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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y 01. 2018

아흔 살 시아버지와의 첫 번째 싸움

아니 아버님, 신혼부부에게 무덤 이장이라니요?


결혼하고 1년은 파란만장하다던데, 나는 자신만만했다. 우리는 6년 넘게 연애를 하는 동안 별로 싸우지 않았다. 결혼해서 같이 산다고 해서 뭘 그렇게 다를까. 기껏해야 갈빗살과 등심의 맛 차이 정도겠지.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연애가 후추라면 결혼은 스테이크라고. 연애가 삶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는 조미료라면, 결혼은 굽는 시간 1분의 차이로 최고와 최악이 첨예하게 갈리는 프로의 세계라고. 


그리고 프로의 세계에 들어가자마자 아마추어 1은 와장창 깨졌다. 바야흐로 어버이날이었는데, 나는 아버님에게 와장창 깨지고 엉엉 울고 오빠는 아버님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운 기억이지만 그때는 정말, 지옥 같았다. 




나는 할 말을 하지 못하면 활화산이 된다. 용암들이 끓어 넘치는데 분출하지 못하면, 여드름이 되어 얼굴을 뒤덮는다. 그래서 가끔은 여드름이 나면 역순으로 요새 무슨 화가 난 일이 있었나 되짚기도 한다. 아무튼 시댁이라는 존재는 이런 화산 인생 30년 만에 두 번째로 만난 강적이었다. (첫 번째 강적은? 직장 상사...) 


이제 곧 아흔 살이 되는 시아버지도, 여든 살이 되는 시어머니도 혼자 사시면 외로울 것이다. 손녀뻘의 며느리가 들어오면 그들이 응당 기대할 그림은 이런 게 아닐까. 사근사근 웃으며 팔짱도 끼고, 매일 통화하고, 주말마다 

찾아오고. 사실은 모시겠다고 자청해서, 살뜰하고 다정하게 모심을 받는 삶을 살게 되는 것. 솔직한 나의 마음은 이렇다. 현재의 삶은, 내가 몇십 년을 살면서 결정하고 선택했던 모든 것의 총합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함께 살면서 서로를 맞추기보다는 혼자 자유롭고 싶어서 서로를 떠났다. 두 분 모두, 어려운 사정이었지만 아무튼 자식들에게 돈으로 악다구니를 해서 자식들이 모두 떠났다. 결과적으로는 자식보다 돈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외로움은 당신들이 선택한 게 아닌가.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그래서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외롭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학습된 착한 며느리병에 걸린 이상한 자아 A와 원래 자아인 활화산 B가 이상하게 섞여서, 죄책감을 느끼다가 어쩌라는 거지라고 구시렁거리다가. 암튼 결과적으로 외롭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걸 선택하셨잖아요! 선택을 하셨으면 책임도 지셔야죠! 어머님과 아버님의 선택으로 스스로 외로워지신 건데, 왜 그걸 저한테 해결해 달라고 하시는 거죠?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신혼 초장부터 집안 난리를 만들고 오빠는 뒤집어지겠지. 그래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냥 말을 휙휙 돌렸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한숨을 푹 쉬시며 "혼자 밥을 먹으려니까 밥맛이 없다. 이럴 때 옆에 살면 같이 보리밥에 나물 비벼서 먹을 텐데."라고 하시면 "어머니, 보리밥에 나물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겠네요! 오늘 저녁은 그렇게 먹어볼까 봐요. 그런데 어머니, 무릎은 괜찮으세요?"라고 하는 식이다. "저는 당신의 외로움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와 "남편에게 보리밥에 나물을 챙겨주고 어머님의 건강도 살펴주는 살뜰한 며느리"라는 정보를 같이 전달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외식했다.


