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산균 Jun 06. 2020

간증이 별건가요?




그날은 여동생을 따라 성당이 아닌 교회에 처음 가본 날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다녔던 성당의 경직된 미사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아는 성경의 내용인데도 뭔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신선했다. 이렇게 나는 대학시절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가면 늘 먼저 와있고, 멀리서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르던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상 교회 오빠에 입만 열면 하나님과 성경 이야기밖에 모르는 그에게 먼저 고백을 해버렸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예상대로 그는 연애는 관심이 없고 결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자에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한다던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다. 

그의 거절로 마음 아파하며 포기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실망한 나의 마음을 교회 친구들은 많이 위로해주었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관계를 유지해갔다. 

그렇게 우리는 청년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 잘 통한다는 걸 서서히 깨달아갔다.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서서히 깊어진 친밀감으로 마침내 그의 마음을 돌려 결혼에 골인하고야 말았다. 짜잔. 

 



이 이야기는 고블랑 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의 결혼 스토리이다. 말 그래도 '엄근진' 캐릭터인 사모님은 중학교 문제아반 담당 선생님으로, 늘 정제되고 또박또박한 언어를 사용하신다. 건조하고 딱딱해 보이는 외모 뒤에는 조용한 따뜻함과 반전의 유머를 숨기고 있다. 결혼 스토리를 들려주실 때, 화면에 띄어 놓은 이미지는 신데렐라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나 나올듯한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 장면이라거나...





이 시점에는 마땅히 나와야 할 배우자를 위한 기도제목이라든가, 기도하며 받은 성경말씀 혹은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뎌냈는지에 대한 과장된 내러티브는 어디에도 없다. 이 만남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인도하심이었다는 첨언도 없다.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읽어 내려가는 듯한 말투였지만, 우린 이 다이나믹한 남의 결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청년 시절 목사님이 감히 고백을 거절했다는 대목에서는 우리는 한마음으로 '아아-'하는 탄식을 내뱉었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다는 말에는 다 함께 웃으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카페에서 만난 티타임 시간이나 가정방문 모임 시간에나 들을 만한 이 결혼 스토리를 우리는 주일예배 간증 시간에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 본 간증 내용은 늘 큰 병에서 고침을 받거나 드라마틱한 회심사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간증은 나에게 MSG가 약간 첨가된 특별한 경험으로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프로파간다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조한 나의 일상은 당연히 별로 내세울만한 드라마가 없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간증을 부탁받았을 때 나는 쭈뼛거리며 거절하고 말았다. 요즘 묵상해놓은 멋진 말씀도 없고, 하루하루 바쁘고 건조한 삶의 연속인데... 

성경말씀 한 구절, 멋진 기도제목 한 문장도 들어가지 않는 사모님의 이 날 나눔은 그녀의 성격과 인생을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간증 시간이 자신을 영적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임을 상기시켜주었다. 





I 할머니는 연세가 많아 병원에 자주 가신다. 지난 주중에는 간단한 수술을 기다리며 평소처럼 찬송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흘긋거리며 쳐다보길래 목소리가 너무 큰 건가 하고 노래를 멈추었다. 그러자 그 옆사람은 그 노래 제목이 뭐냐며 자기에게도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극도로 초조한 얼굴을 하며 힘들어 보이는 그에게 잘 들리도록 가사를 또박또박 불러주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가사를 유심히 듣던 그는 이내 얼굴이 조금씩 풀리더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 같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했다.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왜 그런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I 할머니는 바로 알수 있었단다. 그녀에게는 평안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간증을 들으며 우린 다 함께 얼굴도 모르는, 그의 건강과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고블랑의 예배시간에는 약 두 달에 한 번씩 예배 시간 중 간증 순서가 있다. 주일 예배나 주중 성경공부 혹은 기도 모임에서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모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한국처럼 사적인 주중 모임이나 소그룹도 그리 활발하지 않다. 이런 구조를 극복하고 지체들의 개인적인 삶을 듣기 위해 마련한 시간이 간증 시간이다. 5분 이내의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잘 모르던 지체들의 스토리를 듣고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는 주중에 묵상했던 말씀 중 마음에 와 닿았던 말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새해를 시작하며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데 여러분을 증인으로 세우고 싶다고도 이야기했다.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실패한 이야기, 중요한 물건을 기차에 두고 내렸다가 찾은 이야기, 자식과의 관계에서 어려웠던 일들이 주를 이룬다. 전혀 스펙터클 하지 않는 이 간증 시간을 통해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지루하리만큼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발견하는 것이 간증임을 배운다. 


‘간증’이라는 단어를 한국어에서는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종교적인 용어로만 이해되는데 반해, 간증으로 번역 가능한 프랑스어 témoignage는 종교적인 의미만을 갖지 않고 증언, 목격, 증거 등 종교를 벗어난 맥락에서도 널리 사용한다. 


종교의 언어, 교회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신앙을 공유할 수 있고, 

종교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목격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이 일상이 나의 간증임을 배우고 있다. 






고블랑 김씨가족+ 빵린이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데...목사님이 누구셔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