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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Feb 13. 2018

결혼하려면, 아빠를 공부해야 한다고?

부모와의 관계가 결혼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


                 그러자 선생님은 한 가지를 덧붙이셨다.                      

          결혼하고 싶다면 아버지에 대한 공부를 해볼 것.

               네? 우리 아빠요? 저희 아빠 말씀이세요?




오빠의 아버지가 놓은 강짜가 파혼의 주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우리 아빠가 등장하다니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어쩐지 나는 떡볶이를 먹고 싶어서 분식집에 왔는데, 떡볶이 2인분에 라면 사리 1, 계란 2개 튀김 1인분을 시키자, 웨이터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여기 오리고기 집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 너무 당황스러우니까 말이 막 나왔다.


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빠를 공부하겠습니다.



우리 아빠는 답정너 스타일이다.


내 어깨에 가족 모두를 앉히리라, 가 기본 모토이며 그러므로 아빠의 의견과 행동은 모두 우리 가족의 율법이 되어야 한다. 법을 거역하는 자, 순응할 때까지 들들 볶이리라. 그리고 아빠에게 가족은 할머니부터 막내고모의 아들까지다. 엄마도 만만찮은 답정너 스타일이기 때문에 나는 이십대 중반까지 엄마와 아빠에게 늘 소리를 지르

며 살았다. 나를 그만 좀 내버려 두라고!


엄마와 아빠는 정확한 사각형의 틀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 사각형 너머에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이 사각형이 너무 좁아서 숨이 막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싶어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꼭두각시가 될 것 같아서 내내 소리를 질렀지만, 소리를 지르는 내 마음 속에서도 불안감이 가득했다. 우울증이 심해서 대표의 방에서 목을 매다는 꿈을 꾸고 이직했을 때에도,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두려웠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에는, 시작한다는 기쁨과 설레임과 호기심과 그리고 걱정과 불안이 함께하는데 나는 늘 앞단은 짧고 빠르게 훅 지나가고 뒷단의 것들이 얽매여 전전긍긍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엄마와 아빠의 비난이었다.


어디서 이런 남자를 골라왔니?

지금 이런 집안과 사돈을 맺으라는 거야?


이 두 개의 말들이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 내 안에 가득차 있었다. 이건 실제로 엄마와 아빠의 말이 아니었다. 무기력과 불안에 푹 절여진 내가 읊어대는 헛소리였다. 나는 어디엔가 정해진 답안지가 있을 것 같았고 그 답안지를 들고 엄마와 아빠에게 가서 칭찬을 받고 싶었다. 이제 칭찬을 받을 나이는 지났는데. 나는 이제 장강명의 말마따나, 어른이 되기 위해 내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해 봐야 할 나이인데.


실제로 내가 이 결혼을 끝내야 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아버님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건드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을 때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 엄마와 아빠를 찾아와 시어머니와 상종하지 말라고 난리를 치려고 했다는 그 말에.




생각해보면 나에게 결혼은 부모님에게서 졸업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앞으로도 몇 번의 졸업을 더 거쳐야겠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방법을 정석적인 방법도 배우고, 곤란한 질문에는 능구렁이처럼 슬쩍 넘어가는 생활의 스킬도 배웠다. 그 전에는 뜻이 안 맞으면 소리부터 지르고 화부터 냈는데 이제는 딸린 예비 남편이 있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든 부드럽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 배운 여러가지 기술들은 회사에서, 시댁에서, 친정에서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다시 그 날의 충격적인 상담실로 돌아오자면,


아빠에 대한 공부를 해본다! 라고 해서 나는 아빠에 대한 집중 3종 세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대신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고, 아빠와 관련된 그림을 종종 그리곤 했다. 모든 작업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이상하게도 아빠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풀려나갈 때마다, 아버님에 대한 내 시각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처음에 아버님은 늙고 마르고 걍팍하고 신경질적인 어두운 노인이었는데, 지금은 나에게 예의를 차려주시고 내가 망친 새까만 소고기 무국을 내놓아도 괜찮다면서 드시는 아버님이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처음에는 이게 국인가...? 라고 놀라셨지고, 여전히 무서운 마음도 있지만)  


내가 아빠에게서 가장 견딜 수 없었던 지점은, 나를 아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는 거였다. 결혼 당시에 아버님도 그랬다. 나와 오빠를 아버님의 뜻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어하셨다. 헤어지신 어머님께 보여주고 싶으셔서. 당신이 나를 떠났으니까 당신은 내 자식과 며느리와 미래에 태어날 손주까지도 못 볼거야. 당신이 나에게 한 잘못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알겠지? 맞다. 그건 복수극이었다.


평생 꿈꿔오던 복수극을 망친 아들과 며느리가 얼마나 원망스러우셨을까. 그건 어쩌면 아흔살 노인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아버님이 듣고 싶으신 건,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어찌되었든 당신을 떠나서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어쩌면 그건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져 보니까 그립다고. 내일 혼자 잠들고 혼자 밥을 먹으려니, 아들을 결혼시키려니 당신이 참 그립다고.


버려졌다는 마음과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때때로 괴물을 만들어낸다. 그 때의 나는 순간적으로 튀어나

온 괴물만 보고 아버님이 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나쁜 사람을 만나게 한 오빠를 원망한

고, 그런 오빠과 헤어지지 못하는 나도 참 많이 원망했다.


지금도 원망하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그렇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순간에 결혼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혼하면서 수많은 괴물을 만났다. 그 괴물은 시아버지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엄마와 아빠에게도, 나와 오빠에게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괴물은 있다. 괴물은 시시때때로 나타난다. 나는 언제든지 괴물을 만날 수 있고 나도 언제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괴물을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


나는 이제 괴물 전문가가 되어보려고 한다.

그래야 내가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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