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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거미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겁 많은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자연을 배운다

by 미지의 세계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벌레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기 때문이다. 모기와 같은 해충은 그나마 죽이는 게 죄책감이 덜 드는데, 문제는 나에게 해를 직접 주지 않는 곤충들도 직접 죽인다는 데 있다.


스스로의 잔인성에 몸서리치며 깨달은 건 사람의 잔인한 모습이 겁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집 안에 들어온 각종 불청객(?)을 보면 발가락부터 온몸이 굳어버리고 소리부터 지르게 된다. 또 그 곤충을 당장 없애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 된다. 만약 내가 겁이 별로 없었다면, 설령 벌레를 싫어했대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길을 잃어 우리 집까지 들어온 생명체들을 침착하게 어딘가에 올려 창 밖으로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1층이어선지 시골이어선지, 불행히도 지금 집에는 벌레들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 최근에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거미. 거미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모기들이나 다른 해충들을 잡아서 먹기 때문에 사람에게 좋은 동물이란다. 그런데... 너무 징그럽다. 다리도 무슨 여덟 개나 되고 빠르기는 왜 이리 빠른지. 내 영역 안에 언제 들어와서는 자기만의 영역을 거미줄로 표시하고 있는 게 영 마음에 안 든다. 거미를 발견할 때마다 소리 질렀더니 남편은 한동안 그 거미들을 잡아 창 밖으로 던져주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이제는 안 잡아준다. 오히려 "얘네는 해로운 애들이 아니고 난 불편하지 않다"며 가 버린다. 냉정한 사람...


남은 내가 거미를 처리하는 방식은 최대한 접촉하지 않고 죽이는 거다. 홈키파가 주요 무기다. 거미는 약을 맞으면 어리둥절하듯이 가만히 있다가, 혹은 다른 곳으로 도망가다가 이내 다리를 마구 휘젓는다. 그리고 잠시 후 땅으로 쭈욱 떨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거미들은 모든 다리를 다 오므린다. 죽음의 사투가 끝난 것이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엄마, 왜 거미가 춤을 추고 있어?" 묻기도 한다. 이때가 사실 제일 고민이다. 내가 만든 이 비극의 현장을 솔직히 전달해야 하느냐, 아니면 꿈과 환상으로 덮어주어야 하느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솔직하고 나쁜 엄마가 되기로 한다.


"음. 춤추는 게 아니고 죽어가는 거야. 엄마가 약을 뿌렸거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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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프리랜서 방송인, 현직 남매 엄마이자 과학해설사.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해요. 매일 검열하고 싸우면서 문장을 써요. 그래도 결국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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