 뛰었다고 했다.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서 아내에게 무리해서 타지 말고,

버스 한 대 정도 그대로 보내도 괜찮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버스에서 내려서의 여유를 위해' 뛰었다며 웃었다.


문득 지금 빨리하면 나중이 여유로워진다는 점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여유는 총량이 있어서, 총량을 잘 분배하여 나누어 써야만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를 놓고 보면, 오전에 바쁘면 오후에 여유로울 수 있나?

일 년을 놓고 보면, 1, 2월 바쁘게 살면, 11월, 12월이 여유로울 수 있나?

삶을 놓고 보면, 50세까지 바쁘게 살면, 100세까지 여유로울 수 있나?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삶이 마음대로 되던가?

결국 단 5초 뒤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은

지금 택하지 않은 여유가 나중을 위해 저축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조금 여유로워도 되면, 지금 여유롭자.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지금 여유로워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여유로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 여유의 대가는 감당할만할 것 같다.



브런치는 항상 오랜만에 돌아오게 되네요.

제 글을 읽는 분이 많지는 않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자기 검열을 자꾸 하게 되고, 글로 작성할 콘텐츠를 자꾸 필터링하게 됩니다.

애초에 보이기 위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음에도,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갈대 같고 줏대가 없나 봅니다.

미국에 살 때부터 여유는 저에게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깜빡이는 신호등 앞에서 뛰지 않고,
이미 도착한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지 않습니다.

제 삶에서는 반드시 얻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일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타인과의 약속과 관련된다면 조금 더 엄격하게 생활합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20분 정도의 쿠션을 두는 것처럼요.

여러분도 오늘은 신호등이 깜빡이는 횡단보도와 이미 도착한 버스는 흘려보내보세요.
다음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것들을 찾는 재미도 사소하지만 쏠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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