아무튼 결혼하고 첫 어버이날 즈음이 되어 점심은 어머님과 함께 먹고, 저녁은 아버님네 집 근처로 갔다. 아버님은 회를 드시고 싶다고 했었나. 집 근처에 있는 횟집에 가서 도다리 회를 시켰던 것 같다. 참 다행스러운 게, 아버님은 항구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셔서 해산물 요리를 좋아하신다. 오빠는 이상하게도 회도 잘 못 먹고, 해산물은 비리다고 싫어하는데 나는 모든 해산물 요리를 사랑한다. 그래서 아버님이 고르시는 요리를 나는 다 잘 먹고 오빠는 깨작깨작거리다 해물라면을 시켜 먹곤 하지. 입맛이 맞는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처음 먹어보는 도다리 회를 앞에 놓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는데, 아버님이 할아버님의 산소를 이장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같이 갈 거지?라고 물어보셨다. 산소 이장이라니, 서른 살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무섭고 괴팍한 저 할아버지도 무서운데,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 묘를 파서 뼈들을 수습해 다른 무덤을 파는 일이라니. 나는 공포에 바들바들 떨며 어떻게 대답할지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약간 화가 났다. 약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많은 화가. 우리는 한 달에 70만 원씩 아버님에게 드리는데, 이것도 너무 버거운데 지금 이장비를 더 달라는 말씀일까. 아니면 아버님이 모아두신 돈에서 하겠다는 말씀이실까. 어떤 쪽이든 아버님은 왜 우리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걸까. 


그래서 내 마음과 해야 할 말을 적당히 섞어 이렇게 답했다. "아버님, 그러면 좋은데 저희 돈이 없어서요." 나중에 어른 전문가들인 친구들을 찾아가서 이 사건과 나의 대답을 말했더니, 이건 -100점의 명답이라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화를 돋울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이라며. 이럴 땐 좋다고 얘기하고 오빠한테 돌려야지, 뭐하러 거기에서 그런 말을 해서 욕을 먹냐는 것이었다. 그땐 몰랐지.. 나도 며느리가 처음인데.


어쨌든 그 날은 하하호호 웃으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대망의 어버이날이 되어,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혼자서도 전화를 드리다니 나는 참 좋은 며느리라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어서 아버님, 저 며느리예요~라고 말하자마자 아버님은 알아들을 수 없는 화를 막 내시면서 전화를 뚝 끊었다. 처음에 나는, 아 나와 다른 사람을 헷갈리신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내가 맞았다. 나는 이장하자고 하면서 너에게 돈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왜 나를 돈돈 거리는 사람으로 만드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시 보지 말자고, 전화도 하지 말고 돈도 필요 없다고 하셨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참에 아버님과 연락도 안 하고, 용돈도 안 드리면 편하지 않을까? 아버님과 인연을 끊는다고 해서 내가 아쉬울 건 없었다. 그렇지만 오빠에게 이 상황을 알려야 했다. 일단 울면서... 불쌍한 척 전화를 했다. 내가 어버이날이라 아버님한테 전화를 드렸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막 화를 내시면서 저번에 내가 한 얘기에 화나셨다고 다시 보지 말자고 하셨어. 오빠는 노발대발해서 아버님한테 전화를 걸었고, 다시는 아버님과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도 아버님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말라고 했다.


오빠가 내 편을 들어주니까 일단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당분간 아버님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다. 오예를 외치며 집에 돌아가고 있는데 오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빠한테 전화가 와서 다시 차분하게 말씀을 드렸다고. 보리한테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둘이 60살 넘게 차이가 나는데, 어른으로써 그렇게 하시면 되느냐고. 아버님이 전화를 걸어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정말 앞으로 자신을 안 볼 거냐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다시 전화를 해서 내가 사과를 하면 아버님이 잘 받아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후 내가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제가 죄송해요. 그런데 아까는 소리를 막 지르셔서 엄청 놀랐어요. 막 울었어요. 그랬더니 아버님은 놀랐겠다, 내가 화가 많이 나서...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오빠가 아버님에게 전화를 해서 마무리를 하고, 끝났다. 그런데 오히려 아버님에게 혼(?)이 나니까 아버님에게 덜 무서웠다. 잘 모르겠지만 내가 걱정하던 최악 중 하나를 미리 겪고 나니까 맷집이 생긴 느낌이랄까. 오빠가 내 편이 되어주는 것도 감사했고.


그리고 상담시간에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당연히 문제 발생 - 해결이라는 아름다운 소재로 자화자찬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건데 상담 선생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을 하셨다. 그 어르신의 쓸쓸함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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